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열] 천만번째 남자 07.
성열은 곧 명수를 끌고 자리에 앉혔고, 우현은 먹다가 다시 시켜놓은 밥을 명수의앞에 놓아주며 먹으라며 고갯짓을 했다. 말같아선 먹기싫은데 오늘 아침도 제대로 하지 못한터라 배에서 신호가 오는 바람에 명수는 져주는척 젓가락을 들어 반찬과 밥을 떠먹었다. 성열은 한번 풉 웃었다. "근데 모자 어디갔어?" "아..모자요?"
성열이 당황하며 오물오물 씹던 입을 잠시 멈추고 명수와 우현을 번갈아 눈동자를 굴렸다. 곧 입에 밥을 가득 담고 있던 명수가 고개를 들어 입을열었다. "그거 내가 쓸려고, 나도 형이랑 취향이 비슷한가봐" "니가 쓴다고? 옷이라곤 검정색밖에 안입는애가 노란색 털모자를 쓰겠다고? 푸하하하"
"한번 나도 이미지좀 바꿔보려한다, 야 이거 나주는거지?"
털모자를 손에 쥔채 흔들거리며 성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눈빛으론 '걍 응이라고 대답해라' 라며 쏘아대는 명수때문에 성열은 표정을 찌푸린채 대충 고개를 끄덕인채 밥에 시선을 두었다. 저거 비싸게 주고산건데..아 내돈..밥에 얼굴을 묻고 있는데 밥위로 반찬이 올라왔다. 삐죽 튀어나온 입을 다문채 고개를 들어보니 제 밥그릇에 반찬을 살포시 놓고 샐쭉 웃는다, 남우현이. "내가 놔주는거니까 맛있게 먹어, 당연히 내가 놔주는거니까 맛있겠지." "음..저기"
"왜?"
"그쪽 그룹은 왕자병은 필수로 지니고 있나봐요..그러니까 나쁘게 말하는게 아니고..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고 해야하나?"
"그건 명..아니 엘한테 어울리는 말아닌가? 우린 덜한거지"
"..."
엘이나 남우현이나 둘다 똑같은데 뭘 재는거야..성열은 우현의 말을 씹어준채 밥을 오물오물 먹었다. 큼큼 헛기침을 내뱉으며 엘이 물을 먹는데 부산스럽게 먹어 시선을 엘에게 집중했다. 성열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엘아 이리와봐"
"뭐, 먹는게 너무 멋있어보이냐?"
"이리와봐, 창피당하기 싫으면"
명수는 뚱한 표정으로 얼굴을 성열에게 살짝 가까이 댔고, 성열은 명수의 입 끝자락에 묻은 양념을 엄지손으로 쓸어닦아주었다. 순간이였지만 명수의 얼굴이 양념보다 더 빨개졌다.
"너..너 은근히."
"나 아니였으면 창피당할거아니야, 고마워해야지!"
"고마워는 무슨, 밥 다먹었으면 일어나자"
명수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나갔고, 성열도 겉옷을 챙겨입고 우현과 함께 나왔다. 계산서를 들고 있는 우현에게 내겠다며 옆에서 졸라대며 말해도 이미 카드를 내버린지라 입을 꾹 다물수 밖에 없었다. 엘 저자식은 계산한다는 말한마디도 없이 부채질만 하고 있으니, 여름도 아닌데.
"다음에 우리둘이 밥먹을때 내줘"
"맛있게 잘먹었어..요"
아직까지 반말을 하겠다고 하지만 어설픈게 계속 존댓말이 입으로 튀어나왔다. 목발을 짚고 어설프게 나오는데 옆에서 우현이 꼭 잡아주었다. 고맙다는 어설픈 미소와 함께 같이 한걸음 한걸음을 같이 했고, 입이 피노키오 코 만큼이나 튀어나온 김명수는 또 씨비를 슬슬 걸어오기 시작했다.
"진짜 컨셉이 게이인거냐? 참내, 우현이형 이런모습 처음본다, 맨날 지 멋대로에.."
"입이나 튀어나온거나 집어넣어,"
우현이 명수의 삐죽 튀어나온 입을 손으로 밀어 집어넣어 명수는 읍읍 거리며 말을 잠시 멈췄다. 성열이 멍하니 목발을 짚은채 우현옆에 서있는것이 거슬려 우현의 손을 떼어내고 성열의 옆에 가서 섰다. 붕대에 둘러싸인 발이 많이 불편해보였다.
"집은 어떻게 갈꺼야" "매니저형 온다고 했어, 먼저가..너 진짜 화풀은거지?"
"글쎄,"
"뭐가 또 글쎄야! 너 자꾸 이런걸로 사람들었다 놨다가 할래?"
"알았어, 진정해 목발로 칠기세다?"
"칠수도 있으니까 니 멋지고 잘난얼굴 다치고 싶지 않으면 화풀었다고 얘기해라?"
"어이구 무서워"
또 성열의 승질을 긁어 명수와 성열이 티격태격 하고 있는 와중에 성열의 매니저 차가 도착했고, 흥-하며 우현에게만 곧바르게 인사하고 차를 타버리는 녀석에게 소리를 치는데 차가 휙 가버렸다. 이성열의 계략인지 뭔지는 몰라도 명수의 손은 곧바로 핸드폰으로 향했다. "우리도 이제가자, 그리고 성열이좀 그만 괴롭혀라" "형이 무슨 상관이야..재 하는짓 봐 여우같지? 지금도 사람 열받게 하고 도망가고"
"니가 그런식으로 나오는데 누가 좋다좋다 박수쳐주냐?"
"편드냐? 몇년을 같이한 동생보다 한번본 저자식편드냐고"
"한번본 저자식이 인상깊네,"
"뭔소리야"
"맘에든다고, 잘골랐어"
우현이 이어폰을 끼며 차에 타자, 명수는 표정을 바꾸며 뒤이어 차를 탔다. 얄미운 녀석에게 열폭해서 카톡을 보냈다. 그리곤 문득 창가를 보았다. 파란 하늘이 유독 예뻤다. 마치, 누구처럼. 그 누구가 하늘위로 그려졌다. 얼마안되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무슨생각을 하는거냐며 머리를 툭툭 쳤다. 요즘 이상해도 너무 이상해진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들어 이곳저곳 살펴보았다. "우현이는 여기서 내려서 라디오 끝나면 형한테 전화하고"
우현은 라디오 스케줄떄문에 중간에 방송국에 내렸고, 문이 닫히고 명수는 어느새 어둑해진 창밖을 보았다. 어느새 누군가의버릇을 똑같이 따라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이성열은 늘 창밖 어딘가를 멍하게 보고 있었다. 차는 계속 달리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라디오를울렸다. DJ가 '신인 그룹 맥시멈~ 소개부탁드릴게요' 라는 말과 함께 귀가 쫑긋했다. 마지막에 얄상하게 나오는 성열의 소개를 듣고 픽 웃었다. 하지만 라디오는 다른 멤버들 위주로 진행되어 명수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정작 듣고싶은애는 말도 안하네, 평소엔 아주 따지듯이 말도 엄청나게 하면서.."
하지만 혹여나 성열의 목소리가 들릴까 경청하며 들었다. '맥시멈이 가수를 하게 된 이유는? 우리 성열씨 말도 안하고 꿍하게 있네!, 성열씨가 말해봐요'
'저요?'
'우리 성열씨가 가수를 하게 된 이유는 뭐에요?'
'...'
'성열씨 목소리 듣고싶어하는 팬분들이 엄청 많네요, 게시판이 아주 그냥! 성열씨 말하게 해달라고 난리가 났어요'
'저 지금 말하고 있는데요? 흐흐'
명수는 귀에 꽂힌 성열의 음성에 피식 웃었다.
'성열씨가 가수를 하게 된 이유는..뭐에요?' '저는..엄마..때문에요 흐..'
'엄마요?'
'지금 하늘에 계신 저희 어머니에게 제 목소리를 들려드리고싶어요..'
'...'
'엄마가..돌아가시기 바로 직전에 했던 말씀이..제 노래를 꼭 듣고싶다고 하셨어요'
'...그랬군요, 성열씨가 마음이 많이 아픈가봐요, 성열씨 휴지로 눈물 닦으세요'
곧 성열의 울음소리가 라디오에 퍼지고 '성열씨 엄마께 음성편지 하나 해볼까요?' 라는 디제이의 조심스러운 말에 성열이 입을 뗐다. '엄마 듣고있어? 엄마 아들 노래.....노래해...흡...끅..'
'하이고..저도 눈물이 날려하네요, 성열씨 진정할동안 노래 한곡 듣고 올게요'
명수조차 눈물이 맺힐뻔했다. 평소에 잘 울지도 않는 성격인데 이상하게 눈가가 촉촉해졌다. 핸드폰 최근 통화에 '이성열' 이라는 이름 세글자에 눈을 두었다. 이 시간 울면서 눈물을 짜내고 있을 성열의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그것도 잠시 진정했는지 분위기는 다시 원상태로 복귀했다. '성열씨 울지말라고 팬분들이 완전 걱정해주네요' '고맙습니다. 저 이제 안울어요 헤..'
'음 다음 질문은...신인이라 아직 친한 연예인분들이 별로 없으시죠? 그래도 친한 연예인분들 서로 말해볼까요?'
'...'
'먼저 성열씨! 팬분들이 제발 입을 열게 해달라고 난리가 또 났어요,'
'아 저요?'
명수는 순간 제 이름이 불려지기라도 할까 두근대는 마음으로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저는...'
'....'
'인피니트의 엘씨요,'
'엘씨요!!!!?'
'네, 저만 그런거면 웃기겠죠?'
'어떻게 친해진건가요?'
'어쩌다가요..뭐라고 말하기도 애매해서..'
'와 엘씨라니, 처음부터 쎄네요!'
'그런가요?..'
'엘씨가 듣고 있을지도 모르니 엘씨에게 음성편지~'
'여긴 음성편지 되게 많이 시키네요?'
풉, 명수는 웃으며 나름 성열이 무슨말을 할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채 들었다. 매니저 조차 흐뭇하게 웃으며 방송에 집중했다.
'음..푸흐흐..저 이런거 처음해보는데..'
'엘아, 듣고있니? 근데 엘은 바빠서 잘안듣는데..푸흐흐'
'음 뭐라고 해야할까요?...흐흐..엘아'
'고마워 마니마니 이따만큼 고마워, 나머지는 라디오끝나고 까까톡 에서 보자 헤'
성열의 귀여운 웃음소리를 끝으로 음성편지는 끝이났다. 명수의 입은 진짜로 찢어질듯이 웃고 있었다. 어느덧 숙소앞에 도착하고 명수는 도착하자마자 성열에게 전화를걸었다. 얼른 받길 기도하며 입술을 앙 깨물었다.
- "여보세요?" "야, 너 방송에서 내 발언했다며? 내가 들은건아니고, 다른 친구들이 알려주더라" - "안듣길 잘했다"
"그렇게 나한테 고마웠어?"
- "할말없어서 그냥 한말이야"
"웃기시네, 이제 기사뜨고 난리 나겠네, 신인주제에 인피니트랑친하다고 하면.."
- "또 시작이다, 또,"
"어디야"
- "집에가,"
"숙소 안가고?"
- "응 난 집이 좋아서 집에가,"
별 다르지 않게 통화를 하다가 성열이 집에 다왔다며 비밀번호를 치며 전화를 받았다. '야!왜 지금와' 여자 목소리에 명수는 순간 입이 닫혔다.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치는 성열의 목소리를 듣다가 어이가 확 가셨다.
- "여보세요? 엘아?" "..."
- "전화기가 이상한가? 엘아 내말들려?" "어..들려, 너 집에 여자 데리고..ㅇ..."
전화가 뚝 끊겼다. 지금 여자랑 같이 집에 있는거야? 명수의 손끝이 초조한듯 떨려왔다. 아니, 이성열이 여자랑 있건말건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생각하려는데 얼굴이 확 빨개지고 몸이 떨려왔다. 이제 진짜 몸이 스트레스떄문에 이상해지나보다, 내일 당장 병원문 열자마자 가봐야지,
. . . "야!왜 지금와"
"일때문에 늦는다고 했잖아, 라디오가 갑자기 잡혀서"
"니 발목은 왜이래! 너 나없는 사이에 왜이래"
"이성종 또 잔소리다, 어우 시끄러, 배고파"
"그럴줄 알고 밥은 차려놨어 내 어깨에 손올려 잡아줄게"
"왠일로 호의적이야? 너 나한테 또 무슨 죄졌냐?"
"아..아니? 너가 엘 싸인받아다줘서 내가 한순간에 인기스타가 됐어"
"뭐야 그거때문이야? 난 또 왠일로.."
성종이 성열을 자리에 앉혀주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집어주었다. 밥을 먹는데 역시 이성종표 밥은 임금님표 밥보다 맛있는듯하다, 성열은 맛있게 오물쩍 거리며 밥을 입안가득 퍼서 먹었다. 그 시간 명수의 모습은 꿈에도 모른채,
. . .
명수는 한잠도 자지 못했다. 그깟 여자목소리가 뭐라고 신경을 쓰냐하는데, 그 여자목소리가 꿈에도 나와 명수를 괴롭게 할정도여서 잠을 자지 못했다. 다크서클이 한창 깔린 눈을 하며 일어나니 아침 11시를 가리켰다. 오늘은 별다른 스케줄도 없어서 한가한데 뭐하지, 생각하다 오늘역시 성열과 우현의 녹음이 있다는 말을 떠올렸다. 명수는 침대에서 털썩 일어나 잽싸게 준비를 하려 욕실로 들어갔다. 평소보다 더 빠르게 준비를 하고 역시 거울로 외모 체크를 한다음 녹음실로 향했다. 어제 성열이 있던 보컬연습실로 도둑이 집털러가듯 발꿈치를 들어 발소리가 나지 않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문이 살짝 열려있고, 아직 우현이 오지 않은듯 녀석은 목발을 옆에 두고 쇼파에 혼자 앉아 전화를 하고 있었다. 어젯밤 그여자랑 하나? 명수는 저도 모르게 문쪽으로 귀를 가져다댔다. "아 진짜 어제 같이 잤을때 이불속에 놔뒀다니까?!"
"그러니까 난 그냥 니꺼 한번 슬며시 봤을뿐이라니까?"
"아 진짜 됐어, 너 집에가서봐, 나 오늘 녹음있으니까 어제랑 비슷하게 들어가"
전화 내용을 듣던 명수는 그대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