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을 좋아하던 고등학교 2학년짜리 소녀는 이제 대학을 졸업한 어엿한 스물넷 아가씨가 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동안 내 첫사랑은 기억 저 편에 묻혀졌다. 동기들이나 선후배들과 술자리를 가지면 가끔 벌칙에 걸려 진부한 첫사랑 얘기를 할때. 그때말고는 기억이 나지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끝이 워낙 허무해서 그런지 아련함이나 먹먹함은 별로 없었다. 그냥 잘 살고 있을까? 결혼은 했을까? 하고 가끔 궁금할 뿐.
첫사랑 번외
~암호닉~ |
언어영역 뚀 눈두덩 승쨩 <비회원> |
“나 임신했어”
“세상에나”
“요즘 세상에 혼수로 애 배고 간다는 건 말로만 들었지, 내 친구일 일 줄이야”
“기지배 행복하게 살아”
대학교 졸업식이 끝난지 얼마되지않은 오늘, 고교 동창인 태연이가 결혼식을 올린다. 한껏 치장을 한 제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친구들과 함께 셀카를 찍다말고, 일이 있어 조금 늦게 온 나를 활짝 웃으며 반겨주더니 셀카를 찍던 스마트폰을 내려놓는다. 그럼 이제 다 모였지?하고는 꽤나 대단한 발표를 하는 것 마냥 어깨를 으시대더니 한다는 말이 임신했단다. 세상에나.
나는 가방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으려다말고 멍하게 굳어 김태연을 한 번 쳐다보고, 김태연의 평평한 배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했다. 세상에!
나만 놀란 것이 아니었는지 친구들 모두가 똑같이 벙찐 얼굴을 하고 김태연의 배를 쳐다보다가 이야기를 하나 둘씩 꺼냈다. 그래 수연아. 나도 그게 내 친구일 일 줄은 정말 생각치도 못 했어.. 깜짝 놀라 벙찐 것도 잠시 애들은 애기는 몇 주 되었고, 이름은 어떻게 지을거냐며 묻기 시작했다. 김태연은 부케를 만지작거리며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이제 3주정도 됐나?”
“신혼 전에 뜨거운 밤을 불사르셨구만”
박예은이 얄밉게 장난식으로 말하자 아오 저걸 때려말아.하며 김태연이 벌떡 일어났다. 그런 김태연의 모습에 식겁한 정수연과 내가 태교에 안 좋으니 참으라고 극구 말려서 겨우 자리에 다시 앉혔다. 박예은이 메롱하며 저를 놀리자 분한지 씩씩대는 김태연이다.
아직까지 내 눈에는 한 없이 어린아이같은 친구들인데 벌써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왠지 이제는 남일같지 않은 미래에 기대도 되고 두렵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식장 직원이 노크를 하고 들어와서는 곧 식이 시작하니 식장에서 대기해달라고 정중히 부탁한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싶어서 후다닥 가방을 챙겨들고 네네. 금방 나갈게요. 하고 대답을 했다.
“너 오늘 완전 예쁘니까 결혼식 망치지 마!”
“말 참 예쁘게한다 박예은?”
“그럼 우린 먼저 가 있을게”
“아 너랑은 셀카 못 찍었는데..”
박예은에게 주먹을 들며 위협하던 김태연이 내 말에 눈썹을 축 늘어트리며 주먹을 내렸다. 너랑 셀카 찍고 싶었단 말이야. 하며 말하길래 식 끝나고 함께 찍자고 김태연을 달래고 화이팅!하고는 친구들과 함께 신부대기실을 나왔다. 신부 대기실을 나오자마자 이때까지 본 김태연중에 제일 예쁘다며 부럽다고 방언 터지듯이 칭찬을 쏟아내는 친구들이다. 하여튼간에 앞에 있을때는 죽어도 칭찬 안 하더니.. 츤데레같은 것들. 으이그.
그 귀여운 모습에 차례대로 박예은과 정수연. 안소희의 엉덩이를 통통통 두들겨주고는 나 화장실갔다가 금방 따라들어갈테니 먼저 들어가라고 얘기를 하고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왔다. 뒤에서 짜증섞인 박예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엉덩이 때리지말라고!
또각또각.
toiiel. 화장실 팻말을 발견하고는 구두소리가 더 빠르게 식장 안을 울렸다. 로비에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구두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오늘이 내 결혼식도 아니고 김태연 결혼식인데 왜 내가 다 긴장이 되는건지 모르겠다. 어휴. 빨리 볼 일 보고 들어가야지 안 그러면 신부 입장 왜 못 봤냐고 찡찡댈 김태연의 얼굴이 눈 앞에 선했다. 그렇게 바쁘게 걸음을 움직여 화장실 앞에서 휴지로 손을 닦고 있는 남자를 지나쳤다. 지나치는 순간 공기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향수 냄새에 로비에 울리던 구두소리가 멈추었다.
예전에 한 번 맡아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뇌가 나를 놀리는 것만 같다. 기억이 날듯 말듯. 누군가가 수채화에 물을 가득 부어버린 것 마냥 뿌연 기억만이 머릿 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었다. 전 남자친구인가? 걔는 이런 향수 안 썼던 것 같은데. 아 그냥 얼굴보면 알겠지. 그런 마음으로 살짝 뒤를 돌아 여전히 손을 닦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조금은 아담한 키에. 밤톨같은 뒷통수. 뒷모습만 보면 내가 어떻게 알아! 뒤돌아라 제발. 제발! 속으로 간절하게 기도하며 뒷모습만 보이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려 고개를 기웃기웃거렸다. 잘 하면 보일 것도 같은데.. 아오 답답해.
“어?”
그때 남자가 휴지를 버리려는 듯 뒤를 돌았다. 아싸!
“...어..?”
....아싸...?
“..선생님?”
“너..”
휴지를 버리려고 뒤를 돈 남자는 김민석이었다. 그제서야 뿌연 머릿속이 맑아졌다. 가로등 밑. 취객. ‘밤 늦게 다니는데 미친놈들이 꼬이는게 당연하지!’ 나를 안고 도닥여주던 김민석. 그래. 그때 김민석에게 안겨 울때 맡았던 향수냄새였다. 김민석의 두 눈이 댕그랗게 커졌다. 너 결혼해?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내가 깜짝 놀라 손사레를 쳤다. 아니요! 저 아니예요! 그러자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쉰다.
“그럼 선생님 오늘 결혼하세요?”
“아니야, 오늘 아는 후배 결혼식이라서..”
“아. 그렇구나..”
긍정의 대답을 하고 나니 어색한 기운이 김민석과 내 사이를 멤돌았다. 그 어색함에 방금 전까지만해도 터질 것만 같았던 방광이 잠잠해졌다. 첫사랑과의 재회라니.. 민망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어디에다 초점을 맞춰야될지 몰라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대니 김민석이 멋쩍게 웃으며 많이 예뻐졌다며 얘기했다.
“고등학생때도 예쁘더니, 지금은 더 예쁘다.”
“빈말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여전히 멋있으세요.”
진심이었다.
김민석은 6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멋있고. 잘 생기고 완벽했다. 어느정도로 완벽했냐면 추억 속에 묻어두고 덤덤한줄로만 알았던 내 가슴이 다시 여고생때 마냥 설렜으니까. 그 말을 하자 김민석이 쑥쓰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다음에 시간나면 보자. 이건 내 번호야. 하고 김민석이 명함을 하나 내밀었다. cafe SYUMING 사장 김민석. 카페를 차렸구나. 문득 보충수업 때마다 커피를 마시던 김민석이 생각났다. 꿈을 이뤘구나.
그 명함을 주머니 속에 소중히 넣어두고 꾸벅 인사를 했다. 네 연락드릴게요. 그 말에 김민석이 웃으며 손을 흔든다. 나는 이만 가볼게.
그리고는 유유히 식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의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다가 징ㅡ하고 울리는 휴대폰을 꺼내어 확인했다.
[식 시작한데 빨리 와.]
안소희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싶어 화장실도 못 간채 후다닥 식장으로 뛰어들어갔다. 식장을 나설때와는 다른 떨림으로 가슴이 설레어왔다. 재빨리 식장 안으로 들어와서 아무 자리에나 앉았다. 벌써 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신부 입장은 하지않았다는 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고 소희에게 답장을 써내려갔다. 토독토독. 손톱과 휴대폰 액정이 맞닿아 토독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다행히 신랑 입장이라는 커다란 목소리에 묻혔다.
[소희야 나 뒤에 앉아있ㅇ·]
토독거리면서 타자를 치고 있는데 비어있는 내 옆자리로 누군가가와서 앉고는 후.하며 거친 한숨을 내뱉었다. 아마 나처럼 식에 늦었을까봐 허겁지겁 달려왔나보다. 그런 생각에 웃음이 나와서 피식 웃고는 전송이 완료 된 메세지 창을 끄고 휴대폰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너 여기 왜 있어?”
“선생님?”
고개를 들자 허탈한 표정을 지은 김민석이 앞에 있었다. 헐. 이것도 우연이라면 우연일까?
“저 신부측 하객이요..”
신부측 하객이라는 말에 김민석이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놓았던 반듯한 청첩장을 꺼내 신부의 이름을 확인하고 허탈한 표정으로 살짝 미소지었다. 동명이인인줄 알았더니.. 그런 말을 혼자 중얼거리더니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 제 자리에 청첩장을 집어넣었다. 선생님은 신랑측 하객이세요?
“응. 내 후배. 세훈이.”
“그럼 대체 몇 살차이인거예요.”
“다섯 살 차이밖에 안 날걸.”
송곳같이 뾰족한 턱을 가진 남자를 한 번 쳐다보고 김민석을 쳐다보니, 이마에 송글송글히 맺힌 땀을 닦아내며 말한다. 그 모습에 내가 뛰어오셨어요? 하고 물으니 식장을 잘 못 찾아서 6호실이 아닌 9호실로 갔다고 했다. 의외의 모습에 내가 풋하고 웃자 김민석이 웃지말라며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가렸다. 킁킁. 김민석 냄새난다. 좋은 냄새. 내가 킁킁대며 냄새를 맡자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젓던 김민석이 내 얼굴에서 손을 뗀 채 고개를 돌리고 식장 끝에서 걸어오기 시작하는 김태연을 쳐다보았다.
ㅡ신부 입장!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김태연이 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한걸음 한걸음씩 걷기 시작했다. 김태연의 얼굴을 보자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공존하는 것만 같았다. 웃는 얼굴인데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있는. 말없이 태연이의 입장을 지켜보았다. 왠지모르게 나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꾸역꾸역 안으로 삼켜내고 있는데 무언가 내 손을 톡톡.치고는 무언가를 내려놓는다.
닦아.
김민석이 제 손수건을 내 손에 쥐어주고는 다시 아무 일도 없는 듯 주례를 본다. 김민석을 쳐다보다가 그의 손수건을 집어들고 눈물을 콕콕 닦아내기 시작했다. 손수건에서도 난다. 김민석 냄새. 그런 생각을 하며 눈물을 닦아낸 손수건을 손에 쥐었다. 주례를 들으며 김태연이 울자 신랑이 안절부절하며 손으로 눈물을 닦아준다. 고등학생때는 싸울 줄 만 알았지 저렇게 쟤가 시집가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잘 살기를 바라며 나도 김태연마냥 끅끅 울었다. 왠지 내가 김태연의 전 남자친구라도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뭐가 그렇게 슬퍼.”
“흐..흐엉..”
“그때나 지금이나 울보네. 뚝. 그만 울어.”
계속 우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걱정이 되었는지. 김민석이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나를 달래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말이 내 귓가에 와서 박혔다. 그때 김민석이 떠나던 그 날 내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인연이라면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 추해졌을 얼굴로 훌쩍거리며 김민석을 쳐다보았다. 으이그. 하며 내 손에 쥐어진 손수건으로 내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준다. 울지마 뚝.
ㅡ반지 교환식이 있겠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진짜 인연이어서 다시 만난걸까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ㅡ마지막으로 신랑 신부 사랑의 키스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다 울었어?”
“우리는 인연이어서 다시 만난거예요?”
신랑신부가 키스했는지 하객들의 박수와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내 물음에 김민석이 무슨 말을 하려다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마주친 두 눈이 안정을 취한 듯 반달을 그리더니 환호하는 하객들의 함성소리를 뚫고 김민석이 나즈막히 대답했다.
“응.”
*
“부케 받으신다던 분 어디 계세요?”
“여기요!”
결혼식을 마무리 지으며 신랑신부. 그리고 신랑측 친구들과 신부측 친구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사진기사가 만족스럽게 찍힌 사진을 보더니 부케받는 사람을 찾길래 손을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우연인지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신부측 여자친구들이 전부 다 솔로라고 한다.. 그 것을 전날 밤에 안 김태연이 부랴부랴 내게 전화로 부탁을 해왔다. 제발 부케 좀 받아달라고. 미신 믿지말고 제발 한 번만 받아달라고 애원을 하길래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친구 소원을 못 들어줄게 뭐냐며 흔쾌히 수락을 했다. 내려온 자리에 가만히 서서 김태연을 쳐다보니 김태연이 고마워.하고 입모양으로 얘기하고는 빙그레 웃는다. 나도 그 웃음에 마주보고 웃었다. 그렇게 뒤도는 김태연을 보며 웃고있는데 신랑측에 서있는 김민석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지 단박에 눈이 마주친 김민석.
“하나~ 둘~ 셋!”
김민석과 마주친 눈에 깜짝 놀라고. 내 품 속으로 안기듯이 들어온 부케에 두 번 놀라고.
그리고 부케를 안은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 김민석에게 세 번 놀라고. 아마 나는 다시 사랑에 빠진 것 같다. 내 첫사랑 김민석에게.
1.
이렇게 첫사랑은 끝이 났습니다! 우왕(짝짝짝)
사실 첫사랑은 상하로 나눌 생각만 했는데 상중하번외까지 나올줄은 몰랐어요.. 그것도 줄이고 줄인건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럴거면 중장편으로 나갈걸ㅋㅋㅋㅋ
2.
상중하는 과거 이야기예요! 맨처음과 맨끝은 회상을 끝내고 현재로 돌아오지만요.
이번 번외는 민석이나 떠나고 다시 첫사랑 민석이와 '나'가 재회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이 지나면 하편에 맨 마지막이 되겠죠?
결쇼! 행쇼!
3.
세훈이랑 태연양이랑 엮으려던 건 아니었어요..(우럭)
둘 다 내가 너무 좋아해. 그런데 태연양은 원래 신부역이었고. 훈이는 후배+나이차이많이나는=막내 세훈이?
그렇습니다. 역중에서는 세훈이가 5살 연상으로 나오는데 사실 반대라고 하죠.
연상녀 태연양 연하남 오데훈
헐. 설레!!!!!!!!!!!!!!!!!!!!!!!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