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으로 밖에 글을 못 쓰는데 키보드가 점점 망가지는 기분이 듭니다.
몇개의 자음이 잘 안 쳐져서 글 쓰기도 힘들고.
야, 임마. 힘을 내 임마….
오랜만에 찾아온 휴일이었으면 좋겠다.
윤기에게도, 남준이에게도.
새해를 같이 맞이하고, 남준이에게 새해에 대해서도 다시 배운 윤기는 멍하니 침대에 누워서 남준이를 바라봤으면.
남준이는 핸드폰을 한 손에 쥐고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윤기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맞닿은 시선에, 잠깐의 정적이 지난 후에, 남준이가 몸을 일으켜 침대의 한 켠에 앉았으면.
옅게 출렁이는 매트에 절로 윤기가 조금 뒤로 움직여 눕고는 푹신한 이불에 얼굴을 묻었으면 좋겠다.
손을 들어 윤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나른해보이는 윤기를 내려보았으면 좋겠다.
손 끝에 천천히 흩어지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다가 문득 예전보다 윤기의 머리가 북실해진 것이 신기해서 정수리를 꾸욱 눌러버렸으면.
나른하게 누워있던 윤기가 시트에 축 늘어져있던 귀를 바짝 세웠다가 귀 끝으로 남준이의 손목을 툭툭툭 두드렸으면.
불만 가득해진 얼굴, 뭐하냐는 듯 뾰족하게 바라보는 눈길.
뒤늦게서야 자신이 꽤나 세게 윤기의 정수리를 눌러버렸다는 생각에 남준이가 멋쩍게 웃어버렸으면 좋겠다.
뭐냐.
아뇨. 신기해서요.
뭐가.
형 머리가 오늘따라…, 뭐라하지? 북실북실하다고 해야하나.
욕이냐?
욕이 아니라, 진짠데.
억울하다는 듯이 얼굴을 살짝 찡그리면서도 남준이는 윤기의 머리를 계속 매만졌으면 좋겠다.
윤기가 느릿하게 이러나 자신의 손을 올려 손에 부스스 흩어지는 머리를 슥슥 매만지다가 아, 하는 작은 소리를 내었으면.
미용실 가야되나. 귀찮게.
같이 갈래요? 안 그래도 저도 뿌리염색도 할 겸 가야 되는데.
윤기가 그 순간 휘이잉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창문을 두드리고 가는 것을 듣고 귀를 쫑긋 세웠다가 느릿느릿, 다시 침대에 누워버렸으면 좋겠다.
남준이는 윤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짧게 헛웃음을 뱉고는 윤기의 등허리나 허벅지를 토닥였으면.
윤기 형.
내일 가.
내일 형 일 가잖아요. 저도 알바가고.
그럼 내일 모레.
그러다가 안 갈거잖아요. 또 추워서 나가기 싫은거죠? 아, 일어나요. 옷 입고 나가자, 토끼야. 응?
연신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고 흔드는 남준이의 손길에 이불 안으로 파고든 윤기가 아예 토끼로 변해버렸으면 좋겠다.
이불 안에서 폭 작아진 실루엣에 남준이가 이불을 들춰버렸으면.
그 밑에는 베개 아래로 들어가버린 토끼의 하얀 꼬리와 엉덩이, 그리고 축 늘어진 토끼의 발만 보였으면 좋겠다.
추위에 얼마나 약한건지, 날이 좀 추워졌다고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초콜렛마저도 사러가지 않고 집에만 머무르는 윤기를 알기에 남준이는 한숨을 내쉬었으면.
이 토끼를 어떻게 해야할까. 잠깐의 고민을 했다가 남준이가 무릎에 팔꿈치를 대어 손으로 턱을 괸 채로 윤기를 빤히 내려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천천히 나름 가지고 있는 비장의 무기와도 같던 제안들을 술술 풀어놓았으면 좋겠다.
미용실 가서 같이 머리 다듬고, 염색도 좀 새로 해요.
그리고, 또…. 나오면 저녁시간 전이겠다. 점심 막 먹었으니까. 그럼 그때 카페 갈래요?
저 형이 좋아할법한 카페 찾았는데. 초콜릿 카페래요. 디저트도, 빵도, 쿠키도 다 초콜렛이고 시그니처 메뉴가 핫초콜렛이래요.
저녁 때까지 거기서 같이 시간보내다가, 저녁 밖에서 먹고 와요. 형 좋아하는 음식 뭐 있지. 회? 회 먹으러 갈까요?
그 다음에 영화 한 편 보고 오면 재밌겠다. 얼마 전에 형이 재밌겠다고 한 영화, 저번에 개봉했더라고요.
토끼야. 그래도 나랑 나가기 싫어요?
나 지금, 데이트 신청하고 있는건데.
윤기 형. 저랑 데이트 해요, 오늘.
초콜릿 카페라는 말에 슬금슬금 얼굴을 내밀고 있던 하얀 토끼가 남준이의 마지막 말을 듣고는 베개에 얼굴을 푹 묻었으면.
남준이 너는 손을 뻗어 윤기의 머리를 조심히 쓰다듬고 큰 손을 펴서 한 손에 가득 차는 토끼의 등까지 천천히 쓸어내렸으면 좋겠다.
이불 속으로 쑥 들어간 토끼가 금방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서는, 이불 밖으로 방금과 비슷하게 얼굴만 내밀고 억울하다는 듯 남준이를 바라봤으면.
그렇게 말하면, 더 이상 싫다고 말을 못하잖아. 벙긋거리는 입술로 애써 더워지는 얼굴을 가라앉히려고 했으면 좋겠다.
나가면 되잖아. 나가면. 저리 가. 나 옷 좀 입게.
윤기 형.
왜.
얼굴이 빨개요.
이, 씨….
그 뒤에 퍽 하는 소리가 들리고, 윤기에게 허벅지 부근을 거하게 차인 남준이가 그대로 침대 밑으로 떨어져 쿵, 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으면 좋겠다.
윤기의 얼굴을 잔뜩 붉게 만든 데이트는 그렇게 조금 소란스럽게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형, 염색도 하려고요?
어. 검은색으로 덮어버리게.
아….
왜. 이상할 것 같아?
아니요. 그냥 상상이 잘 안 돼서요. 그래도 예쁘겠네요.
윤기의 머리를 쓰다듬은 남준이가 다른 쪽 의자로 자신을 부르는 직원의 목소리에 가보겠다며 윤기의 어깨를 살짝 그러쥐었다가 놓고 걸어가버렸으면.
윤기는 거울로 그 뒷모습의 끝자락을 눈길로 잡아내었다가 자신의 뒤에 직원이 다가와서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하자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내쉬었으면 좋겠다.
덥냐고 물어보는 직원에게 아니라고 답하면서, 괜히 남준이에게 잡혔던 어깨를 만지고 싶어서 가운 아래의 손만 꾸욱 쥐는 윤기가 보고 싶다.
왜 그렇게 봐. 이상해?
아뇨. 뭔가, 형 더 어려진 느낌이 들어서요. 잘 어울리네요.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마주본 윤기와 남준이는 확연히 달라진 자신의 모습, 상대의 모습에 조금의 어색함을 느꼈으면.
온전히 흑발이 되어 단정해진 머리로 나타나 새하얀 피부가 더 돋보이는 윤기와
뿌리 끝까지 한층 더 밝게 염색하고 헤어 스타일링까지 멋스럽게 낸 남준이가 마주보고 있었으면.
앞머리를 살짝 올려 옆으로 넘긴 남준이의 머리를 보고 윤기가 손을 올려 남준이의 넘겨진 앞머리를 톡 건들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준이가 자연스럽게 윤기의 옆에 서고, 나란히 발걸음을 맞춰 어디론가로 걸어갔으면 좋겠다.
두 손 모두 늘어뜨리고 있던 윤기가 자신의 손을 잡으며 이쪽이라고 안내하는 남준이 뒤를 얌전히 따라갔으면.
어느정도 길을 걸어가면서도 자연스럽게 계속 잡혀있는 손을 바라본 윤기가 마냥 늘어져있던 손 끝을 조심히 그러쥐어 남준이의 손을 마주잡았으면.
남준이가 윤기를 바라봤다가, 씩 웃으며 조금 더 꽉 손을 마주잡았으면 좋겠다.
여기서 가까워요, 그 카페.
춥다.
그럼 좀 빨리 걸을까요?
남준이의 말에 윤기는 그저 손만 꾸욱 그러쥐었으면.
그런 윤기의 행동에 웃음을 몰래 삼킨 남준이는 조금 느려진 윤기의 걸음에 자신의 걸음을 맞추었으면 좋겠다.
코 끝에 맴도는 염색약 냄새가 마냥 불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카페에 가서 마주보고 앉아 달큰하고 끈적한 핫초콜렛으로 언 몸을 녹인 윤기가 숨을 푹 내쉬며 두 손으로 머그잔을 꾹 그러쥐었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뜨거워서 살짝 손을 떼었다가, 다시 머그잔을 꾸욱. 그리고 또 살짝.
그런 일련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던 남준이가 작게 웃으면서 앞에 놓여진 조각케이크의 비닐 포장지를 벗기다가 철퍽 하고 옆으로 쓰러뜨렸으면 좋겠다.
아. 어…. 미안해요, 토끼야.
아냐, 뭐. 못 먹는 거 아니잖아.
멋쩍게 웃으면서 비닐 포장지를 들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남준이에 윤기가 괜찮다며 그릇을 끌어와 옆으로 누워버린 조각케이크를 열심히 먹었으면.
여기 진짜 맛있다.
초콜릿 케이크에 핫초콜렛. 잔뜩 달달한 간식을 먹으며 윤기는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려 웃었으면.
기분이 좋아 보이는 웃음에 남준이는 웃음에서도 단내가 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마주 웃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자주 와야겠네. 남준이는 머릿속으로 이 카페를 조심스레 꼭꼭 새겨놓았으면 좋겠다.
저녁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카페에 나와서는,
또 한층 춥게 느껴지는 바깥에 서로 목도리에 얼굴을 푹 파묻은 채로 주머니에는 두 손을 푹 찔러넣고는,
어깨는 잔뜩 움츠려서는,
꼭 닮은 꼴로 나란히 길을 걸어가는 남준이와 윤기가 보고 싶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둘이 종종 가던 음식점이었으면.
영화는 마땅한 시간대가 있지 않아서 다음으로 미루었으면 좋겠다.
영화 빼고는 남준이가 말했던대로 하루를 쭉 보낸 윤기가, 부른 배를 문지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둑해진 하늘을 보면서 숨을 푹 내쉬었으면 좋겠다.
내일 일만 가는 거 아니었으면 이럴 때 술 한 잔 해야하는건데.
편의점에서 맥주라도 사갈까요?
아냐. 나 그거까지 마셨다간 배 터질거야.
사실 저도요.
짧은 대화에서도 느껴지는 묘한 들뜸은 꼭 술을 마신 것 같은 느낌을 가져다주었으면.
조금 붕 뜨고, 마음 한 구석이 계속 들뜨는 그런 기분.
서로 키득키득 웃은 윤기와 남준이가 천천히 집으로 걸어갔으면 좋겠다.
윤기는 문득 남준이의 손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외투 주머니에 푹 들어가있는 손.
이것도 아마 지금 기분이 좋아서 이러는 것일거라고 생각한 윤기는 남준이의 소매를 슬쩍 잡아당겼으면.
남준이는 웃음기가 남아있는 부드러운 얼굴로 윤기를 조금의 의아함을 담아 바라보면서도 순순히 이끄는 대로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었으면.
윤기가 망설이듯 먼저 자신의 손 끝을 꾹 그러쥐자 남준이 너는 다시 웃음을 터뜨려 버렸으면 좋겠다.
그리고는 자신의 웃음에 손을 빼내려는 윤기의 손을 얼른 마주 잡아버리고는, 외투 주머니에 같이 손을 넣어버렸으면 좋겠다.
손 차가워지잖아요.
웃음기가 남아있어도 여전히 부드러운 말투에 윤기는 아무 말 없이 손 끝을 꼼지락거렸으면.
다음에 또 데이트 할까요?
그러던지.
짧은 대답에는 부끄러움과 승낙이 같이 녹아있다는 것을 안 남준이는 그저 웃었으면 좋겠다.
추운 날씨에도 걸음속도는 계속 적당했으면 좋겠다.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은.
남준이와 마주잡고 있지 않은 윤기의 반대편 손은 다른 쪽 주머니 안에 꽉 그러쥐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건, 남준이도 똑같았으면 좋겠다.
서로 마주 잡은 손에는 상대의 손이 아플까, 꽉 힘을 주지도 못하고 있으면서.
그렇게 집까지 걸어가는 남준이와 윤기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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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귀여운 민트토끼 윤기 그림 감사합니다. ♥
초콜릿 좋아하는 귀여운 민트토끼 윤기 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귀엽고 아기자기한 글귀 감사합니다. ♥
귀여운 윤기 그림 정말 감사합니다. ♥
예쁜 부농부농한 윤기 그림 선물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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