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닉~ |
언어영역 뚀 눈두덩 승쨩 <비회원> |
그 일이 있고나서부터는 나와 김민석은 무조건 같이 하교를 하게 되었다. 알고보니 김민석은 나와 걸어서 15분 거리인 동네에 살고 있었고, 한 번만 더 보충수업을 빼먹고 간다면 벌금 삼만원이라며 내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겁 안 줘도 이제 안 빼먹어요..”
“혹시 모르니까 하는 소리야. 알았어?”
입술을 쭉 내밀고 투덜거리며 교과서에 적힌 중국어를 따라읽었다. 김민석은 그런 내 발음을 듣고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샤프로 한 곳을 집었다. 잘 따라 읽어봐. 여기서는 2성조잖아. 올라가야지. 이렇게요? 아니. 이렇게. 김민석이 시범 삼아 말하는 것을 따라 얘기하자 그거라며 김민석이 잘했어.라고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였다.
“아, 미안.”
“뭐가요?”
“너 머리 쓰다듬는거 싫어하잖아.”
쿨하게 넘겨서 별 상관 안 쓰는 줄 알았더니 꽤나 신경이 쓰였나보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 상관없다는 제스쳐를 취했다.이제는 괜찮네요. 김민석쌤이 적응됐나봐요. 장난스레 말하자 김민석이 웃으며 내 머리를 다시 쓰다듬었다. 그리고 입을 열어 무슨 말을 하려다가말길래 얘기해보라는 듯이 내가 눈썹을 까딱이자 착하다고. 하며 피식 웃었다.
두근.
또 다. 요즘따라 무슨 일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김민석을 볼때마다 가슴 한켠이 이상해진다. 따끔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간질간질거리기도 하고. 자꾸만 신경쓰이는 마음을 애써 감추고 교과서를 쳐다보았다. 김민석의 냄새가 내 코를 간지럽혔다. 선생님이랑 잘 어울리는 냄새네. 그런 생각을 하며 어떻게 읽어야되는지 몰라서 한참 붙잡고 있던 문제를 물어보기 위해 옆에서 노트북으로 일하고 있는 김민석을 불렀다.
“선생님.”
“어어?”
바쁘게 타자를 치던 김민석이 내 부름에 여전히 두 눈은 모니터에 두고 대답했다. ‘이게 뭐예요?’ 하며 교과서를 김민석 쪽으로 밀고 어느 문장을 콕 집어서 묻자 김민석이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그제서야 교과서를 본다. 내 손가락은 ‘我只爱你’ 라는 글자를 가르키고 있었다.
“워즈 아이 니.”
“네?”
“너만을 사랑해.”
그 글자를 확인하던 김민석이 고개를 들고 얘기했다. 김민석의 목소리에, 마주한 시선에 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너만을 사랑해.
그 단어를 설명해주려는 듯 김민석이 제 의자를 끌고 내 옆으로 왔다. 그와 함께 훅 끼쳐들어오는 김민석의 향수냄새에 정신 차리기 위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설마. 내가 김민석을?
“집중 안 하냐.”
그런 내 모습에 문장을 쓴다고 나보다 낮게 엎드려 있던 김민석이 살짝 눈을 치켜떠 나를 올려다보았다. 씨발. 어떡해. 내 심장은 인정하라고 시위라도 하는 듯이 덩 기덕 쿵더러러러 쿵 기덕 쿵더러러러 하고 굿거리 장단과 세마치 장단. 자진모리 장단을 번갈아 타고 있었다. 혹시나 김민석에게 들릴까봐 나는 조마조마하게 마음을 졸이며 남은 보충수업을 끝냈다.
씨발. 말도 안 돼. 내가 김민석을 좋아하다니! 그럴리 없어. 김민석은 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 걸. 내가 응애응애.하고 태어났을 때에 김민석은 구구단을 초등학교에서 급식을 먹으며 구구단을 외우고 있었을 10살이고, 내가 아침마다 우유를 마시며 구구단을 외울 때 김민석은 대학동기들과 함께 술을 퍼마시며 전공 강의를 듣고 있을 20살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고등학교 2학년 18살이고, 김민석은 내일 모레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28살이고!!!!!!!!
내가 김민석을 좋아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지만 아무리 부정하고 아닐거라고 생각해도 내가 김민석을 좋아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김민석을 고의적으로 피해다녔다. 보충이나 수업은 어쩔 수 없으니 듣기는 했지만 수업과 관련없는 사적인 이야기는 절대적으로 꺼내지않았다. 김민석이 말이라도 걸어올라치면 나는 말을 돌리고, 피하고 도망다녔으니 말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보충을 마치고 김민석이 한 눈을 판 사이에 집으로 도망쳐 온 나는 태연이와 전화통화를하며 고민 상담을 했다.
“야 내 친구 이야긴데”
ㅡ오키오키~ 루루 거기 똥 싸지 마!
루루가 똥쌌나보다. 아. 참고로 루루는 태연이랑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다. 절대 지금 대세돌이라는 이그조의 루한이 아니다.
“내 친구가 좀 나이 많은 사람한테 관심이 가나 봐.”
ㅡ어어 그래서? 루루야!!! 똥 먹지마!!
“걔가 우리랑 동갑이고 남자는 10살 더 많거든? 내 친구가 이상한 거야?”
ㅡ민석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안 이상해 이년아. 루루 똥 굴리지 마 제발!!!!!!!
“내 이야기 아니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통화를 끊어버렸다.
개새끼나 주인새끼나 똑같아! 루루가 아니라 니가 입으로 똥싸고 있구만 김태연! 휴대폰을 침대 위로 집어던진 내가 한참을 씩씩대다가 소심하게 다시 침대 위로 가서 휴대폰을 주워서 카톡을 켰다.
[어떻게 알았어..? 티 많이 났어..?]
나는 참고로 소심한 A형이다..
[너 좋아하면 빨리 고백해. 이번 학기 끝나면 민석쌤 가잖아.]
기말고사는 빠르게 찾아왔다. 김민석과의 보충수업도 그렇게 끝이났고. 오늘은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었다.
나는 담임에게 건네받은 성적표를 조심스레 펼쳤다. 제발. 제발 올라라 제발 18점만은 아니기를. 두 눈을 꾹 감고 성적표를 펼치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했는지 내 성적표를 힐끔 쳐다 본 김태연이 소리쳤다. 이년아 올랐으니까 눈 떠! 그 말에 안심하고 한 쪽 눈만 힐끔 실눈을 떠서 점수를 확인하니 82점이다! 헐! 대박! 감격스러운 마음에 성적표를 부둥켜안고 쪽쪽쪽 뽀뽀를 했다. 정신나간년이라며 혀를 차는 김태연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대충 자체 스킵하고 성적표를 들고 교실을 나섰다. 민석쌤한테 자랑해야지! 바보같은 웃음을 지으며 교무실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팔랑팔랑 걸어 도착한 교무실에서 여전히 김민석은 아이들에게 쌓여있었다. 선생님 저 오늘 성적표 나왔는데~ 이거 잘 모르겠어요~ 쌤 이 문제가 뭐예요~? 어지간히 귀찮았는지 표정관리를 그렇게 잘 하던 김민석이 인상을 찡그리며 그것을 또 하나하나 일일히 대답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뒤에서 하나하나 목덜미를 잡아채고 뒤로 넘겼다. ‘이건 이렇게 읽는거잖아.’, ‘넌 숫자도 못 읽어?’ 다섯 명 정도를 그렇게 보내자 김민석이 나를 발견했는지 피식 웃었다.
“이거 답은 3번이야. 너 맞췄네. 그러니까 가.”
마지막까지 보내고나자 김민석이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진짜 골때린다. 하고 내 이름을 부르던 김민석이 계속 나 피해다니더니 왠 일이야? 하고 묻는다. 그의 앞에 서자마자 입이 굳고 몸이 쭈뼛쭈뼛거렸다. 진짜 나 왜 이러니 대체. 촌스럽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쭈뼛거리는 움직임으로 김민석에게 성적표를 내밀었다. 갑자기 내민 성적표에 김민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받아보던 김민석이 옼!하며 깜짝 놀란다.
“진짜 네 성적표야?”
“..당연하죠.”
“잘 했네. 거봐. 하면 된다고 했지?”
김민석이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제야 헤헤하고 웃던 내가 김민석의 책상 위에 올려진 박스를 보며 물었다. 쌤, 이거 뭐예요? 그러자 김민석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곤란한 듯 웃었다. 그러고보니 김민석의 책상이 깨끗했다.
“나 기간제잖아. 오늘로 계약 끝이라서.”
“...”
갑작스레 찾아 온 이별에 입을 뻐끔거렸다. 학기 끝날때까지 있는다면서요. 겨우 꺼낸 말에 김민석이 박스를 끙차 하고 들고 교무실을 나서며 얘기했다. 이야기가 그렇게 퍼졌어?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김민석의 얼굴에 가슴이 철렁하는 것이 느껴졌다. 내 손에 쥐어져있는 성적표가 꾸깃하게 접혔다. 내가 뭣때문에 중국어를 열심히 했는데..
김민석이 커다란 박스를 들고 간 자리를 쳐다보다가 그를 따라 학교를 나왔다. 본관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나는 김민석에게 물었다. 쌤 안 가면 안 돼요? 쌤 왜 가요. 가지마요. 응? 조잘조잘. 떠드는 내 모습에 차 트렁크에 박스를 싣던 김민석이 고개를 돌려 ‘나도 가기싫어진다.’하고는 눈썹을 축 늘어트렸다.
“..내가 김민석 쌤 많이 좋아하는데, 안 가면 안 돼요?”
“그래. 나도 너 좋아해.”
조심스레 꺼낸 내 말에 김민석이 웃으며 차 트렁크를 닫았다.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김민석이 운전석으로 걸어갔다. 그래. 나도 너 좋아해. 하고 말하며.
김민석은 내 고백이 장난처럼 들리나보다. 나는 진심인데. 저렇게 쉽게 대답할 수 있을만큼 가벼운 감정이 아닌데.. 그 뒷모습을 쳐다보던 내가 더 이상 쫓아가지 못 하고, 그 자리에 서서 작게 얘기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목소리가 떨려와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심인데. 나 진짜 쌤 좋아하는데.”
울먹이는 내 목소리에 한숨을 쉰 김민석이 운전석을 열다말고 다시 내게 걸어와서 나를 안고 달랬다. 김민석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내가 작게 몸을 떨며 울었다. 선생님은 내 마음도 모르면서 왜 자꾸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치부해버려요. 나는 아닌데. 내가 이때까지 무슨 생각으로. 어떤 감정으로 선생님을 피해다녔는지도 모르고. 내 등을 토닥거리며 가로등 아래에서 처럼 나를 안고 달래던 김민석이 한숨을 쉬며 얘기했다.
“그래도 너는 지금 학생이잖아. 나는 감당 할 자신이 없어.”
“선생님은..흐엉, 어헝. 내가. 싫어요?”
울음으로 얼룩진 목소리가 끊겨나왔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더니. 그러면 첫사랑이 오기전에 얘기라도 해 주던가. 그러면 그 사이에 누구라도 사랑하고 오면 되잖아. 김민석은 왜 갑자기 찾아와서. 그런 생각에 나는 또 다시 김민석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엉엉 울었다.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김민석이 나를 토닥거렸다.
“싫어하는게 아니야.”
“그런데. 왜. 허엉.흐으.히끅. 그만 두지 마요.히끅.”
괜한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만둘 수 없었다. 김민석이 이대로 가버리면 끝인 걸 아니까. 수업을 핑계삼아 보내던 연락도 더이상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니까. 어린아이처럼 땡깡을 부리는 나를 달래던 김민석이 얘기했다. 인연이라면 또 만날 수 있을거야. 씨발. 그게 무슨 소리야. 나랑 선생님이 인연이 아니면 내 첫사랑은 이렇게 끝나는거잖아. 어이가 없어서 울음을 멈춘 나를 품에서 떼어낸 김민석이 내 눈물을 닦아주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울지말고. 무럭무럭 자라라. 알았지?”
그 말을 마치고 김민석은 제 차를 타고 교문 밖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내 첫사랑은 끝이났다. 시시하게도.
1년 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에 입학했고. 또 다시 대학을 졸업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며 내 기억 속에서 김민석은 천천히 묻혀져갔다.
식은 커피를 마시며 10년 전 일을 회상하고 있는데 카페주인이 내게로 다가와서 물었다. 커피가 식었네요. 다시 리필해드릴까요? 웃음을 머금고 물어오는 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카페 주인은 내 옆에 있는 의자 하나를 빼서는 제가 앉고 나를 보며 물었다.
“글은 잘 써지고?”
“키스신에서 막혀. 너무 뻔한 키스신은 싫은데.”
투덜투덜거리는 내 모습에 카페 주인은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을 내게로 들이밀었다. 뻔한 키스가 어딨어. 다 새로운거지. 하며 통통한 입술로 내게 키스한다. 하여간. 서른 여덟 먹고도 김민석은 진짜.. 나는 입가에 가득 피어나는 웃음을 머금고 김민석과의 키스를 나누었다.
대체 누가 그래. 첫사랑이 안 이루어진다고. 나는 이루어졌다. 내 첫사랑 김민석과.
김민석은 울고있던 18살의 내게 그랬다. 인연이라면 다시 만날거라고. 그때는 왠 개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했지만 그와 나는 인연인 모양이었는지 10년이 지난 지금. 함께 있다.
“이게 뻔한 키스야?”
입술을 뗀 김민석이 장난스레 웃으며 물었다. 하여튼 나이먹으면서 늘은 거라고는 능글맞음 밖에 없지? 그 모습에 나는 그의 단단한 허벅지를 치며 얘기했다. 좋은 키스야. 안 뻔해.
10년이 지난 지금, 학생이었던 나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어 있었고, 중국어 교생이었던 김민석은 작은 개인 까페의 주인이 되었다. 그와 다시 재회한 이야기를 하려면 이야기가 길어지지만. 쨌든 지금 그와 나는 함께 있다. 이 공간에서. 영원히 사랑하고 있다. 아 참. 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한 김민석이 서랍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어 내게 다가왔다.
“우리 청첩장 디자인 시안인데, 이거 어때?”
“괜찮은데 이거?”
“그렇지? 그러면 이걸로 결정한다?”
“알았어요 여보”
장난스레 김민석의 엉덩이를 통통 두드리자, 고양이같은 눈매로 나를 째려보더니 떽!하고는 내 양 볼을 잡고 쪽쪽쪽.하며 버드키스를 한다. 할거야 안할거야. 짐짓 단호하게 물어오는 그 모습에 나는 또 다시 웃음을 참지 못 하고 장난스레 할거야!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또 쪽쪽쪽.하고 버드키스를 한다. 한참을 쪽쪽대다가 마주친 두 눈에 누구라도 먼저 할 것 없이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아늑한 작은 까페에 김민석과 나의 웃음소리가 가득 울려퍼졌다.
지금 나는 너무나도 행복하다.
내 첫사랑이자 내 남자. 이제는 평생을 함께 할 나의 남편 김민석과 함께라서.
1.
첫사랑이 끝났습니다!
는 훼이크ㅇㅅㅇㅋ 아직 번외가 남아있습니다. 하. 힘들다.
2.
내일이면 다들 개학or개강이시겠네요.
힘내세요 여러분iㅅi
3.
'나'가 민석이 앞에서 엉엉울고 찡찡대는데 왜 나는 종대가 생각나지(심각)
스젤찡.. 하지만 종대야 나는 널 정말 사랑해. 내가 종대생인건 알고 있니?(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