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2월, 첫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뜨거운 핫초코와 함께 지옥의 조별과제를 위해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노트북 앞에 앉았는데, 누군가 자취방 문을 똑똑 두들겼었지. 어제 시킨 전공책인걸까 싶어 얼른 문을 열었더니, 눈 앞은 텅 비어있고 조금 시선을 내려보니 웬 상자 하나가 떡하니 내 앞에 있었다. 아니, 택배가 왔으면 택배가 왔다고 말을 하고 가든가-! 매너라곤 개미똥만큼 없을 것 같은 택배원의 태도에 인상을 확 찌푸리고 얼른 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으으, 추워."
잠깐 문을 열었는데도 불어오는 찬바람에 몸을 오들오들 떨며 이불 안으로 다시 몸을 던졌다. 과제도 꺼졌으면, 방금 가지고 들어온 상자의 내용물인 전공책도 좀 꺼졌으면. 살다보면 한 번.. 아니 여러 번 느끼게 된다는 <나는 왜 사는가?> 를 오늘따라 격하게 느끼면서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었다. 물론 꿈자리가 너무나도 뒤숭숭해 괴성을 지르며 다시 일어나긴 했지만.
24시간, 아니 그 이상으로 공들인 과제 PPT가 웬 이상한 발톱의 공격과 함께 영구삭제가 되는 꿈, 이라고 하면 아마 이 세상 대학생 모두가 끔찍하게 무서워할만한 꿈이 될 것이다. 내일이 발표날인데 이런 꿈을 꾸다니, 액땜한게 분명해!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벌떡 일어나니, 노트북 앞에 무언가가 앉아있어 나도 모르게 빽 소리를 질렀다.
"뭐, 뭐야!!"
"..."
눈 앞에 보였던건 미니 냉장고만한 검푸른 빛이 돌던, 옛날 어릴 적 동화책에서나 보았던 용. 진짜 용이었다. 내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건가 싶어 뺨을 한대 세게 때려보는데, 엄청나게 아프다. 이건 말도 안되는거다.
"우어."
내 얼굴을 보곤 고개를 갸웃거린 용이 작은 날개를 펄럭펄럭 휘젓는다. 아, 안돼! 니 앞엔 내 노트북이 있-
"우어!!!"
쿠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용과 작은 내 탁자가 뒤집어졌다. 꾹 감았던 눈을 다시 떠보니 보이는건 헤롱헤롱거리고 있는 용과 두동강으로 박살 난 내 노트북..
"..."
"..."
굳어버린 내 몸과 표정을 본 것인지 용이 슬그머니 일어나 내 옷 뒤로 숨어버린다. 그래.. 안 숨어있었으면.. 정말 한 대 쳐버렸을지도 몰라..
"내.. 노트북..."
"..."
"내.. 과제... 내 PPT..."
부글부글 끓는 속에 쿵쿵 걸어가 오들오들 떨면서 숨어있는 용자식을 들어올렸다. 큰 곰인형 같이 생긴 크기에 눈은 초롱초롱하고, 빠져나가려고 날개를 펄럭거리며 아등바등 난리를 친다. 어디서 이딴 못되먹은게 들어와가지고...!
"!"
설마 하는 마음에 아까 집으로 들고 들어왔던 상자를 찾았다. 활짝 열려있는 상자의 속은 텅 비어있다. 그럼 내가 들고온건 설마 이 거지같은 아기용이라는 걸까..
"너 뭐야!!!"
"..."
"너 뭔데!! 남의 집에 마음대로 들어오고 난리야!!"
"..뀨.."
"..."
아기용을 들고 화가 난 마음에 이리저리 흔들며 역정을 내니 아기용이 뀨.. 하며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곤 날 쳐다본다. 아니.. 귀엽게 생긴 애가 그러면.. 또 마음이 약해지고..
"..."
결국은 용을 내려놓고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싸맸다. 내일이 발표인데 노트북이 두동강이 났다. 이건 필시 휴학하라는 계시다.
"아.."
"..."
"어떡하지.."
한참을 그렇게 끙끙대고 앉아있으니 아기용이 안절부절 못하며 내 주위를 계속 빙글빙글 돈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비유가 좀 더럽긴 하지만 진짜 그랬다. 어쩔줄 몰라하던 용이 거짓말처럼 두동강 나버린 내 노트북을 양 손에 들고 펄쩍펄쩍 뛴다.
"..?"
"뭐 어떡하라고.."
"니가 부셨잖아.."
"뀨!"
노트북을 들고 이리저리 뛰던 용이 문 앞으로 가서 계속 총총 뛴다. 문을 열어달라는건가 싶어 아무생각 없이 문을 열어줬더니 휙 밖으로 나가버린다.
"아.."
"버려주겠다고.."
"..."
"이 망할 자식아!!!!!!!!!!!!"
2.
그래, 이건 꿈일거다. 꿈이겠다 싶어 휙 나가버린 문을 쾅 닫아버리고 울면서 이불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건 꿈일거야, 꿈일거라고! 한참을 이불킥을 하며 엉엉 울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보다. 잠에 들었다 깬 건 문이 부서져라 쾅쾅 두들기고 있는 노크 소리. 화들짝 놀라 이건 또 무슨일인가 싶어 얼른 일어나 조심스레 문 쪽으로 다가가봤다. 금방이라도 부술것같이 쾅쾅쾅 두들기는 소리에 무서워져 뭐,뭐세요!! 라고 해버렸다.
"춥다고, 빨리 문 열라고!"
"...?"
처음 듣는 남정네의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나는 2n년 인생 남정네들과는 말을 섞어본 적이 없으며.. 전화번호부에 아는 남정네들이라곤 학교 선배들과 겨우 번호를 교환한 중고딩 시절 남자애들밖에 없는데.. 이게 웬 자다가 노트북 부서지는 소리란 말인가. 설마 요즘 들어 심해지고 있다는 대학생 자취방 습격사건..? 온갖 생각이 다 들어 용기를 내어 문 밖에 외쳤다.
"내,내가 그 쪽이 누군줄 알고 문을 열어줍니까!!"
"...뭐어?"
"..."
"노트북 받기 싫냐고!! 춥다고!!"
"...노트북..?"
아, 아까 전 아기용 하나가 부서트리고 간 내 노트북..말입니까..? 꿈인줄 알았는데.. 꿈은 아니었나보군요.. 제 노트북이라면 아까 그 아기용이 양손에 들고 날랐습니다만.. 또 한번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애써 잠재우고 머리를 굴렸다. 이게 정말 판타지 영화라면 아기용이 샘송 전자 수리센터에 가서 내 노트북을 말끔하게 고쳐왔을 수도 있다.
"무슨 개소리야!"
"뭐?"
"아, 아니.."
그래.. 그런 개소리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아직 초저녁이고 하니까 목숨 하나 부지할수는 있겠지.. 만약에 저 사람이 노트북 말고 칼을 들고 있으면 그 상태로 저 남정네의 급소를 차고 도망가버리는거다..!!ㅠㅠ 혹시 몰라 자취방 희귀아이템인 프라이팬까지 들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아, 진짜 얼어 죽겠는데 문 빨리빨리 안 여나?!"
"...?"
3.
"..누구세요?"
"?"
"...?"
"아, 노트북 부셔서 고쳐왔잖아!"
"...?!"
그러니까 지금 이 소리는, 아까 뀨? 하던 귀여운 아기용과 지금 내 앞에 서있는 건장한 사내가 같은 영혼이라는 거다.
"..뭐요!?"
"아, 추워. 빨리 들어가!"
코 끝이 빨개진 남자가 나를 집으로 들이밀었다. 아니, 내가 니가 누군줄 알고 내 집에 들이냐..! 내 이불을 들어올려 몸에 꽁꽁 둘러싼 남자가 노트북이나 확인해보라며 나에게 노트북을 건넨다. 얼굴에 물음표를 잔뜩 띄우고 우선 노트북부터 확인해본다. 아니..이거.. 내꺼 맞긴 한데.. 아까 날려먹은 줄 알았던 과제물도 고스란히 들어있어서 오열할것 같긴 한데..
"누구.."
"?"
"누구세요.."
"..아."
가만히 이불 속에서 얼굴만 뺴꼼 내밀고 있던 남자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집을 살핀다. 그, 이게. 내가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런데.. 아까와는 다르게 안절부절 못하면서 자꾸 말을 더듬는다. 아니 또 저러는거 보니까 아까 그 용이랑 비슷한 구석이 있는것같기도 하고..
"있잖아. 나는 용이야."
"?"
"지금은 사람인거고, 아까 니가 봤던 그 작은 용이 나 맞아."
"?"
"원하면 그 용으로 다시 변할 수도 있는데, 걔랑 나랑 성격이 완전 천지차이라서."
"? 바꿔봐요."
"응?"
"바꿔보라고."
"아니..그게.."
"빨리."
가만히 날 쳐다보던 남자가 입을 앙다물곤 날 노려봤다. 그러더니 이불 속으로 들어가 뭔갈 하는가 싶더니 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이불이 푹 가라앉는다.
"??"
얼른 이불을 들춰보니 아까 봤던 아기용이 엎드려누워있다. 미친, 이게 뭐야! 깜짝 놀래서 뒤로 자빠지니 아기용이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면서 나에게로 다가온다.
"마망!"
"???"
"뀨!"
"???!"
나와 눈이 마주친 아기용이 실실 웃으면서 자빠진 나에게로 뒤뚱뒤뚱 걸어온다. 다다다 달려와 내 품에 폭 안겨버리는 아기용. 꽤나 푹신푹신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헤실헤실 웃어버렸다.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 아까 그 건장한 싸가지없는 남정네가 이 아기용이라는 소리..?
"...아 좀 이상한데.."
"뀨?"
순간 소름이 돋아 얼른 아기용을 뗴어놓았다. 어으, 어으! 일단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알아야겠다 싶어 용에게 말을 붙였다.
"친구야, 다시 아까 그 남자애로 돌아와주지않겠니?"
"..뀨?"
".. 설마 내 말 못알아듣니?"
"뀨."
"..."
뀨? 하며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용의 순둥순둥한 모습에 어떻게해야하나 싶었다. 말이 통해야 뭘 어떻게 하던가 하지..! 아기용을 안아들고 이리저리 탐색해보기 시작했다. 분명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는 무언가가 있을텐데. 아기용을 번쩍 들고 이리저리 확인을 하니 아기용이 버둥거린다. 용을 들고 확인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어떻게 해야하나 멍하니 앉아있는데, 마침 눈에 들어오는 아기용을 들고 들어왔던 문제의 상자..
"..."
엉금엉금 기어가 상자 속을 뒤졌다. 이리저리 흔들어도보고, 뭐 빠트린건 없나 탈탈 털어보고, 상자를 뒤져도 어떻게 해야한다라는게 나오지 않아 멍청하게 앉아있는데, 뒤에서 무언가 펑 터지는 소리에 괴성을 지르며 뒤를 돌았다.
"으에에!!"
"시끄러워."
"오, 옷이 바꼈어!"
"뭐."
"아니, 어떻게 돌아온거에요?"
"이거."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 남자가 손가락에 걸려있는 팬던트 목걸이 하나를 보여준다. 자신이 용이 되었을 때와 똑같은 색깔의 보석이 박혀있는 목걸이. 우와.. 하며 쳐다보니 안아프게 딱밤을 한 대 날린다.
"아!"
"그래서, 날 왜 부른건데."
"? 내가 님을 언제 불렀어요."
"?"
"?"
둘 다 멍청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난 부른적이 없는데? 어깨를 으쓱해보이자 남자의 표정에 당황함이 한가득이다. 아닌데, 그럴리가 없는데.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던 남자가 자신이 담겨온 상자를 확인하곤 얼른 상자에 붙은 종이를 확인해본다.
"여기가 어디야?"
"여기요? 서울인데요."
"뭐어?"
"?"
"여긴 가니메데라고 써있는데?!"
"가, 가니메데는 또 어디야?"
"..."
가,가니메데..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얼빠진 표정을 하고 남자를 쳐다보니 남자도 멍청한 표정이다. 갑자기 켁켁거리며 기침까지 하는 남자에게 얼른 물 한잔까지 떠다주며 상황을 살피는데 뭔가 꼬여도 단단히 꼬인 모양. 안절부절 못하며 이건 꿈일거야! 하며 종이를 계속 들여다본다.
"아, 설마.."
"..."
"배송지 오류인가요."
"..."
"..아, 몰라."
"?"
"나 그냥 여기서 살래."
한숨을 한번 쉬더니 대자로 뻗어 바닥에 드러누워 버린 남자가 눈을 감는다. ? 진심 당황스럽네요. 이 집 집주인은 전데요.
"그냥 살래. 밖에 추워."
"아니..저기요."
"이거, 니가 가져."
"예?"
"너가 내 주인 해, 그냥."
귀찮은듯이 방금까지 제 손에 걸려있던 푸른빛 팬던트를 내게 휙 던져주곤 그대로 잠들어버린다.
"아니, 저기요."
"..."
"? 자는거에요 지금?"
"..."
"?????"
4.
그렇게 반인반룡 김민규와 같이 살게되었다고 말하면, 도대체 이 어이없는 이야기를 누가 믿느냔 말이다. 21세기 서울 자취방에 난데없이 뚝 떨어진 용 한마리와 평범한 대학생의 좌충우돌 동거생활! 이라고 하기엔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에 그 날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래, 어찌됐건 시작된 반인반룡 김민규와 동거생활은 벌써 1년이 지나가고 있다.
김민규는 사람인 척 매일 나와 대학교에 출석도장을 찍고 있다. 처음 김민규를 데리고 갔던 날, 김민규의 잘생긴 외모 때문인지 강의실에 사람이 몰리는건 일상이요,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인파에 치여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난리가 아니었다. 아주. 연예인이 온 것 마냥 들이닥치는 사람들 때문에 결국 그날은 자체 공강, 김민규와 함께 얼른 학교를 빠져나왔었다.
"야, 괜찮아?"
"...괜찮을리가.."
기진맥진, 진이 다 빠져 혼이 나가버린 나를 빤히 보던 김민규는 여기 잠시 서있으라고 하더니, 쌩 달려가 약국에서 피로회복제 하나를 사왔다. 이거 먹어! 하고 주는 그 모습이 조금은 귀여워서 피식 웃어버렸더니, 뭘 웃냐며 얼른 마시기나 하라며 네 손에 병을 쥐어줬었다.
"고마워."
"... 너 설마 병도 못 따?"
고맙다고 말한 뒤 얼른 뚜껑을 따서 마시려는데, 손에 힘이 안들어가 혼자서 낑낑거리고 있자니 김민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병을 휙 가져가버렸다. 여자애가 이렇게 힘이 없어서 뭘 하겠냐며, 혀를 끌끌 차곤 그 큰 손으로 한번에 뚜껑을 딴 김민규가 그대로 한 모금 마시고는 내게 병을 건넸다.
벤치에 나란히 앉아 오늘의 일을 생각하다, 그래도 이렇게 다니는게 나쁘지만은 않겠다고 생각을 했다. 반인반룡이라,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영원히 말하지못할 비밀 친구가 생긴것만 같아 혼자 실실 웃고 있는데,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김민규가 내게 말을 하더라.
"야, 나 학교 다니지 말까?"
"왜?"
"너 힘들잖아."
"..."
"응? 다니지 말까?"
"무슨 대답을 원하는건데.."
"원하는 거 없어."
"그럼 다니지마."
".. 진짜?"
"나 힘들것같다며."
"..진짜? 다니지 마?"
"... 너 원하는 대답 있는거잖아."
"..."
김민규는 좀 바보같을 때도 있다.
"여어, 민규 안녕!"
"안녕."
결국 김민규는 1년째 나와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물론 강의는 도둑강의식으로 듣고 있지만, 꽤 재밌긴 한가보다. 덕분에 모닝콜은 언제나 김민규의 몫, 절대 사람 모습으로 밤에 자면 안된다고 내가 으름장을 놓으니, 매일 용으로 변해 쿨쿨 잠을 자곤 아침마다 나를 흔들어 깨운다. 아기용으로 변했을 땐 솔직히 귀엽다, 좀 많이.
"김여주, 너 소개팅 받을 생각 없냐."
"뭐어?"
점심은 역시 햄버거! 김민규가 가장 좋아하는 햄버거집에 와서 제일 처음 들은 말. 너 소개팅 안할래?
조용히 햄버거를 먹고 있던 김민규가 갑자기 쿨럭거리며 콜라를 들이마시는게 보였다. 당황한 마음에 내가 뭔 소개팅이냐며, 그런거 받을 생각 없다고 말을 하니 친구가 사진을 보여주며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이 나이에 소개팅 한번 받아봐야되지 않겠냐며 친구가 영업을 시전하고, 사진을 보니 잘생기긴 했다. 성격도 좋고, 나이도 나와 동갑이라는 말에 살짝 혹했으나...
혹했지만.....
혹했기 때문에.......
"야, 너 진짜 소개팅 받을거야?"
"..응."
결국은 넘어가버렸다.
5.
"아, 진짜 할거야?!"
"이미 약속 다 잡아놨다니까, 취소 못해!"
"가지마! 가지말라고!"
"아, 니가 뭔데!!"
"..."
자꾸 옆에서 가지말라며, 그 남자는 딱봐도 수상해보인다며 자꾸만 징징거리던 김민규가 니가 뭔데! 라고 성질을 부려버리자 상처받은 눈으로 날 바라본다. 아니, 그게 그렇게 말하려고 한건 아닌데…. 당황한 표정으로 김민규를 바라보니 이미 상처받을 대로 받고 삐져도 엄청 삐진 표정. 결국은 나도 성질이 나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나 나간다."
"어, 어디가!"
"토끼 잡아먹으러!"
혼자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후드집업 하나를 걸쳐입고 휙 나가버린 김민규. 토끼 잡아먹으러 간다니, 화가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다.
결국 김민규는 밤 사이 돌아오지도 않았다. 아침이 되고 오랜만에 혼자 일어난 내가 머리를 정리하며 자꾸만 신경이 쓰여 문 앞을 쳐다봤다. 밤 사이 뭘 하고 돌아다닌건지, 진짜 토끼를 잡아먹은게 아닌가 싶어 소름이 훅 끼쳤다. ..신경쓰지 말자, 자기가 먼저 성질냈으면서.
텅 비어버린 집을 놔두고 늦은 점심쯤이 되어 밖으로 향했다. 약속 장소로 가면서도 자꾸 김민규 생각이 나 마음이 쓰였다. 밥은 먹었나, 아침 안 먹으면 배고프다고 징징거릴텐데. 설마 다른 주인을 만나 도망가버렸나? 에이, 걔가 그렇게 정 없는 애는 아니지.
"..."
가면서도 계속 김민규 생각을 하는 탓에 결국은 내 뺨을 한대 세게 때렸다. 생각하지 말자, 소개팅이나 생각하자! 하고.
카페 앞에서 다시한번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심호흡을 한번 하고 카페로 들어섰다.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보이는 저번 사진 속의 그 남자. 잘생기긴했다. 웃으며 앞자리에 앉으니 씩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이름이 김여주, 라고 했나요?"
"네, 맞아요. 반갑습니다."
괜찮은 분위기에 편한 마음으로 얘기를 이어나갔다.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후 자신이 잘 아는 레스토랑이 있다며 함께 저녁을 먹자는 말에 흔쾌히 수락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어버렸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얘기를 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혼자 실실 웃으면서 소개팅남 옆을 따라 걷는데, 슬그머니 내 허리에 손을 올린다.
"!"
2n년 인생, 나는 한번도 남자와 이런 썸도, 핑크빛 기류도 타본적이 없다. 내가 한껏 긴장된 모습을 하자 소개팅남이 픽 웃으며 뭘 그렇게 긴장을 했냐고 놀린다. 허허허, 웃으며 그 상태로 계속 레스토랑 쪽으로 가는데 계속 빙글빙글 도는 느낌에 혹시 길을 잃은건가 싶었다.
"저기, 길이 이쪽이 맞나요?"
"아, 제가 길을 잘못 들었나봐요."
"아..."
"도착한김에, 여기 들어갈까요?"
"..네?"
소개팅남이 발걸음을 멈춘 곳은 금방이라도 낡아서 부서질 듯한 모텔인지 호텔인지도 모를 건물이었다. 아무리 내가 비록 남자 없이 살아온 경력이 20년을 넘었다고 하지만, 범죄는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는 짬빱이다. 여자의 촉에 이 자식은 또라이가 분명했다. 그것도 좀 단단히 미친 또라이.
"좋잖아요, 네?"
"? 진짜 미쳤네."
내 허리에 손을 계속 얹은 채 나를 끌고 들어가려는 미친놈 다리를 세게 걷어찼다. 잠시 아파하던 남자의 눈이 돌아갔다. 아, 여자의 직감으로 이건 내 생사가 달린 일로 변했다. 방금.
남자를 최대한 세게 밀치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하이힐이 대수냐, 일단은 살고봐야겠다 싶어 힐까지 벗어던지고 맨발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건 진짜 잡히면 죽겠다 라는 생각에 무서운 마음이 들어 눈물까지 나왔다. 그 때 김민규 생각이 문득 난건 아직도 정말 바보같다고 느낀다.
하늘은 벌써 깜깜해졌고, 발은 너무 아프고 뒤에선 눈돌아간 미친놈이 쫓아오고 있다. 결국은 눈물콧물 다 흘리며 엉엉 울면서 뛰어가다 발을 삐끗해 주저앉아버렸다. 깜깜해진 덕에 얼른 주차되어있던 차 뒤로 가 숨으니 남자가 나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손으로 입을 꾹 틀어막고 두근대는 심장과 함께 숨었다. 자꾸 눈물이 나와서 몸이 덜덜 떨렸다. 아, 김민규 말 들을 걸.
소개팅 나가지말라고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김민규가 자꾸 생각이 나 계속 눈물이 났다. 얜 어디서 뭐하고 있는건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고 싶어도 전화를 거는 순간 들킬 것만 같아 얼른 생각을 접었다. 점점 남자와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에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숨었다. 그래봤자 차의 뒤쪽. 조금이라도 들어온다면 바로 들키는 자리였다.
진짜 이러다 죽는걸까? 나 아직 김민규 주인도 못 찾아줬는데? 두 손을 꼭 모으고 살려달라고 빌어봤다. 신님, 살려주시면 제가 모든지 다 하겠습니다. 살려만주세요, 하고 엉엉 울고 있으니 남자의 발소리가 들린다. 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발소리에 심장이 터질것만 같아 손으로 입을 얼른 틀어막았다.
"야."
"!!!!!"
6.
"야."
"!!!!"
"... 아오, 진짜."
"내가 뭐라 그랬어."
"..."
"그 새끼 위험하다고 했지."
"..."
"근데 넌 뭐라 그랬어."
"..."
"뭐? 니가 뭔데? 니가 뭔데에?"
"..."
"진짜 죽고싶냐?!"
"김민규.."
내 앞에 서있는 김민규가 얼마나 반갑던지, 김민규가 한껏 짜증을 내며 내게 불같이 화를 내는데도 그 모습이 너무 반가워 엉엉 울어버렸다. 내가 울자 짜증을 잔뜩 내고 있던 김민규가 당황하며 얼른 무릎을 굽혀 앉아 나를 살핀다.
"야, 괜찮아?"
"..."
"진짜 미친놈이네, 이거."
나를 살피던 김민규가 상처가 난 내 발을 봤는지 화가 잔뜩 난 한숨을 내뱉는다. 가만히 눈을 감고 화를 삭히던 김민규가 돌아서 내게 등을 내민다.
"업혀."
"..."
"병원 가게."
"김민규."
"뭐."
"안 무거워?"
"무거워."
"내릴까?"
"..그냥 조용히 가자. 좀."
내 신발은 또 언제 주워왔는지, 내 신발을 손에 건채 날 업곤 묵묵히 집으로 향하는 김민규는 아직도 화가 많이 난 거같다. 거의 날다시피 나를 업고 간 병원에서 발에 붕대를 칭칭 감고 나온 나를 본 김민규의 표정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을거다. 살면서 그렇게 무서운 표정은 처음 봤다. 병원에서 집에 가면서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은 김민규의 화를 풀어주려 계속 말을 걸어봤지만 답이 없다. 결국 나도 입을 꾹 닫고 소심하게 업혀있는데, 김민규가 입을 연다.
"어때."
"..응?"
"나 없으니까 어떻냐고."
"..."
"아침에 혼자 잘 일어났어?"
"..."
"머리는, 잘 말렸어?"
"..."
"옷은 잘 입었고?"
"..."
"신발도, 내가 굽 높은거 신지 말라고 했지."
"..."
"짧은 치마도 입지말라고 했고."
"..."
"나 없으니까 아주 막 나가네."
"..."
"내 말, 들을거야 안들을거야."
"... 들을거야."
"..."
김민규의 말에 소심하게 대답을 하니 김민규가 자리에 멈춰서서 한숨을 쉰다.
"오늘 같은 일, 또 있으면."
"..."
"그 땐 진짜 나갈거야."
".. 야."
"그러니까 이런 일 또 없게."
"..."
"너가 내 평생 주인 해."
비하인드 스토리 |
1. 민규용은 원래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다 (ㅎ) 2. 밍구리는 진짜 서울에 잘못 온게 맞다 3. 가니메데는 민규의 고향별 -ㅅ- 4. 민규는 대학교 밥을 싫어한다 민규: 맛없어! 6. 소개팅 전날 밤 밍구리는 숲 속에 들어가 용 모습으로 밤을 보냈다 민규: 추워서그랬어! 7. 그 다음 날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밍구리는 여주의 뒤를 쫓아다녔다 8. 사실 밍구리는 카페에도 있었다 9. 쫄래쫄래 따라가다 여주를 구한 밍구리 10, 집에 여주를 데려다주고 토끼를 잡아먹으러 간다고 말을 한뒤 용모습으로 날라다녔다 11. 용 모습으로 날아다니던 밍구리 길을 걷고 있는 소개팅남을 포착 12. 다음 내용은 너무 잔인해 포함하지 않겠습니다. 13. 밍구리는 사실 아기용이 아니다 (?)(ㅎ) 14. 밍구리는 다양한 연령대의 용으로 변할 수 있다 15. 아기용으로 왜 변했는지는 밍구리만 알고 있겠다 ㅎ 16. 밍구리는 여주를 좋아한다 17. 용들에게 야 너 내 평생주인해라 라는 말은, 결혼하자 라는 말과 똑같다 >ㅅ< 18. 밍구리는 츤데레가 분명하다 19. 여주에게 준 팬던트는 용들이 정말 꼭 간직하고 있어야 할 소중한 물건 20. 그게 없으면 용들은 죽는다 21. 근데 그걸 밍구리는 여주에게 주었다 22. 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