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인 장동우, 01ㅡ두 보스와 애첩의 상관관계 上
Massive attack - Silent spring
[인피니트/조직물/야동엘] 간병인 장동우 01 |
밤이 지나고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점은 그 무엇보다도 어둡고 깜깜하다. 칠흑같은 어둠과 함께 동반되는 불길한 기운은 가만히 총을 쥐어 든 호원의 주위를 감쌌다. 그들의 본거지 뒷골목에 자리잡은 호원, 그리고 그런 호원의 옆에 쪼그리고 앉은 약 두어 명의 아랫놈들 모두 품 속에 날카로운 총구를 세우고 있었다. 다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지만 유독 호원만은 여유 남짓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깟 것 얼른 끝내 버리고 말지. 호원은 말없이 제 자켓 안주머니의 리볼버 하나를 꺼내 보였다. 총을 쥔 오른손으로 왼 소매를 걷자 드러나는 은색 시계. 정확시 열 두시 오십 구분을 가리키고 있다. 초침이 폭풍전야 속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호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오십 칠, 오십 팔, 오십 구….
탕ㅡ!
불길한 새벽을 울리는 한 발의 총성. 감짝 놀란 호원이 제 손에 들린 리볼버를 살폈다. 아뿔싸. 제 총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말은 즉슨! 그제서야 모든 상황을 알아차리자 호원의 옆 아랫놈 하나가 픽 하고 넘어가고 순식간에 건물 안에서 수 많은 인파들이 몰려 나오기 시작했다. 탕. 탕. 연달아 두 발의 총성이 더 울렸고 호원의 옆 놈들이 하나 둘 모두 총알을 품은 채 쓰러졌다. 마침 제 앞에 보이는 뒷골목 지름길이 호원의 눈에 담겼다. 저기로라도 도망쳐야겠다. 호원은 망설임 없이 일어나 놈들의 플래쉬를 피해 골목길 안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골목길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호원은 불빛이 반짝이는 출구 쪽으로 마구 달렸다. 그러나 그 골목길을 탈출하자마자,
"틀렸어. 이호원 넌 끝났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사방에서 제 자신을 겨누고 있는 수많은 총들에 호원은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제게 모두 향하고 있는 불빛들과 총구들, 그리고 그 가운데 선 L의 모습까지. 말 그대로 펠렛에게 포위되고 만 것이다. 씨발. 제 생각과는 정반대로 돌아가는 상황에 호원의 입에서 욕지기가 새 나왔다. 호원은 별 수 없이 제 손에 든 리볼버를 꺼내 들어 L에게 겨누었다. 순식간에 술렁이는 주변 아랫놈들과 행여 지들 보스가 맞을까봐 두려워 L을 감싸고 도는 졸개들까지. 아수라장이 된 분위기 속에서 L은 제 품 안의 피스톨 하나를 꺼내 들더니 역시나 호원이 그랬던 것처럼 호원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 누구의 머리가 먼저 뚫릴 지 알 수 없는 상황. 두 파의 보스 사이에서 벌여지는 한 쪽이 우세한 기싸움이였다. L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호원은 그런 L이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어 보였다. 찌질이 같은 새끼.
"지금 니가 웃을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알 바냐."
L은 손에 쥐었던 총에 힘을 더욱 쥐었다. 언제 방아쇠가 당겨질 지 모르는 긴박함 속에서 호원은 아까 전보다 더욱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상당히 기분 나쁠 법한 웃음이다.
"서로 터치 안 하기로 약속해 놓고, 직접 총까지 들고 찾아온 이유가 뭔데?" "워낙 심심해서 말이제."
통 알 수 없는 호원의 말에 L은 답답할 따름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호원, 그러니까 불렛의 쪽에서 자신들을 침범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였다. 딱히 시비를 건 것도 아니고, 비즈니스 쪽에서 마찰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째서 이 한 밤 중에 총을 들고 제 본가에 접근했는가 하며 또 왜 보스가 친히 나와서 이렇게 총을 겨누고 있냐, 이 말이다. L의 미간이 점차 좁아졌다. 일단은 그 연유부터 알아야겠다 싶어 입을 또다시 열었다.
"싸움은 애들 장난이 아니잖아." "니가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는,"
장난감이. 있다며?
뺏으러 왔어. 호원의 웃음이 유독 비릿했다. 장난감이라. 여전히 호원의 말을 종잡지 못한 L은 호원의 농담조를 그저 자신을 약올리기 위한 수법으로만 치부해 버리고 총을 고쳐 잡았다. 또한 호원 역시도. 총을 쥔 L의 손이 호원과는 대조되게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탕ㅡ!
둘의 방아쇠가 서서히 당겨지다가, 일시에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발의 총알이 상대를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서로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음에도 이상하게 총알은 단 한 발만 나아갔다. 즉 한 쪽은 쏘았으며 다른 한 쪽은 쏘지 못했다는 말.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 이윽고 호원의 어깨에 총알 하나가 박히며, 호원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다.
**
호원은 불편한 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 두 발을 책상 위에 올리고 있는 호원의 어깨에 붕대가 칭칭 감겨져 있었다. 서투른 제 솜씨로 동여맨 붕대이니만큼 제대로 치료가 됐을 리 없었다. 급한 대로 총알만 제거하고 피만 지혈시켰던 터라 여전히 어깨는 끊어질 듯이 아파 왔다. 얼마 만에 맞아보는 총인지. 그깟 펠렛 새끼한테 총을 맞았다는 사실이 기분이 꽤나 더러웠다. 하필이면 깜빡하고 총알 없는 빈 총을 챙겨가는 바람에 제 자신만 총을 맞는 병신같은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썅, 그깟 애송이들한테. 그래도 자신이 쓰러지자마자 바로 도착한 제 아랫놈들 덕에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치자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호원은 제 앞에 놓여 있는 약 상자를 만지작거렸다. 죄다 유통기한이 2008년, 2009년인 것이 영 쓸모가 없는 것들이다. 조만간 구급 용품 하나 새로 장만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는 찰나 사무실 문이 똑똑 소리와 함께 열렸다.
"어깨는 괜찮으십니까." "아니,"
호원은 아랫놈의 말을 단 칼에 잘랐다. 사실이였다. 제 숨통을 쥐여올 듯 조여 오는 상처나, 조금씩 붕대 위로 번져 오는 붉은 피나. 호원은 표정을 조금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여전히 손짓만은 태연하게, 책상의 유리 위를 손톱으로 탁 탁 두드리고 있었다. 빈 사무실에 호원의 손톱 소리만이 허공을 울렸다. 탁, 탁, 규칙적으로.
"의사를 부르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상처가 깊습니다"
호원은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보였다. 호원의 시선이 이윽고 비서의 눈동자와 맞닿았다. 절대 정상적인 눈빛은 아니다. 꼭 한 마리의 미친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동우를 데려와."
말을 마친 호원이 웃었다. 피는 점점 번지고 있었지만 호원의 눈빛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
보스ㅡ.
문이 열렸다. 아까 전과 비슷한 상황. 그러나 정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주인공은 하나가 아닌 둘이였다. 비서는 입에 재갈을 물리고 눈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는 그를 호원의 앞에 짐 내려놓듯 내팽겨쳤다. 으윽- 재갈 사이로 녀석이 얕은 신음을 내 뱉자 호원의 눈썹이 살짝 흔들렸다.
"소중히 다뤄." "ㅈ,죄송합니다."
호원은 당황한 비서에게 문 쪽으로 향하는 턱짓을 해 보였다. 호원의 메시지를 알아챈 비서가 재빨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여전히 눈도, 입도 모두 가려진 채 신음만을 내 뱉고 있는 누군가와 호원. 오롯 이 둘만이 남은 사무실은 쥐새끼 한 마리 없이 조용했다.
호원은 그가 있는 쪽으로 성큼 성큼 다가섰다. 호원의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녀석은 깜짝 놀라 제 몸을 떨면서 더욱 웅크렸다. 호원이 녀석의 앞에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곤 녀석의 머리 뒤로 손을 갖다대곤, 꽉 조여진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스르륵, 검은 천이 순식간에 떨어져 내렸다. 녀석과 호원의 눈이 맞닿았고, 둘은 순간적으로 서로를 보고 탄식을 내뱉었다.
아아, 장동우.
이렇게나 비참한 모습으로, 눈물과 땀이 가득한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 형체가 정녕 장동우인 것일까. 자신만큼이나 깜짝 놀란 동우가 발작하듯 부들부들 떨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여전히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고 초점은 뚜렷하지 않았다.
"흐아…!"
호원은 동우의 턱을 쥐고 강압적으로 들어올렸다. 푹 숙여져 있던 동우의 턱이 순식간에 들리면서, 동우는 재갈 사이로 탄식 섞인 신음을 내 뱉었다. 동우와 호원의 눈동자가 맞닿았다. 호원을 바라보는 동우의 눈동자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그에 반해 호원의 눈동자는 지나칠 정도로 잠잠했다.
"…10년 만이네."
호원은 여전히 동우의 턱을 잡고 놓지 않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호원이 동우의 고운 입술에 물린 재갈을 순식간에 빼냈다. 흐아, 하, 하아…. 그제서야 탁 트이는 호흡에 동우가 달뜬 숨을 내뱉었다. 호원은 그런 동우를 바라보다, 문득 제 어깨가 찌릿함을 느껴 미간을 좁혔다.
"다쳤다."
너 때문에. 호원의 말에 동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호원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붕대에 싸인 어깨가 피로 잔뜩 물들어 있었다. 아아…, 동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호원의 상처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까 전 자신이 펠렛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을 때 쯤 자신의 아랫놈들이 동우의 사무실로 습격했고, 곧 납치해 갔던 것이다. 헌데 그 상황에서 문제가 생겨 호원은 피치 못할 상처를 입고 말았으니 따지고 보면 호원의 상처는 동우로부터 비롯되었음이 맞았다. 물론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으니 제 몸뚱아리 하나 정도는 뚫려도 괜찮다, 생각하는 호원이였다.
L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장난감. 드디어 그 장난감을 쥐었다. 호원은 동우를 향해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이제부터,"
니가 내 간병인이야. 호원은 미친개 같은 눈빛으로 동우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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