THE LAST : L
Lie
- 제 2세계, 한국
"야, 너 진짜 갈거야?"
"너 거기 갔다가 또 다쳐서 올거잖아."
"아, 가지마라. 진짜."
"..."
"가야지, 나 전원우야."
아버지를 따라 발을 들인 제 2세계 본부, 2세계에서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던 우리 아버지는 제 3세계인들에 의해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가슴에 박혀있던 총알에 작게 새겨져있던 'CB'. 내 아버지의 전사 소식과 함께 2세계인들의 반발은 더욱 심해졌다. 우리를 위협하는 제 3세계를 당장이라도 무너트려야한다고. 그래야 모든게 평화로워질 것이라고.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곧이어 분노로 바뀌었다. 아버지를 죽인 총알을 두 손에 받아들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언젠간, 이 총알을 그대로 CB의 수장의 가슴에 되박아주겠다고 다짐했다.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흘러 이를 앙다물고 화를 삭혔다. 꼭, 꼭 다시 되갚아주겠다고…. 아버지가 못 다하고 가셨던 일들을, 내가 다 대신 해보이겠다고 하늘에 다짐했다.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2세계를 수호하는 사람이 되길 원하셨다.
아버지의 전사 이후 2세계는 빠르게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한번도 일어난적 없었던 2세계인들의 반발에 힘을 입어 결국 그 날따라 무섭게도 검푸른빛이 돌던 1월 14일 새벽, 카타스트로피 대전쟁이 시작되었다. 제 3세계뿐만 아니라 2세계 또한 피해를 많이 입은 전쟁. 그 피바다 속에서 뱃머리를 잡았던 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들의 리더가 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부대를 최대한 안전하게 다시 그들의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대장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
예상했던 결말과는 다르게 비극으로 치닫는 또 다른 결말에 결국 작전지휘를 하던 내가 현장으로 뛰어들었던 것은,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상당히 무모했던 짓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
" ... "
" 지금 당장 모든 걸 내려놓고 제 2세계에 투항하라. "
"허튼 짓 하지 않는게 좋아."
"..."
"나도 너희 또래고, 같은 처지로써 죽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
"나와, 지금 들고 있는 약들 다 버리고."
그 아이들을 만나, 그 찰나의 순간에 어린 아이들을 죽이고 싶지 않아 망설였던 내가 제일 무모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11월이 되었다. 여름을 또 한번 지나오며 코로나 보리얼리스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스트레일스와의 전쟁준비를 시작하며 원우는 훈련시간을 빼곤 한번도 제 방에서 나온 적이 없었다. 덕분에 근 몇달동안 원우의 얼굴을 본 요원들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 밥도 먹지 않아 여주나 도겸이 그의 방문 앞에 간간히 먹을 것들을 놓고 가야만 했다. 아슬아슬하기만 한 그의 상태에 N은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있다. 혹여나 또 방 안에서 쓰러졌을까 싶어 한시간에 한 번 그의 방문 앞으로 가 약이 없어졌는지, 먹을 것이 없어졌는지 확인을 하고, 또 약을 놓아주러 가고.
조슈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달 전 회의실에서 원우와 냉전을 가진 후 화해라도 했을까 싶어 N이 J를 은근하게 떠본 적이 있었으나, 조슈아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래도 내심 그를 속으로 챙기곤 있는지 항상 여주에게 오늘 밥과 약은 다 먹은것이냐고 물어보는 탓에 다행히 내부분열은 일어날 것 같지 않아 한숨을 돌렸었다.
"저기, W, 방에 있어요?"
"..."
원우가 조용히 눈을 떴다. 지금 자신은 문을 열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괜히 방 안에 없는 척을 해본다. 두어번 더 들리던 노크소리와 작은 한숨. 약, 문 앞에 두고 갈테니까 꼭 먹어요. 여주가 한참을 방문 앞에서 머뭇거리다 결국은 발걸음을 한발짝 뗀다. 등을 돌리자마자 확 열리는 W의 방문, 놀라서 뒤를 돌은 N이 W의 표정을 보고 또 한번 놀란다.
"이 약."
"..."
"어디에 쓰이는건데."
"...W."
그를 보지 못했던 약 두 달 동안 N은 원우가 많이 마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동안 놓고 갔던 밥들은 다 먹지도 않은건지, 방금 제 팔목을 잡은 손 위로 보이는 하얀 그의 팔목이 모든 것들을 말해주는 것 같아 여주가 한숨을 쉬었다. 이쯤되면 약은 먹은건가 싶어 가만히 그를 올려다보았다.
"W가 항상 먹었던거잖아요."
"..."
"신경안정제에요. 독한 약들은 다 뺐어요. 부작용이 심할 것 같아서."
아려오는 팔목에 N이 그의 손에서 팔목을 빼려고 하자 원우가 헛웃음을 뱉으며 팔목을 더 세게 잡아챘다.
"신경안정제?"
"!"
"너한텐, 이게 신경안정제로 보여?"
무언가 다른 느낌에 여주가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두 달만에 마주하는 그 모습엔 서늘하게 날이 서있다. 마치 건드리면 안될 것을 건드린 것 같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가만히 그 검은 눈으로 여주를 내려보던 원우가 여주를 데리고 제 방으로 들어와 문을 쾅 닫아버린다. 거칠게 여주를 벽에 밀치곤 두 팔로 여주를 가둔 채 고개를 떨군 원우가 작게 한숨을 내쉰다.
"내가, 왜 지금까지 널 피했는지 알아?"
"..."
"너 만나면, 내가 못 참을 것 같아서."
"..."
"니가 이렇게 망가트린 내 전부, 너한테 다시 돌려놓으라고 화 낼 것 같아서."
"!"
눈물이 가득 젖은 눈으로 원우가 여주와 눈을 마주쳤다. 원망과 비통함으로 가득 차있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눈빛이 흔들리자 원우가 손으로 여주가 기대있던 벽을 쾅 쳐버린다.
"왜!"
"..."
"왜, 왜 그래야만 했어."
"..."
"내 기억을 지우니까, 좋았어?"
"...W."
"그게 왜 너였어."
"..."
"내 기억을 지운게, 왜 너였냐고!"
전원우의 모든 기억이 돌아왔다. 그 와중에도 원우의 상태보다 코로나 보리얼리스의 미래를 걱정하는 자신을 보며 여주는 자신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보리얼리스에 발을 들인 이후로,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떳떳하게 평화를 정의할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을 할 수 있었던가? 코로나 보리얼리스의 평화를 위해 다른 이들의 평화를 부수는 자신은 이미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한 것도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다. 지금 이렇게 자신이 조작시킨 제 동료가 몸부림치며 울고 있어도, 모두 운명이라고 생각해야만 했다. 그래야, 그래야 모든 것을 억지로라도 합리화할수 있었다.
"..기억을 지우지 않았으면."
"..."
"모두가 죽었을겁니다."
"..."
"알잖아요, 이 곳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곳이라는걸."
"..."
"기억이 돌아왔으니, 이 곳을 떠나시겠군요."
"..."
"조슈아를, 죽일겁니까?"
"..."
조슈아를, 죽일겁니까? 라고 묻는 그 표정과 말투가 원우에게 아프게 박혀왔는지, 원우가 할 말을 잃고 허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넌, 넌 왜 그런 말을 하는거야. 원우가 허탈하게 웃으며 텅 빈 눈으로 여주의 눈을 마주쳤다. 너, 그런 말 하면 안되는거잖아.
"나랑, 나랑 함께 가겠다고 말 해야 하는거잖아."
"..."
"조슈아를 배신하자고, 기억을 지워서 미안하다고 말 해야 하는거잖아. 넌."
"..."
"이 곳은 돌이킬 수 없는 곳이니까."
"..."
"함께 도망치자고, 넌 나한테 그래야하는거잖아!"
원우가 결국은 여주에게 화를 내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여주가 알고 있는 원우는 현재의 정신도 온전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잃어버렸던 모든 기억 또한 돌아왔기 때문에 그의 정신은 이미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부서졌을 것. 울고 화만 내는 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여주를 앞에 세워두고 한참을 울던 원우가 벌떡 일어나 제 침대맡에 있던 총을 들었다.
"!"
여주가 살짝 움찔했으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지금 이렇게 원우에게 죽어도 할 말은 없다. 원우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 작은 권총을 쥐어 그대로 여주에게 들어보였다. 손에 권총을 들고 있어도 여주는 말 없이 원우를 바라보기만 할 뿐, 별다른 저항을 하지않는다. 오히려 눈을 감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원우는 또 한번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넌."
"..."
"지금 이 상황이 좋아?"
"...아뇨."
"..."
"저에겐, 이 곳에 발을 들이고 나서 한번도 행복한 적은 없었습니다."
"..."
여주의 말에 원우가 무너져내린다. 제 손에서 총을 놓친 원우가 답답한 마음에 제 머리를 쥐어잡는다. 여전히 그의 눈은 눈물로 젖어있다.
"그럼 넌."
"..."
"내가 함께 이 곳을 떠나자고 하면."
"..."
"어떻게 할거야."
"가지 않겠습니다."
"..."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 곳을 떠난다고 해서 바뀔것도 없겠죠."
"..."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늦은겁니다. 그 쪽도, 나도."
"..그럼, 난 어떻게 해야하는건데."
"..."
"네가 내 기억을 지워도, 그래, 괜찮아."
"..."
"내 기억을 지운게 너라면 그건 참을 수 있었어."
"..."
"너 하나는 내가 믿었으니까."
"..."
"사정이 있었겠지, 조슈아가 시킨거겠지, 하고 널 믿고 싶었어."
"..."
"너도, 이 곳에 미련은 없을 것 같아서 널 데리고 도망치려고 했어."
"..."
"근데 넌 가지 않을거래."
"..."
"그럼, 나는?"
"..."
"너 하나만 믿고 지금까지 지옥같은 이 곳에 남아있던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건데?"
지금껏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여주의 눈이 심하게 흔들렸다. 지금 자신을 바라보며 울고 있는 저 모습이 너무 위태로워보여서, 지금 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부서질것만 같아 여주의 눈이 흔들렸다. 저 손을 잡으면, 이제 어떻게 되는건가 싶어 여주는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런 제 마음을 원우가 읽은건지, 아무 말이 없던 원우가 입을 열었다.
"..그래. 나는."
"..."
"나는, 널 좋아해."
"!"
무언가 마음 속으로 이어져있던 선이 툭 하고 끊긴 기분에 여주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주먹을 꽉 쥐고 견뎌보려 했지만 마음처럼 되지가 않는다.
"널 좋아하니까."
"..."
"네가 원하는 대로 할거야, 난."
"..."
"네가 여기 있고 싶다면, 나도 여기 있을게."
"...그건 안돼요."
"돼."
"..."
"네가 조슈아의 편이 되고 싶으면, 나도 조슈아의 편이 될게."
"..."
"그러니까, 그 대신에…"
"..."
"나는 이제 너 밖에 없는거야."
"..."
"넌, 날 버리면 안돼."
"..."
"네가 이번 전쟁에서, 나에게 조슈아를 지키라는 명령을 내리면."
"..."
"난 조슈아를 지킬거야."
"...W."
"전쟁이 끝나면, 난 널 데리고 도망칠거니까…"
"..."
"끝날 때까지만, 널 위해서 거짓말 하는거야."
"..."
"나, 그래도 돼?"
"...응."
원우가 여주의 대답에 그대로 다가와 여주를 세게 안았다.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 네가 원하는 건 내가 모든지 다 할테니 자기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하는 그 모습이 안타까워서, 자신도 모르게 원우를 안아주며 여주는 처음으로 이 곳에서 울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겠지만, 원우에게 안겨있던 그 순간이 지금껏 자신이 걸어온 차가웠었던 길을 다 녹여주는 것만 같아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 코로나 아스트레일스, 본부
- 긴급회의 소집명령입니다. Z,K,V 모두 회의실로 모여주세요.
전쟁 준비에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던 날, S가 이례적으로 요원들을 모아두고 긴급회의를 열었다. B의 목소리에 한달음에 달려온 순영, 민규. 엄청난 훈련양 때문인지 기진맥진한 얼굴로 회의실에 와선 그대로 책상에 앉아 쓰러진다. 앓는 소리를 내며 쉴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며 중얼중얼 말을 하던 스나이퍼즈, 그 뒤로 또 한달음에 달려온 한솔까지. 한솔 또한 약 제조에 신물이 나 승관의 목소리가 어찌나 반가웠던지 방송이 나온지 5분도 안되어 달려왔다.
"보스, 회의 시작하시죠."
"H가, 사라졌어."
"!"
며칠 째 보이지 않던 지훈의 행방. 그저 잠깐 일이 생겨 나간것이라고 생각하기엔 며칠 째 돌아오지 않는 모습에 불안감이 든 승철이 그의 방에 찾아가 혹시 달라진 점이라도 있을까 싶어 찾아보았지만, 달라진 점도 없고 몸만 홀연히 사라진 지훈에 모두가 당황스러웠다. 혹시, H가 어디갔는지 아는 사람 있어?
"H, 아마 해외에 갔을텐데요."
"뭐?"
"저에게 잠시 여행을 가겠다고 했습니다."
"아니, 그걸 왜 이제 말해 멍청아!"
순영이 민규의 등짝을 한 대 세게 쳤다. 아, 아무도 안 물어봤잖아요! 민규가 억울한 표정으로 모두에게 말하자 보스가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여행이라면, 그래. 다행이네."
"..."
"죽거나, 다친 건 아니잖아."
"..."
"그래, 다들 바쁠텐데 불러서 미안해. 다시 돌아가 봐."
"아, 가기 싫…"
"..."
".. 예, 지금 갑니다."
보스의 눈치를 본 순영이 민규를 데리고 밍기적거리며 자꾸 뒤를 돌아보며 회의실을 나간다. 훈련 가기 싫어요- 가 두 명의 표정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승철이 씩 웃어주니 정색을 하곤 훈련을 하러 돌아가버린다. 싱겁게 끝나버린 지훈의 행방을 찾았던 회의, 묘한 기분에 승관의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여행 갔기엔 너무 몸만 갔는데, 아무것도 안 챙겨들고. 승관이 회의실에 남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B! 저 좀 도와주세요!"
".. 아, 네. 지금 가요!"
한솔의 부름과 함께 승관이 머리를 흔들었다. 아 뭐, 원래 그런 성격인 형이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