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가 되셨기를.
뭐야. 이게 끝이야?
주인아. 트리가 원래 이렇게, 어, 나무 밖에 없어?
아니. 장식도 많지.
근데 우리집 트리는 왜 나무밖에 없어?
나무가 영어로 트리야.
응?
윤기는 거실 한 가운데에 크게 서 있는 트리를 보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으면 좋겠다.
강아지가 자신도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계속 말해서 큰 마음 먹고 샀더니, 알고보니 장식된 것까지는 그냥 연출이었고
윤기가 산 것은 트리, 그 인조 나무 하나였으면. 그래도 위에 달으라고 별 하나 넣어준 것이 판매사의 유일한 배려였으면 좋겠다.
잔뜩 기대된 얼굴로 윤기가 트리를 조립하는 것을 지켜보던 남준이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으면.
거실 한 가운데 우뚝하니 선, 오로지 끝에 별을 하나 단 트리.
윤기 너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안으로 들어가 남준이와 네 옷을 가져왔으면 좋겠다.
주인아, 우리 나가?
어. 나가자.
어디 가는데?
마트.
마트 좋아.
씩 웃은 남준이가 귀와 꼬리도 감추지 않고 나가려는 걸 겨우 막은 윤기가 나가기 직전에 진정하라며 남준이 허리를 끌어안았으면.
마트에 간 윤기가 제일 먼저 간 곳은 트리 장식을 모아서 파는 곳이었으면.
색색의 꼬마전구, 숱이 많은 푸슬푸슬한 긴 털 장식, 작은 막대사탕 모양의 장식, 작은 종, 빨간 리본 등등.
루돌프와 산타의 얼굴이 그려진 장식까지 남준이는 눈을 빛내면서 직접 트리 장식들을 골라내었으면 좋겠다.
작은 종과 큰 종을 두고 고민하기도 하고,
무표정하지만 입이 삐죽 나와있는 하얀 인형을 들고와서 윤기와 닮아서 트리에 올려놓고 싶다고 했다가 약하게 볼을 꼬집히기도 하고,
이게 환하고 좋다며 큰 전구를 가져왔다가 윤기가 기겁하고 말리기도 했으면.
꽤나 정신이 없었지만서도 윤기는 환하게 웃고 있는 남준이 얼굴을 보고는 못 이기겠다는 듯 웃어버렸으면 좋겠다.
생전 쓰지도 않을 것 같던, 사지도 않을 것 같던 트리 장식들을 한 봉지 가득 담아서 든 채로 남준이와 한 쪽씩 나눠들고 겨울의 길거리를 천천히 걸어나갔으면 좋겠다.
집에 도착해서는 남준이가 목에 두른 목도리도 풀지 않고 트리 앞에서 사온 장식들을 탈탈 털어 늘어놓았으면.
어느새 코트 아래로는 옷에 눌리지 않았다면 붕붕 흔들렸을 것 같은 꼬리가 불룩 나와있는 채로
해맑게 웃으면서 윤기를 불렀으면 좋겠다.
윤기야, 트리!
윤기 너는 그걸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가 짧게 웃으며 다가가 남준이의 입술을 꾹 꼬집었다가 놓아버렸으면.
누가 주인 이름 함부로 부르래, 임마.
그러면서 남준이의 코트를 천천히 벗도록 도와주고, 자신의 외투도 벗어 걸어놓은 뒤 남준이의 옆에 앉는 윤기가 보고 싶다.
가장 먼저 푸슬푸슬한 길다란 털장식을 트리에 빙글빙글 남준이가 둘렀으면.
어색하게 둘러진 털장식이 그래도 청록색의 인조나무 잎을 사이에 품으면서 꽤나 그럴듯한 모양새를 내었으면 좋겠다.
그 위로 윤기가 적당히 꼬마 전구를 풀러서 두른 뒤에
서로 마음에 드는 장식을 마음에 드는 위치에 걸기 시작했으면.
어느 곳은 지나치게 장식이 몰렸고,
어느 곳은 조금 휑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나름대로의 남준이와 윤기만의 트리를 꾸며나갔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시간은 오래 걸렸으면.
크기가 큰 트리 때문에 넉넉하게 사왔다고 생각한 장식은 말끔하게 모두 걸렸으면.
이건 네가 걸어.
내가?
어.
그리고 트리장식의 맨 마지막은, 남준이가 제일 고민해서 골랐던 필기체 영어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적힌 팻말을 거는 것이었으면.
황금색의 반짝거리는 팻말이 트리의 조금 윗쪽에 걸리고 남준이가 뒷걸음질을 치다가 윤기를 돌아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으면.
마치 잘 했어? 라는 듯한 행동에 윤기가 손을 들어 남준이 머리를 쓰다듬고 가만히 앉아있으라는 말과 함께 거실의 모든 전등을 꺼버렸으면.
그리고 발로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가, 걸리는 전구 리모컨에 바로 쭈그려 앉아 스위치를 켰으면 좋겠다.
어두운 거실 가운데의 트리가, 조그마한 꼬마전구에 둘러쌓인 채 반짝반짝 빛을 뿜어내는 것을 남준이가 잠시 멍하니 바라봤으면.
와아…. 예뻐.
마음에 들어?
응.
진짜 붕붕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힘차게 흔들리는 꼬리를 힐끔 내려본 윤기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으면 좋겠다.
남준이도 윤기의 웃는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가 똑같이 웃어버렸으면.
같은 웃음을 짓는 두 사람의 얼굴에는 똑같이 꼬마전구 빛이 물들여져 있었으면 좋겠다.
똑같이 반짝거렸으면 좋겠다.
정말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작은 빛으로 한참동안이나.
주인아. 주인아. 저녁 뭐 먹을거야?
글쎄. 너 먹고 싶은 건 없어?
윤기가 먹고 싶은, 아!
은근히 이름 부르지, 멍멍아.
주인이 먹고 싶은 거….
모처럼 외식이니까 고기나 먹을래?
입술 또 꼬집혔다고 시무룩해진 남준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윤기는 작게 입꼬리를 올렸으면.
저녁을 차리기 귀찮다는 윤기의 말 한 마디에 남준이와 윤기는 오후에 외출했던 그 차림 그대로 다시 거리로 나왔으면 좋겠다.
춥지만 조금 걷고 싶다는 남준이의 말에 목도리를 더 단단히 둘러매고 나온 것이었으면.
남준이는 목도리에 감추어진 입술을 삐죽거리다가 생각에 잠긴 윤기의 손목만 툭툭 건들이고,
윤기의 작은 외투 주머니에 자신의 손도 넣어 윤기의 손을 잡으려고 낑낑대었으면.
윤기는 알지만 모르는 척 그저 주머니에 넣은 손만 꾹 그러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핸드폰으로 근처에 먹을 만한 곳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러다 갑자기 주머니에서 손을 쏙 빼내는 남준이의 행동에 윤기가 고개를 돌렸으면.
흔치않게 엇갈리는 시선에 잠시 의아함을 가지는 사이, 남준이의 시선을 따라 똑같이 그 위에 시선을 덧그렸으면.
그 끝에는 한 중년여자와 큰 개 한 마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남준이가 놀란 듯, 무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참이나 멈춰 있는 큰 개와 중년의 여자를 바라봤으면.
조금 뒤에 느릿하게 그 쪽으로 걸어갔으면.
여자는 잠시 의아해하다가 남준이가 쭈그려 앉아 큰 개 앞에 쭈그려 앉자 강아지를 보러왔나보다 싶어서 남준이와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 하고 있던 통화에 집중했으면.
윤기는 남준이의 행동에 그저 그 옆을 가만히 지켰으면 좋겠다.
남준이는 큰 개의 볼을 두 손으로 조심히 감쌌으면.
눈을 마주치고, 씩 웃더니 느릿하게 엄지로 양 볼을 슥슥 문질러 쓰다듬었으면.
목을 한 번 폭 끌어안기도 하는 사이, 큰 개는 그저 얌전히 남준이의 목덜미와 가슴팍에 얼굴을 들이밀며 남준이의 향을 맡았으면 좋겠다.
참, 예쁘네요.
아. 네. 그렇죠? 털에 신경을 많이 쓰거든요.
예뻐요, 정말. 여전히 예뻐요.
남준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조금 흐린 시선과 눈을 가만히 마주치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큰 개의 부드러운 몸을 감싸 안았으면 좋겠다.
그 모습에서 어째 반가움, 그리고 그리움 등이 느껴지는 것 같아 윤기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다른 목소리가 윤기의 상념을 깨웠으면.
친구가 강아지 굉장히 좋아하나봐요.
네, 뭐….
중년여자는 자신의 반려견에 푹 빠진 듯 보이는 남준이의 행동에 흐뭇하게 웃으며 윤기에게 말을 걸었으면.
윤기는 낯설기까지 한 남준이의 행동에 여전히 의아함을 품고 있으면서도 몇 번 더 중년여자가 말을 걸어 대화를 이어나갔으면.
강아지가 암컷이라는 둥,
얼마 전에 이 쪽으로 이사를 와서 적응 겸 산책을 왔다는 둥,
이제 늙어서 아이 귀가 살짝 안 좋아져서 걱정이라는 둥.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으면.
윤기는 어째 남준이와 닮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으면 좋겠다.
잠깐의 윤기와 여자가 나눈 대화가 끝날 즈음,
중년 여자가 몸줄을 살짝 끌어 이만 가보겠다고 신호를 주는 즈음,
남준이가 느릿하게 목덜미를 쓸어내려주면서 마지막까지 환하게 웃었으면 좋겠다.
행복해요. 그러니 걱정말고, 행복해주세요.
남준이가 인사를 마친 뒤에 일어나 윤기의 옆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중년 여자와 몇 번이고 인사를 나누고 난 뒤에 윤기가 남준이를 빤히 바라봤으면.
남준이는 그저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가 점차 걸음을 옮기는 윤기의 발걸음에 자신의 발걸음을 맞추었으면.
다시 걸음을 나란히 맞춘 남준이가 계속 뒷쪽을 힐끔거렸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윤기가 왜 그러냐면서 걸음을 멈추면,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웃었으면 좋겠다.
주인아.
어.
뽀뽀해도 돼?
?
밖이라서 안 돼?
…얼른 해.
남준이는 자신의 말에 한 쪽 볼을 내밀며 손가락으로 뺨을 톡톡 두드리는 윤기의 행동에 또 환하게 웃었으면 좋겠다.
허리를 숙여 윤기의 뺨에 입을 꾹 맞춘 남준이가 윤기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하얀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느릿하게 부비적거렸으면.
윤기는 갑작스러운 남준이의 애교에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가 손을 들어 남준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헤집으며 쓰다듬었으면 좋겠다.
남준이는 속으로 스쳐지나간 방금 전의 그 강아지에게 건넸던 말을 다시 중얼거렸으면 좋겠다.
나 정말로 행복해요,
엄마.
자신을 알아보고 조용히 기대오던 큰 개의 여전했던 온기를 떠올리면서 보다 더 환하게 웃어버렸으면 좋겠다.
--
선물 자랑
귀여운 글씨와 그림 감사드립니다. ♥
예쁜 글씨 감사드립니다. ♥
귀여운 글씨와 그림 모두 감사합니다. ♥
귀여운 남준이 그림 감사합니다. ♥
[암호닉] 확인부탁드려요.(Ctrl + F로 검색하시면 빨리 찾으실 수 있습니다.) |
- 현/ 코카콜라 / 윤기야 / 세계 / 구즈 / 작가님워더 / 어른 / 미름달 / 별별이 / 시에 / 밀방 / 망개 / 사탕 / 0912 / 0123 / 오리 / 릴리아 / 꼬맹이 / 너나들이 / 스틴 / 희망찬란 / 찹쌀떡 / 두쥬나 / 자몽주스 / 1029 / 초코파이 / 벨베뿌야 / 가슴이 간질 / 귤 / 야상 / 슈비누나 / 공중전화 / 도식화 / 연나 / 밤이죠아 / 침침한내눈 / 앨리 / 탄콩 / 한소 / 쌈닭 / 꽃봄 / 솔선수범 / 안녕 / 만두짱 / 페스츄리 / ♥옥수수수염차♥ / 멍뭉이 / 슙크림 / 초코에몽 / 슙슙이 / 씰룩씰룩 / 초희 / 딸기빙수 / 윤이나 / 뜌 / 자몽소다 / 꾸쮸뿌쮸 / 삼월토끼 / 복숭아 / 쿠잉 / 홉요아 / 620 / 스카이 / 사랑현 / 아가야 / 빰빠 / 고요 / 에이블 / 체리 / 몬실몬실 / 변호인 / 누누슈아 / 다곰 / 슈랩슈 / 크롱 / 개미 / 봄날의 기억 / 햇님 / 뀽꾸큐 / 올림포스 / 모찌 / 대형견 / 흑슙흑슙 / 기쁨 / 호빈 / 독희 / 0622
- 0013 / 0410 / 09_01 / 423 / 1102 / 1212 / 2반 / 3928 / 92X / 930309 / 970901 / 99951013 / *ㅅ* / ☆봇☆ / ★오하요곰방와★ / ♥이도임♥ /
카달 / 컨태 / 케로 / 케플러 / 코스트코 / 코코몽 / 쿠마몬 / 쿠크다스 / 쿵쾅쿵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