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례적으로, 적군에게 먼저 전쟁을 선포하고 시작된 그들의 마지막 전쟁. 그들은 먼 훗날, 이 전쟁을 'THE LAST' 라고 이름 짓는다. 치열하고 긴장 가득했던 그들의 휴전은 내일이면 끝이 난다. 다시 한번 시작되는 대전쟁, 승자가 누구일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CA의 보스 최승철이 마지막 문서에 최종으로 서명을 한 후, 사뭇 긴장된 표정으로 제 앞에 앉아있는 오랜 동료들에게 말했다.
"죽지 마라."
"..."
"내가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말이다."
"..."
"다쳐도 괜찮아, 너희가 원하는 대로 싸워도 좋다."
"..."
"다만, 전쟁이 끝난 후 내 앞에 죽어서 나타나지 말 것."
"..."
"내 마지막 목표는."
"..."
"너희들을 모두 이 곳으로 무사귀환 시키는거다."
하지만 그들의 마지막 회의가 끝이 났음에도, 여전히 H의 자리는 공석이었다. 알 수 없는 그의 행방에 CA 모두는, 그가 살아있어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여행을 갔다가 나쁜 일을 당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무슨 일이 생겨 돌아올 수 없는것인지. 그 이유가 어찌되었건 CA 모두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다.
"K, H한테 연락 없어?"
".. 네, 없습니다."
"..."
해커의 부재, 그들의 각오는 더욱 더 단단해져갔다. 이 새벽의 달이 지나고 나면, 새로운 시대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그 태양의 새로운 군주를 찾기 위한 전쟁, 패하는 것은 그들에겐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승리하지 못하면, 모두가 죽는다.
"코로나, 보리얼리스."
"..."
"너희들을, 마지막으로 불러보는구나."
"..."
"아마 이번 전쟁이 끝나면…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있겠지."
"..."
"살아있어줘."
"..."
"내가 너희를 다시 한번 찾으러 갈 수 있게, 살아있어줘."
"..."
조슈아의 눈이 모두를 훑고 지나 다시 허공으로 향한다. 그들이 온전히 앉아 마주보고 대화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 아무 표정 없이 앉아 있는 W와 생각이 복잡한지 표정이 좋지 않은 N, 그리고 마찬가지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D. 마지막으로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조슈아의 목소리엔 약간의 떨림이 섞여있었다. 다시한번 말없이 멍하니 앉아있던 조슈아가 특유의 나른한 눈으로 W의 이름을 불렀다.
"전원우."
"..."
"이미, 눈치는 챈 것 같더구나."
"!"
"너를, 그렇게 데려와서 미안해."
"..."
"미안해."
조슈아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원우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당황한 듯한 그의 표정에 조슈아가 웃으며 그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원우야."
"..."
"내가, 너를 그렇게 데려와서 미안해."
"..."
"원래의 네 성격이었던 진작에 나를 죽이고 떠났겠지."
"..."
"하지만,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었나보구나. 전쟁 직전까지 네가 이렇게 잠잠한걸 보면."
"..."
"묻지 않을게, 네가 이번 전쟁에서 우리의 편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고마우니까."
"..."
"전쟁이 끝나면… 날 버려도 좋아."
"..."
"어짜피, 이제 이 곳에 내 편은 없을테니까…"
여주는 알고 있다. 조슈아의 기분을, 조슈아의 마음을. 코로나 보리얼리스 정예요원들을 모두 제 손으로 모아 이렇게 큰 조직을 만들어낸 조슈아가 정작 믿고 의지할 수 있던 사람은 이 곳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언제나 혼자였던 보스, 코로나 보리얼리스의 보스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었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삭혀내고만 있던 보스. 어떻게보면 강인하지만, 어떻게보면 미련했던 그들의 군주.
그들의 군주가 지금 자신들의 앞에서 조용히 울고 있다.
한번도 그들의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인 적 없던 조슈아가, 누구보다 서럽게 울고 있다. 몇 년전, 여주의 앞에서 서럽게 울던 조슈아와 겹쳐보이는 상황에 여주가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덩달아 울 수는 없다. 하지만 자꾸 마음이 쓰인다. 모두가 말이 없던 그 때, W가 입을 열었다.
"보스."
"..."
"이제, 보스도 아니군요. 조슈아."
"..."
"난 조슈아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
"내 아버지를 죽인 곳에서, 기억을 잃고 일하고 있던 내 자신이 증오스러웠고요."
"..."
"모든 것을 지시한 당신은, 더욱 가증스러웠습니다."
"..."
"나에게, 왜 그랬던것인지는 묻지 않을겁니다."
"..."
"그래도 당신은, 가장 강인했던 사람이니까요."
"!"
"내가 기억을 잃었을 때, 나의 또 다른 이름은 조슈아의 개였습니다."
"..."
"기억이 점차 돌아오면서, 나는 내 기억이 사실이 아니길 바랐어요."
"..."
"기억을 잃어버린 내가 기억하는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이었으니까."
"..."
"아마 내가 일반인의 자격으로 CB에 들어왔다면, 당신을 존경했을겁니다."
"..."
"기억을 되찾은 내가 다시 당신의 개가 될 수는 없겠지만."
"..."
"그래도 당신은, 내가 마지막으로 인정 할 수 있습니다."
"..."
"조슈아."
"..."
"당신이 코로나 보리얼리스의 보스여서, 고마웠습니다."
덤덤하게 말을 마친 원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그것이 원우가 조슈아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었다. 조슈아는 원우가 나간 후 한참을 울었다. 남은 도겸과 여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용히 울음을 삼켜내기에 바빴다.
그렇게 모두가 울던 붉은 새벽을 지나, 전쟁의 아침이 밝았다.
12월 4일, THE LAST 발발
"죽지마라."
"..."
"옷 단단히 여미고, 다치면 바로 돌아오고."
"..."
"대답."
"... 예."
"우리 막내, 못 보면 서운할거야."
".. 죽기라도 합니까? 부정타게."
"죽지 말라고, 그러니까."
"가자."
"죽더라도, 명예롭게 죽어야지."
""날씨가, 좋네요. B."
"그러게, 전쟁 할 만할 날씨가 아닌데. 눈사람이라도 만들고 나올 걸."
"전쟁 끝나면, 꼭 눈사람 같이 만들어요."
"그럴까?"
"걱정하지 마."
"..."
"너 놔두고 먼저 죽지는 않아. 김여주."
"..."
"그대신, 나 다쳐서 오면 치료는 해 줘야 해?"
"..아, 진짜!"
"처음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많은 것을 건드려버렸어. S."
코로나 아스트레일스의 포격을 시작으로, 12월 4일 THE LAST가 시작되었다. CA는 순영과 민규가 선두로, CB는 원우가 선두에 서 모두가 그들의 진영으로 향하고 있었다. 차를 타고 향하던 CA 요원들. 그 중 긴장이 되었는지 민규가 총을 들고 숨을 깊게 쉬었다. 그 모습을 본 순영이 웃으며 민규의 등을 한 대 때린다. 짜식, 무서워?
"아니거든요."
"에이, 무섭다고 얼굴에 다 써있는데."
"..."
"형이, 전쟁 끝나고 고기 사줄게!"
"진짜요?"
"응, 기분이다!"
"죽으면 안되겠네."
"당연하지, 죽으면 계약 파기야."
씩 웃은 민규가 창문 밖을 바라봤다. 12월의 겨울 새벽, 그들의 새벽하늘은 아직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막막한 기분에 억지로 웃어보이던 순영도 잠시 웃음을 잃었다. 모두가 잠잠해졌다. 전쟁은 그들에게 드디어 크게 다가온다. 막연하게 언제 시작될지 몰랐던 전쟁이 이제는 코앞으로 다가와 생사를 가르고 있다.
"V."
"네?"
"너는, 지금을 후회하지 않아?"
"..."
조용히 붕대와 약을 챙기던 승관이 자신을 따라 이것저것을 챙기고 있는 한솔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무 말이 없는 한솔을 보며 승관이 힘빠진 웃음을 보인다. 나는, 솔직히 조금은 후회 해.
"..."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렸나."
"..."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게 맞나."
"... B."
"우리, 이제 다 죽는걸까?"
"B, 정신 차려요."
중얼거리며 붕대를 놓쳐버린 승관의 손을 한솔이 잡아챘다. 손을 잡아채고 그의 눈을 마주본다. 텅 비어버린 그의 눈동자, 한솔은 며칠 전 승철이 저에게 말해준 이야기를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B는 아마 이번 전쟁을 많이 두려워하고 있을거야."
"왜?"
"4월 1일에, Z를 한번 잃을 뻔 했어."
"... 아."
"그 때 충격을 많이 받았는지, 괜찮은 듯 보이면서도 가끔 공황상태에 빠져."
"..."
"특히나 이번 전쟁은 언제 끝날지 짐작조차 되지 않으니까, 아마 더 상태가 심각해질거야."
"..."
"네가 잘 살펴 줘. 메딕들이 없으면 안되니까."
"안 죽습니다."
"..."
"죽더라도, 내가 살릴겁니다. 약 다 부어서요."
"..."
"계속 옆에 있을게요, 정신 놓지 마세요."
쾅,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포격소리와 함께 승관이 번쩍 정신을 차렸다.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큰 소리에 둘은 잠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B, 가요. 가방에 셀 수 없이 많은 의약품들을 챙긴 한솔이 승관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미세하게 느껴지는 B의 떨림에 V가 씩 웃으며 말했다.
"빨리 끝내고, 눈 오면 눈사람 만들러 가야죠."
"W."
"응?"
"왜 조슈아를 용서했어요?"
"용서 안했는데."
"에?"
달리는 차 안에서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던 원우에게 말을 건 여주가 물음표를 가득 띄우고 원우를 바라보았다. 그럼, 어제 회의실에서 말한건 뭔데요?
"아, 그건."
"..."
"그냥."
"..."
"물론 당장이라도 죽이곤 싶었지만."
"..."
"그 사람도, 혼자잖아."
"..."
"안타까워, 그냥."
"..."
"내가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난 항상 그의 뒤에 서있었어."
"..."
"뒤에서 보는 그의 모습은 매일 아슬아슬했어."
"..."
"카타스트로피 때, 얼마나 불안함에 쫓겼으면 그렇게 무턱대고 나를 데려왔던건지."
"..."
"별 감정 없어, 이젠."
"..."
"어짜피 전쟁이 끝나면, 널 데리고 이 곳을 나갈거니까."
입가에 미소를 띄운 원우가 밝아오는 하늘을 보며 고개를 돌렸다. 여주는 알고 있다. W 또한 많이 불안할것이라는 사실을. 전담 메딕인 자신은 그의 몸상태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예전만큼 제 능력을 많이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충분히 망가질대로 망가져버린 몸, 그 몸을 이끌고 원우는 전장으로 향한다.
한참을 달려 부대차에서 내린 원우가 삭막하게 펼쳐져있는, 잠시 후면 그들의 피로 얼룩질 전장을 눈에 담으며 작게 숨을 내쉰다.
"...김여주."
"네?"
"나, 죽으면 어떻게 할거야?"
"말이 씨가 된다고,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히, 알겠어."
픽 웃은 원우가 단단히 옷을 여미곤 N에게 다가가 N을 꽉 끌어 안는다. 한참을 말없이 끌어안고만 있던 원우가 N을 품에서 떼어내고 웃으며 말한다.
"이게 마지막이어도."
"..."
"울지 말기."
"진짜,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요!"
"다녀올게, 신부야."
"..!"
능글맞게 웃던 원우가 여주의 머리칼을 흐트러트리곤 제 부대와 함께 앞으로 향한다. 응급키트를 들고 있던 여주의 손이 떨린다. 저 모습이 정말 마지막이라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 자신도 모르게 흘려버린 눈물을 얼른 손으로 닦아낸다. 한참을 말없이 원우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여주가 다급하게 주머니에서 액정이 깨진 자신의 오래된 핸드폰을 꺼내 얼른 카메라로 바꾼다.
"전원우!"
"..."
".. 안녕."
"보고싶을거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