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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이는 나를 보며 웃었다. 내가 가수가 되면 우리 같이 노래하자. 아직까지도 내가 서울예대 지망생인줄로만 아는 백현이에게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미안, 백현아. 나는 못 해. 아니, 너랑 나랑은 만나지도 못 할거고. 너는 아마도 내 존재를 아예 모를거야. 네 인생에 나는 아예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핫초코를 머금었던 입에 씁쓸한 맛이 감돌았다. 지금의 내 기분처럼 아주 씁쓸하게.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지 양쪽 입꼬리를 끌어올린채 핫초코를 마시고 있는 백현이를 보며 물었다.
“네가 만약에 가수가 되잖아.”
“응?”
“공인이되면 사람들한테 노출이 되잖아..그것때문에 네 목숨이 위험해지면 어떡할거야?”
조심스러운 내 물음에 음하며 동글동글한 두 눈을 돌리던 백현이가 글쎄. 하며 들고있던 머그컵을 내려놓았다. 방학을 맞이해서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가 결좋게 찰랑거렸다. 아주 찰나의 시간동안 곰곰이 생각하던 백현이가 나를 보며 웃었다.
“그래도 나는 노래하지않을까.”
“왜?”
“내가 원하는 걸 못하면 살아도 사는게 아니지 않을까?”
네 대답을 듣기 위해 4년이나 거슬러 온 시간 속에서 들은 너의 대답은 YES였다. 너는 망설임없이 다시 이 길을 선택했다.
그렇구나 백현아. 너는. 다시 이 길을 걷게되겠구나. 내가 걸어왔던 시간을. 4년 뒤의 변백현이 걸어갔던 발자국에 네 발을 맞춰서 2010년의 변백현은 또 다시 그 길을 걸어오게되겠구나. 괜한 마음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백현아. 너. 죽을지도 몰라.. 정말이야. 꾹 다문 입술 사이로 새어나올 것만 같은 마음에 테이블 위에 올려진 머그잔을 들어 핫초코를 꿀꺽꿀꺽 마셨다.
“걱정 마. 네가 미래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달래듯이 말하는 백현이의 말에 나는 핫초코를 마시던 것을 멈추고, 머그잔을 내려놓을 생각도 하지 못 한채 그를 쳐다보았다. 알고 있어?
“또 다시 그 일을 겪게 하지 않을테니까.”
“언제부터야..?”
“너 처음봤을때부터.”
동그랗게 눈을 뜨고 백현이를 쳐다보자 아무렇지않게 테이블 위에 올려진 내 휴대폰을 톡톡쳤다. 여기에 2014년이라고 적혀있었어. 그리고 2010년에 이런 휴대폰이 나오는 것도 처음 봤고. 눈썹을 들썩이며 백현이가 얘기했다. 그리고 너 계속 나한테 맞춰주는 거 알아? 그의 말에 점점 숙여지던 고개를 든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에대해 너무 잘 알아서 사소한 것까지 내 위주라고.”
“..아”
티를 내지않으려고 노력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티가 났었나보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두 뺨이 달아올랐다. 백현이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던거구나.. 일부로 모른 척 해준거였어.. 입술을 꾹 깨물고 머그잔을 내려놓고 만지작거렸다. 너는 내 팬이었어? 하고 묻는 백현이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백현이가 편안하게 미소짓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떤 가수였어?”
“너는 감정을 담아내는 가수였어 백현아. 난 항상 네 노래를 듣고 위로 받았고, 기쁨을 함께하고. 슬픔을 나누고..”
“..”
“네 노래를 들으면서 너무나도 행복했어. 백현아.”
조심스레 진심을 담아 내 마음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단어를 추려 이야기를 했다. 그 덕에 말이 띄엄띄엄 나왔지만 고개를 들고 마주친 백현이의 눈에는 고마움이 가득 담겨있었다. 나는 네 노래를 듣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어. 진심이야.
내 진심이 전해졌을까. 백현이가 얘기했다.
“그거면 됐어. 내가 어떤 일을 당해도. 설령 목숨을 잃을 일이어도.”
“..응..”
“내 노래를 듣고 너처럼 행복해할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백현이가 웃으며 어느새 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만 울고. 이왕 나를 만나러 4년 전으로 왔으니까 재밌게 놀아야지?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잖아. 해사하게 웃는 백현이가 나를 일으켜주었다. 충분히 변백현다운 위로 내가 살풋 웃었다.
“어..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너 4년 뒤에도 똑같아.”
“내가 4년 뒤에도 그런다고? 충격.”
상처받은 얼굴을 하더니 충격! 하고는 웃어보이는 백현이의 얼굴에 나는 그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거리에는 커플들이 가득가득 넘쳐났다. 하얀 눈을 맞으며 나와 백현이는 새빨간 볼을 하고 시내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이야기를 하느라 지나칠 뻔한 노점상 앞에 멈춰선 백현이가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귀걸이를 뒤적뒤적 거리던 백현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넌 내 1호팬이니까 사주고싶어. 별모양의 귀걸이를 내 귀에 대며 백현이가 이걸로 주세요. 하고 계산을 마쳤다. 이거 내가 사준거니까 항상 끼고 다녀야 돼. 알았지? 귀걸이를 내 손에 건네주며 태양처럼 환히 웃는 백현이를 마주보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 마지막으로 시내 한복판에 우뚝 서있는 트리 앞에 도착했다. 벌써 11시 50분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트리를 구경하던 내 얼굴 앞으로 백현이가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뭐하는거야! 나 사진찍는거 안 좋아해! 깜짝 놀란 내가 뒤로 내빼자 옆에 바싹 붙은 백현이가 에이~ 한번만! 하며 사진을 찰칵 찍었다. 그덕분에 한껏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나와 미소를 짓고있는 백현이의 사진이 폴더폰 액정에 떠올랐다. 이게 뭐야! 이왕 찍을거면 예쁘게 찍어주지! 울상을 지으며 휴대폰을 뺏으려 하자 백현이가 휴대폰을 높이 들며 얘기했다. 그러면 한 번 더 찍던가~
“그러면 예쁘게 찍어야돼.”
울상을 지은 내가 백현이의 옆에 섰다. 폴더폰 카메라로 내 얼굴과 백현이의 얼굴이 함께 나왔다. 하나~ 둘~ 셋! 하며 숫자를 세던 백현이가 셋이 지난지 한참이 되어도 확인버튼을 누르지 않기에 왜 안 눌러?하며 고개를 돌렸다. 쪽. 찰칵.
“아이고 잘~ 나왔네!”
“ㅂ..변백현, 너!”
내가 고개 돌리는 것을 기다렸는지, 고개를 돌리자마자 백현이와 입술이 닿았다. 말랑한 감촉의 입술이 느껴지자마자 찰칵.하고 찍힌 사진에 능글맞게 웃으며 입술을 뗀 백현이가 잘 나왔다며 기뻐했다. 좋기도하고 부끄럽기도한 마음에 버럭 소리를 지르자 백현이가 브이를 하며 웃는다. 하여간 진짜.. 발갛게 달아오른 광대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덧 트리 옆의 시계탑은 12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나는 사진을 확인하려 했지만 백현이는 저만 볼거라며 휴대폰을 주머니 안에 넣어두고 내 손을 잡았다.
“확인만 할게, 응?”
“확인 안 해도 예뻐. 저기 뭐지?”
사진 확인을 위해 조르고 있는데 백현이가 저게 뭐냐며 커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이끌려가는 순간에도 옆에서 들리는 커플의 목소리에 나는 뺨을 붉혔다. ’자기야, 저 사람들 잘 어울린다 그치? 우리도 잘 어울릴까?’ 백현과 저는 커플이 아닌데. 그러고보니 우리는 무슨사이일까. 미래 가수의 1호팬..? 난감한 관계에 잡히지않은 손으로 귀 뒤를 긁었다. 백현을 따라 도착한 건물 안에서는 편지지와 편지봉투가 있었다. <1년 뒤, 크리스마스에 보내드립니다.>
“우리도 저거 쓸래?”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를 주변 편의점 테이블에 앉혀놓고 커플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 편지지와 편지봉투, 펜을 두 개씩 챙겨온 백현이가 내게 주었다. 편지봉투에는 너네 집 주소적기~ 하며 뒤를 돌아 편지를 쓰는 백현이의 뒷통수가 굉장히 신나보였다. 강아지같아.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테이블에 편지지를 내려놓고 한글자씩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20살의 백현아 안녕’ 으로 시작한 편지는 꽤나 길게 이어졌다. 그 중간에는 연습생 이야기도 들어가있고. 건강 잘 챙기라는 걱정들도 들어가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는 이렇게 썼다. 2014년 2월 30일 차 조심해. 차 조심해, 백현아. 네가 기억을 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다 안 썼어? 하며 나를 재촉하는 백현이의 목소리에 나는 별 두 개까지 꼭꼭 써붙히고 나는 편지를 접었다.
“다 썼어!”
“그럼 편지봉투에 넣어.”
하며 제 집 주소가 적힌 편지봉투를 내게 건넸다. 나도 본가 주소가 적힌 편지봉투를 건네고 백현이가 준 봉투안에 곱게 접은 편지지를 넣어 입구를 봉한 뒤, 편지통에 넣었다. 1년 뒤에도 백현이가 나를 잊지않기를. 이 편지를 보고 내 존재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면서. 편지통에 편지를 넣고 백현이와 마주 보며 웃었다. 오늘 즐거웠다 그치? 하고 묻는 백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머리가 띵하게 울리는 것을 느꼈다.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울리는 것을 느낀 내가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설마. 그럴리가 없는데. 내 시간은 멈춰져있는데 어떻게 휴대폰이 울리는거지?
“..너...”
백현이가 내 팔을 잡으며 물었다. 왜 그래.하고 되물으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를 붙잡으려 뻗은 백현이의 손이 허공에서 맴돌았다. 나를 불안하게 올려다보던 백현이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제 갈 시간이구나.. 내 자리로 돌아갈 시간이구나.. 그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내가 휴대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했다.
2014년 2월 30일 AM 1:25.
멈춰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남들에게는 지금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건지 사람들은 내 몸을 통과해서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원래 내가 있던 자리로 가게 되는가 봐.”
“다시 만날 수 있는거야?”
“네가 또 다시 이 길을 걷게 되었으니까.. 아마도?”
뼈마디마디가 바스라지는 격한 고통이 나를 찾아왔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나라는 존재는 가루가 될 것만 같은. 그런 아픔이었다. 백현이는 잔뜩 찡그린 내가 걱정되었는지 아니면 마지막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는지 두 눈에 고인 눈물을 결국 뺨 위로 흘려냈다. 처음보는 백현이의 눈물에 나는 점점 옅어져가는 손을 들고 그 눈물을 닦아내려 손짓했다. 하지만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이 내 손은 백현이를 통과했다.
“잘 지내고, 아프지말고.”
“너 나 아프지 마..”
백현이를 차마 만지지는 못 한 채 조금 떨어져서 백현이의 눈가를 만져주었다. 그런 내 손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는 듯한 모양을 하고 백현이가 얘기했다.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지금은 때가 아니니까.”
“응응..”
“4년 뒤에 해 줄게. 그때 얘기해줄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눈을 감았다. 깜깜한 어둠속에서 백현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4년 뒤에 얘기해줄게. 사랑한다고.
*
교통사고, 여대생은 급히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혼수상태…
instzNEWS 2014.02.30
C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여대생 O양(21)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중략)오늘 새벽 1시 반 경, O양은 길을 건너던 도중 맞은 편에서 오던 1톤 트럭과 충돌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트럭 뒤를 따르던 자동차 5중 추돌 사고가 연이어 일어났으며…
…트럭기사 J씨는 음주 운전을 하던 것으로 밝혀졌고, 피해자 O양은 혼수상태로…
…(중략)…
“선생님! 교통사고 환자 깨어났습니다!”
거칠게 숨을 쉬며 눈을 떴다. 뼈마디마디가 바스라지는 고통은 아직까지도 여전했다. 내가 깨어나자 옆에서 기도하고 있던 엄마는 눈물을 터트렸고 내 쌍둥이오빠 오세훈은 다급하게 간호사를 불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싶었지만 누군가가 목구멍을 틀어막은 듯 목소리가 나오지않았다. 간호사의 이야기를 듣고 도착한 의사가 내 눈 앞에 불빛을 딸깍딸깍 비춰보며 내게 물었다. 정신이 들어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1톤 트럭에 부딪혀서 혼수상태에서 네 달만에 깨어났어요”
“2월 30일에 사고가 나서 지금은 6월 27일이구요.”
2월 30일에 사고가 났다고? 그렇다면 백현이는? 백현이는 괜찮은거야? 살짝 열려진 병실문 사이로 두 명의 여고생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야 어제 나온 엑소 신곡 들어봤어? 변백현 목소리 짱짱맨. 그들의 대화를 듣고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것과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다.
지금 운명이 바뀐거야? 아니라면 뭐지 대체? 백현이 대신 내가 사고를 당하고 그 꿈은 대체 뭐였던거야. 혼란스러운 내 머릿 속을 정리하 듯 TV 광고속에 나오는 변백현은 웃으며 노래하고 있었다.
1.
미치겠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상하로 끝내려고 했는데 너무 길어지네요..iㅅi
최대한 줄이고 또 줄이고 또또또 줄인건데 끝날기미가 안 보여.. 단편이아니라 중장편수준..
2.
백현이 글이 참 많죠.
그렇습니다 백현이는 제 뮤즈입니다. 하트.
3.
지금 또 정리를 해 드릴게요. 뒤죽박죽인 글에 당황하시는 분들이 많으실거라고 예상해요.. 포인트에 눈이 먼 된장녀! 라고 욕해주셔도 괜찮아요..
사실 백현이는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나'가 덕내를 폴폴 풍기고 있어서요..ㅠ_ㅠ가 아니라 휴대폰 기종도 그렇고 날짜도 그렇고. 지갑 속에 민증도 하나의 증거가 되겠죠.
그런데도 굳이 아는 척을 하지않은건 '나'에게 찔러보는 얘기를 할 때마다 죄책감에 아무말 못하는 '나'에게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 것도 있고, 굳이 '나'도 얘기를 하지않으니까요.
그리고 미래는 바꼈습니다. 도민준씨가 얘기했듯이 일어날 일들은 일어납니다 어떻게 해서든..
변백현→'나'에게로 교통사고 1톤트럭 뽷!
4.
백현이 시점과 그 후의 이야기는 下편에서 뵙겠습니다.하트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