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자박. 제가 원하던 서울예대를 탐방하러 온 백현은 제 뒤로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캠퍼스를 돌았다. 분명히 제가 왼쪽으로 가면 왼쪽.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 이렇게 따라오는 것으로 봐서는 우연은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며 백현은 멈춰섰다.
백현이 멈춘것을 몰랐는지 콩.하고는 머리를 부딪히는 원인제공자의 모습에 백현이 깜짝 놀라 뒤를 쳐다보았다. 이러려고 멈춘건 아닌데!
“괜찮아?”
“어? 어어..”
쪼그려앉아 괜찮냐고 물어보니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작은 여자아이의 모습에 나는 살짝 웃음이 터질 뻔 했다. 아픈게 빤히 보이는데 아프지않다고 버럭 대답하는 모습이 꽤나 귀엽게도 느껴지는 백현이다. 그녀는 나와 같이 서울예대를 꿈꾸는 서울예대 지망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같은 과를 지망하다니 나중에 만날 수 있을것도 같아 같이 캠퍼스를 노다니며 이야기를 했다. 주로 백현이 이야기를 하고 그녀는 웃으며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을 잘 알고있는 것만 같은 그녀의 모습에 낯을 가리던 백현은 어디갔는지 친한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는 본모습을 보여주며 한참을 떠들던 백현이 시간을 보고 시무룩히 말했다.
“나 이제 가봐야될 것 같아.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어서.”
“그래.”
이대로 헤어지기는 아쉬워 휴대폰 번호를 묻자, 그녀는 자신의 휴대폰을 제게 주었다.
010..1992.. 터치폰이라니! 완전 얇아. 이때까지 알고 지내왔던 스마트폰과는 완전 다르게 생긴 휴대폰을 보고 백현은 감탄하며 제 핸드폰 번호를 눌러 저장시켰다. 이건 뭐지? 궁금증에 홈 화면을 버튼 누른 백현은 입술을 뻐끔뻐끔하며 그녀와 휴대폰을 번갈아보았다.
“다 찍었어?”
“응.”
그렇게 그녀의 휴대폰 번호를 받고 백현은 웃으며 인사했다. 다음에 만나자! 하고 손을 붕붕 흔들며 백현은 뒤돌아 걸어갔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미소가 멤돌았던 입가가 내려갔다. 잘 못 본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다시 생각해봐도 똑똑히 써져있었다.
2014년 2월 30일.
시간 설정을 잘 못 해놓은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지만 시간도 가지 않았다. 2분 정도 휴대폰을 들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1시 24분에서 멈춰있던 시간을 생각하며 백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미래에서 온 건가? 아냐, 말도 안 돼. 만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아니고 설마 타임워프해서 왔다는거야? 에이 거짓말.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도 답은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미래에서 왔다는 것.
많은 만남을 가졌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녀도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 뿐더러 미래에서 왔다고 해도 지금의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카페 안으로 들어오며 갑작스레 따뜻해진 공기에 몸을 부르르 떨며 목도리를 풀러냈다. 그 모습을 보던 그녀가 걱정스레 말했다.
어릴 때 부터 가수되고 싶다면서 목관리 잘해야지. 추위도 많이 타는 애가 왜 그랬어. 아무런 생각없이 진심으로 우러나, 필터링을 거치지않은 말에 나는 살풋 웃음이 났다. 티를 안 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왜 자꾸 내 눈에는 다 보이지?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고만 있을 그녀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귀여워.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응?”
“내 꿈이 어릴때부터 가수였던거?”
그 말을 장난스레 꺼내자 또 한 눈에 보일정도로 굳는다. 어버버거리며 한참 눈치를 보고 생각하더니 꺼낸다는 말이
“그냥 찍었는데”
란다. 귀엽기도 하고 더 이상 꺼내면 곤란해할것 같아서 많은 말을 하지않고 주문을 하러갔다. 반응이 귀여우니까 자꾸 놀리고 싶어질 것 같아서. 카운터로 가서 휴대폰을 만지는 척 흘끔흘끔 쳐다봤다. 내가 가자마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분홍빛 입술로 후후. 하고 숨을 내쉰다. 아 진짜 귀엽다. 어떡하지.
주문한 핫초코를 들고가자 또 찹쌀떡 같은 얼굴이 씁쓸하게 웃는다. 핫초코 안 좋아하나? 그녀의 눈치를 본다고 아무 생각없이 뜨거운 핫초코를 그냥 마셨더니 또 그녀가 걱정하듯이 말한다. 조심해, 너 고양이 혀잖아.
너나 조심해 이여자야. 들키고싶지않았으면 조심했어야지. 너무 풀어져있는 것만 같은 그녀를 긴장시키기 위해 얘기했다. 너는 가끔 미래에서 온 사람같다고. 그러자 또 깜짝 놀라며 핫초코를 들고 얘기한다 그런게 어딨냐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조잘거렸다. 70프로는 진심이었고 30프로는 장난인 말에 그녀는 진지하게 반응했다. 나는 감동을 줄 수 있는 가수가 될 수 있을거라고. 꽤나 진지하게 반응한 그녀가 핫초코가 가득 담긴 머그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물었다.
“네가 만약에 가수가 되잖아.”
“응?”
“공인이되면 사람들한테 노출이 되잖아..그것때문에 네 목숨이 위험해지면 어떡할거야?”
한 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는 일이었다.
무작정 노래가 좋았고, 어렸을때부터 꿔왔던 단 하나뿐인 꿈이었으니까. 목숨이 위험해지는 일이 생긴다고? 그래도 나는 아무래도 똑같지않을까. 노래말고는 다른 건 생각치도 못 했는데 그것을 못 한다면 나는 살아도 사는게 아니지 않을까? 그녀의 질문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나는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 하고.
내 대답을 들은 그녀는 잠시 충격 먹은 얼굴을 하더니 곧 울 것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에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을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가 그것을 많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도.
“걱정 마. 네가 미래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또 다시 그 일을 겪게 하지 않을테니까.”
그렇게 그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내게 4년 뒤의 이야기도 간간히 해주었고 나는 그녀에게 귀걸이를 선물해주었다. 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나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아주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달콤했던. 잊지못할 짧은 키스었다. 그녀가 걱정하던 것과는 달리 사진은 아주 예쁘게 잘 나왔다. 첫번째도 두번째도. 자꾸 사진 확인을 해보고 싶어하길래 예쁘다고 얘기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커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누군가에게 우리도 커플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1년 뒤에 보내준다는 편지를 써내려가며 나는 어느덧 다다른 마지막 줄에 힘을 주어 글자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네가 이 편지를 보는게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보고싶을거야. 보고있어도 보고싶으니까.’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거나. 그런 말을 쓰지않았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니까.. 4년 뒤일지. 언제일지 잘 모를.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에 만나서 얘기해주고싶었다. 많이 좋아한다고.
편지를 편지함에 넣고 난후. 그녀는 사라졌다. 내 눈앞에서. 아주 순식간이었다. 점점 그녀는 제 몸이 옅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더니 내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원래 내가 있던 자리로 가게 되는가 봐.’
‘다시 만날 수 있는거야?’
‘네가 또 다시 이 길을 걷게 되었으니까.. 아마도?’
내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데 자꾸만 닿지않으니 그게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내 뺨 가까이에 손을 대고 눈물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온기가 내 뺨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히 4년 뒤에 다시 만날 수 있을텐데 왜 나는 자꾸만 너를 보내기가 싫어지지.. 자꾸만 못난 모습을 보일 것 같아서 입술을 앙다물었다.
‘잘 지내고, 아프지말고.’
‘너 나 아프지 마..’
저 미련한 여자는 끝까지 내 걱정이지. 자신도 아픈건지 식은땀을 흘리며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으면서 애써 웃는 얼굴로 나를 걱정한다. 그녀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웃어야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아도 웃어야만 됐다. 안 그러면 저 여자는 제 자리로 돌아가서도 내 걱정 뿐일테니까.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지금은 때가 아니니까.’
‘응응..’
‘4년 뒤에 해 줄게. 그때 얘기해줄게.’
천천히 옅어지던 몸이 투명해지기 시작하더니 그녀는 곧 사라져버렸다. 나는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금방 갈게. 뛰어갈게. 4년만 기다려 줘.
그녀는 미래에서 왔지만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그저 가수가 될 것이라는 것 밖에. 그렇게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 목을 풀다 캐스팅을 당했고. 짧은 연습생 생활을 거치고 나는 데뷔조에 합류하게 되었다. 힘든 생활에 잠시 그녀가 잊혀질쯤 어머니는 연습을 마치고 온 내게 편지 한 통을 건네주었다. 백현아, 이거 너한테 왔더라. 편지봉투에는 내 글씨로 적힌 집 주소와 그녀의 글씨로 적힌 그녀의 이름 세 글자가 적혀있었다. 나는 내 방에 들어가자마자 츄리닝이 든 가방을 내려놓고 편지를 뜯어 찬찬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경기도 부천시 베이비돈구(라이) 링딩동 너의 세상으112-1로 백현마을 1단지 506호 변백현 |
스무살의 백현아 안녕?
잘 지내니? 내가 알기로 너는 지금쯤 아마 데뷔조에 들어가서 빡세게 연습하고 있겠지?옆에서 응원해주고 싶은데 2011년의 나는 너를 몰라. 내 죄가 크다. 그치?
하지만 너무 미워하지마.. 1년 뒤에 나는 네 덕분에 수능을 말아먹거든. 니가 너무 멋있어서 그래.
(중략)
건강 조심하고. 목 관리 잘 하고 백현아. 아 맞다. 너 예전에 올린 사진이나 영상들 좀 지워.. 너 데뷔하고나면 흑역사로 남을 것들이니까! 진지한 이야기야(진지)
(중략)
항상 보고있어도 보고싶은 백현아. 하고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이 넘쳐나지만 나는 지금 참고 있어. 그래서 지금 이 편지에서는 조금 욕심내보려고해.
백현아. 내가 많이 좋아해. 항상 사랑해. 우리 4년 뒤에 다시 보자.
☆☆p.s 2014년 2월 30일. 차 조심해. 백현아. |
*
나는 정말 그녀의 말대로 데뷔하게 되었다. EXO라는 그룹으로.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녀는 단 한 번도 내 앞에 나타나지않았다. 혹시 그때 시간을 뛰어넘어 온 탓에 그 사이의 시간이 없어진 것이라도 한 걸까. 괜한 걱정에 나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찬열이가 에비에비.하며 내 손을 탁탁 쳐냈다. 니가 애기냐. 하며 묻는 찬열이에게 대충 깹송~하며 추임새를 넣어주고 창 밖을 쳐다보았다. 어느덧 숙소 앞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리려는데 매니져형이 나를 말렸다. 아. 백현아 너는 스케줄 하나 더 있어. 화보 미팅하러 가야돼.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자 새벽 1시었다. 그리고 날짜는 그녀가 조심하라던 그 날. 2014년 2월 30일.
“형, 나 감기 올 것같은데 미루면 안 될까?”
“너 임마! 콘서트 얼마 안 남았는데! 그럼 일단 대충 둘러댈테니까 들어가있어!”
형의 말에 웃으며 나는 숙소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트럭에 치이는 꿈을 꿨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2014년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벤트 형식으로 치뤄진 허그회에서 나는 한명 한명의 팬들을 안아주었다. 오빠 정말 팬이예요. 노래 잘 듣고 있어요. 그런 팬들의 반응에 고맙다고 얘기하던 내가 곧이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멍하게 눈을 깜박였다. 그때와 똑같은 모습을 한. 조금은 말라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눈물이 다시금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쳐다보다가 왜 울어. 하고 걱정스레 입모양으로 얘기하던 그녀가 눈썹을 축 늘어트리며 물었다. 기뻐서. 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게 너무 기뻐서.
“편지 받았어?”
“응.”
어느덧 내 앞으로 온 그녀에게 작게 물었다. 그러자 환하게 웃으며 응. 하고 웃는 그녀. 그리고는 얘기한다. 백현오빠. 오빠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내 앞에 나타나줘서 너무 고마워요. 하고.
그 말에 나는 푸스스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나도 너무 고마워. 내 눈앞에 나타나주어서.”
나를 끌어안는 그녀의 손이 느껴졌다.
“그리고 사랑해.”
그녀만 들릴 수 있는 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4년동안 담아두고 혼자 썩혀두었던 이야기를 이제서야 하게 되었다. 그런 내 마음을 잘 알겠다는 듯이 그녀가 등을 두드려주었다. 수고했어. 힘들었지. 하고 위로하는 듯이.
내가 쉬지않고 달려왔던 길의 중간에서 나는 내 꿈을 함께 이루어갈 나의 사람을 만났다.
1.
그래 백현아. 네 인생에 나라는 오점을 남겨보는게 어때?(수줍)
2.
시달소 백현이 글은 이렇게 끝이나네요.
다음에는 윤중간지왈 입니다. 준면이 형. 형의 멋짐을 보여 줘!ㅠㅠ
3.
두서없이 써내려간 글이라서 꼭꼭 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백현이는 말 잘듣는 아이니까 그 날은 아예 나가지 않아요. 그래서 백현이가 나갔더라면 큰사고or작은사고로 끝날 수 있던 것들이 원인 자체가 없으니
그 사건을 유일하게 아는 '나'가 사고를 당하게 된 거죠. 그리고 백현이가 꿨던 꿈은 현실이었죠. 헣헣. 왜 백현이가 데뷔하고 그녀는 한 번도 보이지 않았냐면 그녀는 2014년의 사람이예요. 그래서 그 이전의 그녀는 아예 백현이와의 추억이없죠. 그냥 팬입니다. 그리고 2014년. 그 사건이 지나가고 난 크리스마스!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4.
쓰고 나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허접한 글이네요.
(징무룩)
5.
여러분 브금 잘 들리세요iㅅ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