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김태연이 곤히 잠들어있는 나를 깨웠다. 민석 쌤이 너 깨워서 내려보내래 일어나.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며 볼에 흐른 침을 닦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로 향했다. 점심시간에 부르지.. 지금 졸린데. 잠에 취해 도착한 교무실에서 김민석은 학생들에 둘러쌓여있었다. 어떻게 뚫고 들어가지. 몽롱한 정신으로 목을 벅벅 긁던 나와 김민석의 시선이 둘러쌓인 학생들 사이로 마주쳤다. 나를 보며 살짝 웃어보이던 김민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학생들을 보냈다.
“다음 시간에 찾아 와. 선생님 바빠.”
그러면서 나를 보고 왔어? 하고는 나를 데리고 상담실로 데려간다.
“미안. 저기서 얘기하고 싶었는데 애들이 자꾸 찾아와서.”
인기 많으셔서 좋겠어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도착한 상담실 소파에 앉았다.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며 김민석이 주스 마실래? 하고 묻길래 거절했다. 저 당근주스 안 좋아해요. 칼같이 거절하자 민망했는지 그럼 이야기나 하지, 뭐.하고는 내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눈이 원래 위로 째졌는지 고양이 같은 눈매로 나를 쳐다본다.
“이번 시험에서 18점 맞았지?”
“네”
이 사람이 또 아픈 구석을 찌르네.
“이번 중간고사 되게 쉽게 냈거든. 평균 점수가 60점이고 너를 제외한 제일 못 친 애가 40점이야.”
“그래요?”
아주 정곡을 찌르네. 네. 저 공부 못 해요.. 성적 이야기에 살짝 의기소침해진 내 모습을 보던 김민석이 새침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나는 혼내려고 너를 여기 부른게 아니야. 혼내려고 부른게 아니면 뭔데요. 조금 자존심 상한 내가 툭툭 말을 내뱉자 김민석이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문학은 잘 하더라. 너.”
“재밌으니까요.”
“중국어는 재미없지?”
“사실대로 얘기해도 되요?”
뭐 어떠하냐는 식으로 어깨를 들썩이길래 완전. 제일 싫어요. 미분 적분보다 더 싫어요. 하고 부르르 떨며 얘기하자 김민석이 하하하.하고 웃으며 그건 심했다. 어떻게 미적분보다 더 싫을 수가 있어! 하며 받아쳤다. 중국어 선생이라 기분 나빠할 줄 알았더니. 꽤나 쿨한 모습에 나도 살짝 웃겨서 웃었다.
“그래도 너 수능도 쳐야되잖아. 한 번 배워보는게 어때?”
“미적분보다 더 싫다니까요.”
“이번 기말고사 때 까지만 한 번 노력해보자. 선생님이 잘 가르쳐줄게.”
응? 하며 고양이마냥 날카롭던 눈매가 장화신은 고양이로 바뀌었다. 저렇게 부탁하면 거절할 수가 없잖아. 성격도 그렇고 예전부터 거절을 잘 하지 못 했던 나는 또 다시 김민석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씩 웃던 김민석은 내 머리를 헝클이며 으이그 착하다. 하고는 얘기했다. 아 나 머리 헝클이는 거 진짜 싫어하는데.
“아.”
나도 모르게 정색을 하며 머리를 뒤로 빼자 김민석이 동그랗게 눈을 떴다. 나도 모르게 한 행동에 나도 놀라서 변명을 해댔다. 아. 제가 머리 만지는 거 되게 싫어해서..
“그럴 수도 있지. 뭐.”
생각보다 김민석은 아주 많이 쿨했다. 그러면 내일부터 바로 수업에 들어가자며, 방과 후 한 시간씩 중국어 보충을 하기로 했다.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는 다시 교실로 올라오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린다. 민석 쌤이랑 무슨 얘기했어? 하며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중국어 가르쳐주신대. 하며 대충 이야기를 하자 부럽다는 듯이 소리지르는 아이들이다. 제일 크게 소리 지르던 건 김태연.
“헐 완전 부러워”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
나라를 구할 것 까지야.. 괜히 머쓱해지는 기분에 어깨를 으쓱하고는 수업 종 칠때 다 되었으니 자리로 가라며 아이들을 쫓아냈다. 괜히 말했나보다 이렇게 부러워 할 줄 알았으면 말 안 하는건데. 내가 진짜 부러운지 김태연은 수업시간 내내 부럽다며 징징댔다.
“그래도 이번 시험 꼴지가 너여서 다행이다.”
“무슨 뜻이냐 탱구”
왠지 무시당하는 기분에 김태연을 찌릿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입술을 쭉 내밀며 얄밉게 별거 아니야~하고는 대답하는 김태연을 째려보다가 그녀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학생주임 선생님의 시간이라서 차마 크게 소리 지르지는 못 하고 허벅지를 꼬집고 있는 내 손을 탁탁탁 치며 소리없는 아우성을 지르는 김태연을 꼬신 듯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무슨 뜻이냐고!
“너는 민석 쌤한테 별 관심 없잖아. 그래서 다행이라고!”
정말 별거 아닌 내용에 김이 빠졌다. 난 또 뭐라고. 내가 김민석한테 관심이 없는 건 사실이니까 더 이상 별 말 하지 않고 다시 수업을 들었다. 시간을 쳐다보니 다음 시간은 문학이다. 문학 담당인 김준면 선생님을 볼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그리고 들뜬 기분은 다음 시간이 되고 교실 앞 문이 열리자마자 가라앉았다. 왜 또 김민석이야!
“민석 쌤! 문학시간인데!”
“김준면 선생님 출장 가셔서 내가 대신 들어왔어.”
이럴수가. 워낙에 표정관리를 못 하는 내가 인상을 노골적으로 찌푸리며 문학 교과서를 다시 책상 서랍 속에 집어넣고 중국어 교과서를 꺼냈다. 그런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던 김민석이 말했다. 왜 중국어 교과서 꺼내? 하는 물음에 아이들이 대답했다.
“쌤 중국어 쌤이잖아요.”
“이번에는 문학 선생님으로 온 건데. 어서 문학 교과서 120페이지 펴.”
들고 온 문학 교과서를 피며 김민석이 얘기했다. 그 날, 내가 싫어하던 중국어 대신 내가 제일 자신있어하고 좋아하는 문학을 가르치던 김민석은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 꽤나 깊이 박혔다. 그게 왜인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나쁜 쪽이 아닌 좋은 쪽으로라는 것이다.
그 다음 날, 김민석과의 첫 번째 보충수업 날. 나는 친구들과 함께 시내로 놀러나갔다. 하루쯤은 빠져도 아무 상관없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학교를 마치고나서부터 김민석에게는 30분에 한 번씩 전화가 왔다. 야자를 하지않는 나와 김민석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학교를 빠져나오다가 마주칠까, 시내에서 마주칠까 조심조심하는 것도 잠시 오래간만에 만난 중학교 때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어둑어둑한 늦은 밤이 되어서야 헤어졌다. 다들 나와는 정 반댓쪽에 사는지라 잘 가라고 인사를 하고는 우리동네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간만에 멋 좀 부린다고 입은 짧은 교복치마에 훤히 드러낸 다리가 시려왔다.
“존나 춥네.”
이빨이 다닥다닥 떨리는 것을 느끼며 집으로 가는 걸음을 빠르게 움직였다. 유흥가 주변인 골목을 지나가고 있는데 어둑한 골목 어귀에서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듯한 남성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밤이라서 어둑한 탓에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 남자의 모습에 내 머릿 속에서는 갑자기 아빠가 즐겨보는 뉴스에서 떠들어대던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리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들어가면 가끔 포털사이트에 띄어져있던 뉴스 기사 제목이 떠올랐다.
ㅡ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던 이모양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ㅡ싸이코패스 살인마 ㅇㅇㅇ, 경기도 성남서 검거
강간.살인.폭행.납치. 갑자기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릿 속을 가득 채웠다. 지름길로 오지말고 큰 길로 다닐 걸..! 날을 잘 못 잡았다는 생각과 함께 오늘 그냥 보충하고 바로 집으로 갈 걸. 하는 후회가 되었다. 제가 잘 못 했다고 이런 시련을 주시는건가요. 평소에는 믿지도 않았던 신이 생각났다. 앞으로 성당도 다닐게요. 그러니까 제발.
“야 이쉬발 너 이리 와.”
제발.제발.. 하며 조심스럽게 그 남성 옆을 지나치려고 하는데 술 냄새를 폴폴 풍기던 남자가 나를 불렀다. 너 이리 와 시발. 그 목소리가 들리자 내 온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이 달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저..저요...? 조심스럽게 묻자 가로등 불에 비친 흉악한 얼굴이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냐 씨발. 하며 꼬인 발음으로 나를 부른다. 그대로 온 몸이 굳은 채 사시나무 떨고 있으니 남자가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온다. 엄마..아빠.. 저는 먼저.. 가는건가요...? 치킨 시켜놨다고 빨리 오라고 문자까지 보내주셨는데 저는 치킨도 못 먹고 가네요..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절대 치킨을 못 먹어서가 아니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나이도 앵간히 먹으신 분이 왜 이러실까.”
낯익은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덜덜 떨고있는 내 손목을 잡고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갑자기 나타난 남자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들고 그가 누군지 확인했다.
“이 쉬발! 개같은 년아 너 앞으로 안 기어나와?”
“애 겁은 왜 줍니까? 나한테 얘기하시라고.”
김민석이었다. 주변에서 약속이 있었는지 학교에서와는 약간 다른 차림을 하고 있는 김민석. 취객이 김민석 뒤에 숨어있는 나를 끌어내려는 듯 손을 허우적 거렸다. 그 손짓에 놀란 내가 몸을 웅크리고 김민석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선생님. 도와주세요.. 떨리는 몸의 진동이 옷자락을 타고 김민석에게까지 전해졌는지 김민석은 살짝 고개를 뒤로 돌려 나를 쳐다보더니 안심하라는 듯 오른 손을 등 뒤로 넘겨 내 손을 잡아주었다.
“시발년아 너 나오라고!”
“어이, 아저씨. 술 먹었으면 집에 가서 곱게 처 자던가 어디서 애한테 행패야, 행패가.”
나를 잡으려고 허우적 대는 손을 왼 손으로 거세게 쳐낸 김민석이 말로는 도저히 대화가 되지않자 자꾸 나를 향해 걸어오는 취객을 발로 찼다. 우당탕탕 하며 넘어진 취객이 으으으.하며 제 몸을 가누지 못 한 채로 끙끙 거렸다. 골목 길 사이에서 취객의 일행인 듯해 보이는 사람 두 명이 달려왔다. 이 새끼 어디갔나 했더니..! 죄송합니다! 하며 고개 숙여 사과하는 일행의 모습에 나는 괜찮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지막까지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취객을 데려가는 일행들의 모습에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내가 땅에 닿기 전에 나를 받아낸 김민석이 내게 화를 냈다.
“대체 뭐가 괜찮아, 이렇게 많이 놀랬으면서”
크게 소리 지르지는 않았지만 날카로운 눈매로 성난 얼굴을 하는 김민석을 얼굴을 멍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단단히 화가 났는지 왁스로 올린 머리를 아무렇게나 헝클여트리며 김민석이 화를 냈다.
“여자 애가 세상 무서운 것도 모르고 이렇게 짧은 천쪼가리나 걸치고 밤 늦게 다니는데 미친 놈들이 꼬이는 게 당연하지!”
단단히 화가 났는지 김민석은 두 손으로 나를 지탱하다가 한 손으로 나를 받힌 후,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런 김민석을 멍하게 쳐다보던 나는 코 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느낀지 얼마되지않아 내 얼굴을 타고 굵은 눈물 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듯 엉엉 우는 내 얼굴을 쳐다보던 김민석이 한숨을 내쉬며 내 머리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하며 나를 토닥거려주는 김민석의 품에서 나는 엉엉 울었다. 골목길 가로등이 다섯 번 깜박이는 시간 동안.
약속 가기 전에 올리고 가요!
밍솤센세 머시쪙! ㅇㅅㅇ 완존 백마 탄 완쟛님이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