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 복학생? "
ㅡ 엉, 오늘 개총에 이번 학기 복학생들도 온다던데?
복학생, 이 세 글자를 듣는 순간 새내기들의 상큼함을 바랐던 내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왜, 연서복이라고 그런 말도 있지 않느냐. 모름지기 복학생이라 함은 능글맞음이 지나치고, 수작이 지나치고, 들이댐이 지나친 인간들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런 일반화를 범하는 자신도 좆같지만 새내기 시절 내가 마주한 복학생들은 다 똑같았다. 지나침 삼 박을 고루 갖춘, 그런. 그랬기에 이런 반응이 터져 나오는 것 또한 영 이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 …… 아, 쌍큼한 새내기들이나 잔뜩 있음 좋겠다. "
ㅡ 인정, 존나 인정.
ㅡ 야, 근데 이번에 복학생 중에 개쩌는 선배 하나 있다던데?
" …… 엉? "
안 믿어, 안 믿어. 강의가 채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동기들 사이에서의 대화는 복학생, 새내기를 벗어날 줄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개강 총회가 머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어대던 동기들이 이내 교수님의 등장으로 자리로 흩어졌고, 강의는 시작됐다.
…… 상큼이의 존재 여부가 심히 궁금하다. 쌍큼아, 기다려라. 누나가 간다.
" …… 헉, 쌍큼아! "
워낙 낙천적이며 활달한 성격 탓에 못 지내는 사람 없이 두루두루 사람들과 잘 지내는 타입이었다. 그랬기에 처음 보는 사람과의 대면에서 대화를 먼저 트는 것 또한 내게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임이 분명했고. 그리고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름의 대면식이라고 무작위로 섞인 자리는 상큼이들과의 조우에 알맞았다. 그리고 내 맞은편에 앉은 이 상큼이는, 보통 상큼이가 아니다. 와, 씨발……. 존나 상큼해.
" …… 예? "
" 상큼아, 너 진짜 상큼하다. 대박, 대박. 완전 잘 왔어, 어? "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듯 상큼함을 덕지덕지 달고 있는 이 청년이 올해 우리 과 최고 상큼이, 뭐 그쯤 될 것 같다는 내 예상이었다. 얼빠진 넋으로 절 빤히 바라보는 상큼이를 이미 소주 한 병은 가뿐히 들이켠 듯 웃는 낯으로 대면하며 신나게 혼자 떠들어대기를 한참, 환영식인 만큼 자기소개라도 한 번씩 하고 지나가자며 마이크를 쥔 과대가 자신이 있던 곳과 제일 가까운 저희의 테이블로 온 건 순간이었다. 곧장 내 앞에 앉은 상큼이에게 그 마이크가 가고, 상큼이가 일어선 순간.
" 안녕하세요. "
" ……. "
" 14학번 임영민입니다. 복학생 맞고요, 어려운 사람 아니니까 잘 지냅시다? "
상큼이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순식간에 터져 나오는 선배들의 함성소리와, 야유들.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자 저 하나를 뺀 모두들이 즐거워 보였다. 그중에선 내가 상큼이를 보고 느꼈던 감정이 주관적인 것은 아니었는지 잘생겼다며 터져 나오는 함성들까지. 그것들과 함께 내게 시선을 꽂으며 상큼한 미소를 날려대는 상큼이, 그러니까…… 두 다리 선배인 복학생을 보자마자 느낀 감정은 하나였다.
아, 씨팔……. 나 좆됐구나. 21년 인생, 처음으로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던 순간이었다.
" 야, 나 오늘 진짜 못 가……. "
쓰린 속을 부여잡고 잔뜩 기대 담은 눈길을 보내는 동기들에게 뱉은 말이었다. 횡포에 굴복한 내가 어제도 열심히 부어라, 적셔라 달린 탓인지 아침부터 들이부은 해장국은 영 소용이 없다는 듯 쓰린 속은 더욱 쓰려만 왔다. 아, 나…….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었다. 14학번 선배들까지 두루 모인다는 오늘 모임을 16학번이 빠지기에는 애매한 자리임이 확실했지만, 오늘은 진짜…… 나 죽어. 애처로운 눈빛을 마구 쏘아대는 나를 보며 동기들이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는 순간.
" ㅇㅇ야, 오늘 필참인 거 알지? "
" …… 선배. "
" 야, ㅇㅇㅇ 안 가면 나도 안 간다. "
아, 씨발. 또다, 또 임영민이야. 복학생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저희와 겹치는 강의가 많았던 그가 내게 부리는 횡포는 어마어마했다. 우리가 처음 마주했던 날, 그러니까 개총에서의 내 실수로 엉겁결에 받은 수모를 잊지 않겠다는 듯 이렇게 꼭, 내가 환장하는 웃는 낯으로 괴롭히곤 했으니까. 모든 모임에 빠지지 않는 임영민과, 그를 따라 필참해야만 했던 나. 심지어는 그가 모임을 만들기까지 했다. 아니, 나 진짜…… 내가 그렇게 잘못했냐, 어?
ㅡ 너 진짜 영민 선배한테 뭐 잘못했냐, 딱 말해.
제 잘못을 운운하는 동기들을 한 번, 그를 한 번 바라봤을까. 웃는 낯에 침은 못 뱉는다는데, 오늘은 꼭 뱉고 싶다.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모임은 언제나 그렇듯 술로 꽉 찬 테이블만이 저희를 반겼다. 한 잔, 두 잔. 선배들이 건네는 술까지 거절할 도리가 없어 그저 주는 대로 받아 마시다 보니 알딸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임의 끝은 항상 새벽 2시를 넘겼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사실 나조차도 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언제나 그랬다. 뭐, 자기 때문에 왔는데 자기가 책임을 져야 된다나……. 그걸 아는 놈이 매일 부르나 싶고, 씨발.
" 매일 속 뒤집힐 만큼 술 먹여놓고 데려다 주기만 하면 다예요? "
" …… 엉, 너 오늘 좀 많이 마시더라. "
이게 다 선배 때문이잖아요, 진짜. 날카롭게 나간 대답에 무어라 반박하려던 임영민이 곧 제 입을 꾹 다물었다. 평소보다 많이 들어간 듯한 술들이 그 이유겠지. 쓰린 속을 부여잡으며 그를 바라보자, 이내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낑낑대는 꼴이 퍽 귀여워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안에서 피어나는 장난기가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듯 입안에서 맴돌았다. 아, 아. 졸라 귀여워, 놀리고 싶어.
" 선배. "
" 엉? "
" …… 제가 그렇게 싫으세요? "
" …… 어? "
그리고 그 생각은 결국 별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채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제가 그렇게 싫으세요? 퍽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옆에서 낑낑대던 그를 빤히 바라보며 그 한 마디를 뱉어내자, 이내 제가 더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였다. 아, 씨발……. 귀엽다, 귀여워.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몸을 이랬다, 저랬다 가만두지 못하는 그에게 처량한 시선을 콕, 하고 박았다. …… 선배 진짜 너무해요.
" 아니, 나는 그런 게 아니라. "
" 뭐가 아니에요. "
" …… 네가 싫은 게 아니라. "
" …… 애들도 다 그래요, 선배가 저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냐고. "
제게 던져지는 반응이 퍽 귀여워 끝을 모르고 뱉어지는 말들에 경악한 표정을 지어 보인 건 다름 아닌 그였다. 안절부절,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듯한 표정으로 빤히 내게 시선을 박던 그가, 이내 제 머리를 두어 번 헝클였다. 일이 꼬이거나 당황에 차면 나오는 그의 습관이었다. 꽤 사람을, 그러니까 여자를 잘 다룬다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는지 지금 앞에서 화를 풀어 주려 끙끙대는 꼴이 꼭 강아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선배. 라스트 팡,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날려 주려 고개를 든 순간이었다.
" 오빠는 그냥 네가 반응 보이는 게 너무 귀여워서, 어? "
" …… 에? "
" 그냥, 계속 보고 싶어서 그런 건데. "
…… 와, 씨. 이 선배 여자 졸라 잘 다루잖아? 이딴 상황에서 설레는 본인을 증명이라도 해 주는 듯 강하게 뛰어대는 심장이 말했다. 이 선배, 여자 잘 다룬다고.
ㅡ 보칵생 영민... 임영민이 보칵생이면 저희 다들 그 학교 그 과로 편입을 합시다, 넹. 이상으로 세상에서 제일 진지한 작가의 의견 피력이었고요... ㅎㅎㅎ
ㅡ 초록글, 댓글, 추천, 스크랩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__) ~ 항상 빠짐없이 댓글 읽고 있으니글에 관한 내용, 피드백, 질문모두 자유롭게 남겨 주셔도 괜찮습니다. ㅎㅎ
ㅡ 암호닉 신청 받습니다. 신청한 암호닉은 다음 편에 업데이트, 암호닉 신청은 항상 최근 글 댓글로 받도록 하겠습니다. 암호닉의 존재 여부는 밑에서꼭!확인해 주세요.
# ㅡ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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