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 데려다주셔서 감사해요, 선배. ”
역에서 내려 걷다보니 어느덧 제 집 앞에 도착해 걸음을 멈추고 임영민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벌써 두 번째다. 이렇게 집 앞에서 같이 서있는 거.
“ 조심해서 들어가. ”
“ 네, 조심해서 가세요. ”
“ 아, 그리고 내일. ”
“ …… ”
“ 점심 같이 먹자. ”
점심을 같이 먹자는 임영민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시선을 피하자 임영민이 머뭇거리며 제게 다가왔다.
선배랑 밥 먹으면서 무슨 얘기를 하라고.
“ …선배랑 밥 먹는 거 불편해요. ”
“ 여주야. ”
“ 저는 선배랑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
“ …… ”
그러니까 제발 자꾸… 흔들지 마세요.
입술을 꾹 깨물고 다시 고개를 꾸벅 숙이곤 뒤를 돌아 아파트 현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왔다.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울지 안으려 고개를 위로 들어 천장을 쳐다보았다.
마음 약해지지 말자.
“ 이야, 여주는 정말 하루가 다르게 얼굴이 더 호빵처럼 변하는구나. ”
“ 꺼져라. ”
오늘도 어김없이 박지훈의 태클로 학교에서의 하루를 시작했다.
정말 박지훈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어쩜 저렇게 시비를 거는지 그 끈기가 아주 대단해 이젠 자체 필터링도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그리고 박지훈 옆에 앉아있던 박우진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자 박우진이 가방을 들고 제 옆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 어제 잘 들어갔어? ”
“ 응, 미안해. 어제 들어가고 바로 뻗어서 답장을 못 했다. ”
“ 혼자 간 거야? ”
“ …영민선배랑. ”
제 대답에 살짝 얼굴을 굳혔다 풀고는 이내 주머니에서 꿀물을 꺼내 제게 건넸다.
자꾸 이렇게 잘해주면 내가 더 미안해지잖아.
“ 너나 마셔. 너 어제 완전 뻗었잖아. ”
“ 난 아침에 박지훈이랑 해장하고 왔어. ”
“ 그러게 작작 좀 마시지 뭘 그렇게 마셨어. ”
“ 게임 젬병인 걸 어쩌냐. ”
사실 아침에 해장을 딱히 하지 못해 속이 울렁거렸던 터라 박우진이 건네준 꿀물을 단숨에 마셨다.
당분간 술 금지다, 진짜.
빈 병을 책상에 올려놓고선 가방에서 교재들을 꺼내자 박우진이 도로 빈 병을 가져갔다.
아침에 해장을 했다해도 박우진은 숙취가 오래가는 편이라 분명 속이 다 풀리지 않았을 걸 알고 있었다.
이따 꿀물 하나 새로 사서 가져다줘야지.
“ 야, 근데 너네 엠티 갈 거지? ”
“ 엠티? ”
갑자기 뜬금없이 뭔 엠티.
엠티 얘기를 꺼낸 박지훈을 동시에 쳐다보자 박지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몰랐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지금 기말고사가 얼마 안 남았는데 뭔 엠티를 간대.
“ 지성선배가 임원 엠티 갈 거라던데. ”
“ 지성선배 학교 활동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
회식, 엠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지성선배라 임원 엠티라는 걸 깨닫고 한숨이 먼저 나왔다.
작년에 임원 엠티 갔을 때 정말 극한을 경험했었다.
술을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셔본 적이 없었던 저를 제 주량이 어떤지, 필름이 끊기는 게 뭔지 알게 해준 게 바로 임원 엠티였다.
그리고, 임영민과의 썸이 시작된 것도 임원 엠티였고.
“ 근데 지성선배가 아직 말 안 했잖아. ”
“ 어, 근데 아마 거의 확정이야. 지성선배가 가평 펜션 알아보고 있거든. ”
“ 아, 미친. 가평… ”
“ 제발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
가평은 아마 나의 제 2의 고향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대학에 들어와서 가평을 도대체 몇 번을 갔는지 이젠 셀 수도 없다.
작년 겨울 엠티 때에는 원래 다른 곳을 가기로 의견을 모으고 있었지만 지성선배의 강력한 가평 추천으로 다 무산되고 결국 또 가평을 갔었다.
또 술 몇 박스 가져가겠구만.
“ 여튼 너네 다 올 거지? ”
“ 빠지면 또 지성선배가 카톡 테러할 거 아냐. ”
“ 그니까 그냥 애초에 마음 비우고 와. ”
이미 카톡 테러를 몇 차례 당한 적이 있는 애들이라 다들 고개만 끄덕거렸다.
다른 사람이 그러면 진짜 차단하고 욕하겠지만 그 상대가 지성선배라 또 밉지는 않아 다들 결국 반강제로 참석한다.
지성선배의 위력이란 정말.
“ 아, 과제 존나 많아. ”
수업이 끝나고 역시나 과제를 잔뜩 내주신 교수님 덕에 다른 애들의 입술이 툴툴거리느라 들어갈 틈이 없었다.
집에 가서 과제할 생각을 하니 절로 한숨부터 나왔다.
진짜 인간적으로 너무 많잖아.
“ 여주야. ”
다른 아이들과 함께 강의실을 나서는데 언제부터 서있던 건지 벽 쪽에 임영민이 서있었다.
점심 같이 먹자더니 기어코 왔구나, 임영민.
고개를 꾸벅이자 다른 아이들도 임영민을 발견한 듯 고개를 꾸벅였다.
“ 아직 밥 안 먹었지? 밥 먹으러 가자. ”
“ 왜 기다리고 있어요. ”
“ 너랑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지. ”
임영민의 눈길을 피하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저희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를 눈치챈 박지훈이 제 옆에 서있던 박우진을 끌어당겼다.
박지훈을 쳐다보자 임영민과 저 둘이 먹으라는 듯 손을 까딱까딱 거리며 저를 임영민 쪽으로 밀었다.
아, 그런 거 아니라고.
“ 선배, 저랑 우진이랑 먹으면 되니까 여주랑 드세요. ”
“ 아, 고마워. ”
박지훈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무슨 생각인지 다 알 것 같은 얼굴로 저와 임영민을 더 부추겼다.
하여튼 쟤는 도움이 되는 때가 없어.
가자는 듯 제 팔을 잡는 임영민에 결국 박지훈과 박우진에게 손을 흔들고 뒤를 돌아 가려는데 제 반대쪽 팔을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이건 분명 박우진이다.
“ 같이 먹어요. ”
“ 야, 박우진. ”
“ 굳이 선배랑 여주랑 둘이 먹을 필요 없잖아요. ”
“ 얘 왜 이래. ”
무표정으로 임영민을 보며 말하는 박우진을 뒤에서 박지훈이 필사적으로 말렸다.
아마 저랑 임영민이랑 둘이 다시 잘 되려고 하는데 니가 왜 끼어드냐, 이런 생각이겠지.
박지훈이 뭐라하던 꿈쩍도 않는 박우진이 임영민을 노려보듯 쳐다보았다.
또 시작이다.
“ 오늘은 여주랑 둘이 먹고 싶은데. ”
“ 헤어진 사이에 왜 밥을 같이 먹어요. ”
“ …… ”
“ 선배는 진짜 염치도 없네요. ”
“ 야. ”
“ 찰 땐 언제고, 여주가 만만해요? ”
“ 박우진. ”
일부러 임영민의 성질을 긁는 말만 골라서 하는 박우진을 보던 임영민이 정색을 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진짜 왜 이러는 거야. 사람 난처하게.
그냥 두면 정말 둘이 당장이라도 싸울 것 같아 일단 벗어나고 보자는 생각으로 제 팔을 잡고 있던 박우진의 팔을 떨어뜨렸다.
“ 영민선배랑 선약이였어. ”
“ …… ”
“ 지훈아, 너 우진이랑 먹어. 나 선배랑 먹고 이따 연락할게. ”
“ 어어, 그래. ”
임영민과 박우진의 신경전에 박지훈도 약간 놀랐는지 제 말에 박우진을 데리고 빛의 속도로 사라졌다.
아직도 표정이 굳어있는 임영민을 쳐다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임영민의 팔을 잡아끌었다.
“ 밥 먹으러 가자면서요. ”
“ …가자. ”
굳은 표정으로 저를 따라나서는 임영민을 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제가 앞에서 말없이 걷고 있자 임영민이 뒤에서 제 팔을 잡아 저를 돌려 세웠다.
“ 나는 너 만만하게 생각한 적 없어. ”
“ …… ”
“ 그냥 잠깐 내가 멍청했던 거지, 너를 그렇게 생각했던 ㅈ… ”
“ 알아요. ”
“ 여주야. ”
“ 우진이 말 때문에 그러는 거면 신경 안 써도 돼요. ”
“ …… ”
“ 우진이 원래 기분 안 좋으면 저러잖아요. ”
“ 잘 할게. ”
“ …… ”
“ 이젠 너한테 미안하다고 안 할 거야. ”
“ …… ”
“ 내가 잘 할게. ”
임영민과 사귈 때, 임영민이 무언가를 잘못해서 저에게 미안하다고 그럴 때면 항상 했던 말이 있었다.
미안하면 미안할 짓을 안 하면 되잖아.
제 말에도 항상 임영민은 미안하다는 소리만 반복했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항상 미안하다는 소리만 하고 앞으로는 안 그럴게 라던지, 앞으로는 잘 할게 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 임영민이 미웠었다.
제가 뭘 원하는지 뻔히 알면서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미안해.
아마도 앞으로 저한테 그런 잘못을 또 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어 그런 것이겠지.
그런데 그렇게 원할 땐 해주지 않던 말을 이제와서 해주는 건 너무…
반칙이잖아.
“ 선배는 진짜 나쁜 놈이에요. ”
“ …… ”
“ 나쁜 새끼. ”
“ …… ”
“ 저 괴롭히니까 좋아요? ”
“ 아니, 내가 더 괴로워. ”
“ 근데 왜 이렇게 괴롭혀요. ”
“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보고만 있는 게 제일 괴로워서. ”
임영민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고 주먹을 꼭 쥐었다.
진짜 나쁜 새끼, 나쁜 놈, 개새끼… 온갖 욕을 다 해도 모자랄 사람인데, 근데.
밉지가 않다.
오히려 임영민이 밉지가 않은 제 자신이 더 미울 지경이였다.
언제 이렇게 호구가 됐냐, 김여주.
“ 저는 선배를 받아줄 생각이 없어요. ”
“ 알아. ”
“ 알면 이제 그만해요. ”
“ 기다릴게. ”
“ 선배. ”
“ 기다릴 테니까 천천히 와도 돼. ”
자꾸 이렇게 사람 마음을 흔든다.
흔들다 못해 쥐어짜고 때리고 던지고 난리를 친다.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임영민과 박우진.
빠른 시일 내에 둘 다 정리를 하던, 둘 중 하나는 정리를 해야한다.
둘을 계속 잡고 있는 건 아마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제 욕심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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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씨씨입니다 ^.^
분량이 짧은 것 같은 건 아마 기분탓... 이 아니라 제 한계입니다...
글 침체기가 왔어요... 글이 안 써집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글을 앞으로 어떻게 이어야할지 요즘 고민이 큽니다 ㅠ.ㅠ
그래서 독자님들의 생각이 너무 궁금해요 !
독자님들은 이걸 읽으시고 어떤 생각을 하실까, 제일 궁금합니다.
아쉬운 점, 좋았던 점, 말하고 싶은 거 다 좋으니 모두 댓글에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암호닉 명단은 저번 화와 같습니다 !
다음 암호닉 신청을 받을 때에 암호닉 정리를 같이 할 예정이라 그 전까지는 암호닉 명단이 그대로 입니다.
다들 좋은 새벽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