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DAY
종대, 찬열이.
그리고 여자주인공의 고등학교 3학년 여름.
그 일상속으로 떠나는 잠시 동안의 여행
오랜만에 짤 폭탄 주의★
토끼굴 - 풋사과 향기
"야! 같이 가!"
"싫어!"
"왜!"
"너 어제 네이트온 먼저 껐잖아!"
뒤에서 보고있자니 병신들이 따로 없다.
김종대와 박찬열. 우리 학교에서 몇 안되는, 아니 거의 둘 뿐이라고 뫄도 무방한 내 친구들이다.
어쩌다가 저런것들이랑 친해져서 내가 이렇게..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일까.
등교를 같이 하냐고? 전혀.
등교는 항상 걸어서 했다. 아침에 누구를 기다리고, 연락이 되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상대도 없었다.
혼자 가는 편이 몸도 마음도 편해서 그렇게 했다. 김종대와 박찬열도 그런 것 같아 따로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둘도 나에게 따로 제안을 하지 않았는데, 그랬는데.
둘이 어느 순간부터 꼬치꼬치 나의 등교과정을 묻기 시작하더니 등굣길에 자주 출몰하기 시작했다.
둘은 나와 우연히 만난 척 반갑게 인사해왔다. 나는 둘의 어색한 연기를 그냥 넘겨줬다.
그게 우리의 암묵적인 규칙이라도 되는 듯.
메신저를 먼저 종료한 것이 얼마나 서러운 일이라고.
어색한 연기를 하는 것도 잊고 둘은 나를 지나쳐 한참을 달렸다.
쪼잔하게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냐는 박찬열이 쫓는 입장, 그리고 사나이의 의리를 져버렸다며 울부짖는 김종대가 쫓기는 입장을 맡았다.
둘은 교문 앞에서 넘어진다며 걱정하는 예쁜 윤리쌤이 계시지 않았다면 아마 교실까지 그렇게 달렸을거다.
내가 둘의 달리기를 보고싶어서 빨리 걸었다던가 하는건 절대 아니다.
그냥 내 걸음이 조금 빠른 편이다.
오늘만.
학부모 문자수신 동의서 회장한테 내. 조회가 시작하기 무섭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어제 저녁에 종대에게 동의서를 챙기라는 언질을 주지 않았음을 떠올린다.
얘는 내가 말 안해주면 까먹던데, 그래도. 혹시, 설마.
"아 쌤! 아들래미 귀 떨어져요 귀!"
"너 내가 또 안가져오면 뭐 한다고 했어!"
"뽀뽀?"
"따라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열린 창문을 통해 김종대의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오늘도 종대의 오른쪽 귀는 발갛게 물들어 있겠구나.
-
"얘 지금 자는거야?"
"그런거 같은데?"
"대박."
깜빡 잠이 들었다.
사실 늦게 잠자리에 드는 편도 아니고, 학교에서 졸음이 몰아치는 타입은 더더욱 아닌지라 수업시간에 자는 것은 손에 꼽혔다.
선생님이 아예 '잠이나 자라.'하고 이야기 하시지 않으면 오롯이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이었다.
김종대를 만나고 박찬열과 친해지며 쓸데없이 체력을 소비할 일들이 늘었다.
그래도 저녁에 조금 더 일찍 잠에 들면 학교 생활에는 지장이 없었다.
오늘따라 창문을 타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기도 했고 5교시 지리시간이 마침 제일 재미없는 파트인-내가 그냥 싫어하는-광물 부분이기도 했고.
오늘 점심 급식이 너무 맛있어 평소보다 더 많이 먹기도 했다.
물론 이런 좋은 놀림거리를 놓칠 일 없는 종대가 나를 놀려대기도 했고. 토실이라고.
마지막으로 들었던게 우리나라의 의존도 뭐시기였던 것 같은데.
나는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이미 쉬는시간이 되어있다.
의자 등받이에 등을 깊숙하게 기대고 고개를 숙인채로 잠들었었나, 뒷목이 뻐근하게 아려온다.
뒷목을 살살 주무르며 앞, 뒤, 그리고 옆을 살펴보니 종대와 찬열이가 보인다.
내 앞의 의자에 뒤돌아 앉아있는 종대와 책상에 기대어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찬열이.
근데 얘네는 진짜 쉬는시간마다 출근도장 열심히 찍는 것 같다. 이걸 성실하다고 해야하나.
"너 어디 아파? 무슨 일 있어?"
"그러니까. 어디 아픈거야?"
내가 잠들었다는 사실이 조금 대단한 일이기는 한가보다.
이마에 손을 대어보고, 부채질도 해주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잠긴 목때문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니 호들갑을 떨며 종대가 어디론가 향한다.
처음에 창가자리가 배정되었을 때는 더워서 싫다고 생각했는데.
여름 날씨가 조금씩 풀려가니까 이것도 나름대로 되게 좋은 것 같다. 바람도 이렇게 맞을 수 있고.
괜찮다는 내게 기어코 물을 떠다주고-자기가 떠왔다고 했지만 지혜에게 사정해 받아낸 것을 다 봤음-서야 둘은 안심했다.
시원한 물을 목구멍으로 흘려보내니 목소리도 원상태를 되찾는다.
피곤했나봐. 나의 대답에도 불구, 둘은 계속 질문들을 던져댄다. 내가 뭐 죽을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그나저나, 너는 왜 왔어? 나는 우리 반도 아닌 종대에게 의미 없는 질문을 던진다.
"지금이 5교시 쉬는시간이라서?"
"응. 근데 그게 왜."
"그러니까 왔지, 근데 너 여기 침 흘렀다."
말도 안 돼. 내가 침까지 흘리면서 잤다고?
급하게 손으로 입가를 문질러보는데 눌린 침자국 특유의 까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고로 김종대는 나한테 구라를 깠다. 뒤질라고 진짜.
에에-, 특유의 찡찡거리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로 도망가버린 김종대가 나를 잔뜩 약올린다.
계주를 할 정도로 달리기가 빠른 나지만, 이렇게 피곤한 날에 쓸데없는 체력소모를 하고싶지는 않다.
어짜피 심심해지면 다시 돌아와서 말을 걸 애다. 분명해.
"너 문학 숙제는 했어?"
태평해 보이는 박찬열에게 물었다. 6교시가 문학인데, 꽤 배점이 큰 수행평가를 숙제로 내주셨다.
김종대야 노래로 먹고산다고 하니까 성적이나 수행평가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박찬열은 아니었다.
갑자기 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해서 우리를 몇주정도 노심초사 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안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고 하잖아. 진짜 그럴까봐.
"당연히 했지. 그거 점수가 얼만데."
근데 생각보다 박찬열은 진심으로 열심히 했다.
해오지 않던 숙제도 꼬박꼬박 다 해오고, 가방속에 들어있는 문제집도 얼핏 보니 날이 갈수록 헐어간다.
주기적으로 문제집의 표지도 바뀌는 것을 보아 풀어가는 양도 상당한 것 같다.
얘가 진짜 나보다 좋은 대학에 가려나?
"야아.. 나 심심해…."
거 봐, 결국 왔잖아.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던 종대가 갑자기 내 책상 위에 두 손을 쾅 소리나게 얹는다.
왜 또, 나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등받이에 다시 몸을 기댔다. 아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하지 진짜.
시계를 힐긋 보니 쉬는 시간이 4분 정도 남았다. 물을 마셔서 어느 정도는 정신이 들었나 했는데 아니였어.
여전히 졸리다. 그냥 식곤증인가? 너무 생소해서 기분이 이상하다. 몽롱하다고 해야하나.
"너 왜 말을 안 해."
"기다려봐."
내 말이 그 말. 왜 말을 안 하느냔 말이다.
기세 등등하게 책상도 쳐놓고 왜 말이 없을까.
김종대를 한 번, 박찬열을 한 번, 번갈아 쳐다보던 눈동자 위로 눈꺼풀이 덮힌다.
이걸 걷어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무거울가.
바람이 조금 세졌다.
조금 해가 비틀었다고 바람도 신났나, 그리고 내 눈꺼풀도 신이 많이 났다.
결국 나는 항복한다.
"창문 닫으면 애들이 싫어하겠지?"
"바람 많이 분다고 다 좋아하는데. 닫으면 눈초리 쩔듯."
"근데 얘 감기 걸리면 어떡해. 세상 모르고 자네."
"나 얘 이렇게 자는거 처음 봐."
"그치. 근데 귀엽다. 막 입술 움직여. 헤-. 이렇게 봐바."
"너 지금 되게 변태같아."
"변태 할래! 너네반 다음 시간 뭐야?"
"문학. 야 박지훈! 너 사물함에 담요 있지!"
"문학쌤 무서운데. 깨우기는 싫다. 무슨 꿈 꾸는건가?"
"꿈 안꿀수도. 그쪽에서 이거 좀 잡아봐. 덮어주게."
"오, 이거 짱 크다. 얼마주고 샀대?"
"쟤랑 별로 안 친해. 다리도 덮어줘."
"얘는 치마도 안 줄였다면서 왜 이렇게 짧아. 키가 커서 그런가."
"치마 새로 사줄까?"
"그래! 이왕 사줄거면 진짜진짜 긴걸로 사주자. 발목까지 덮는걸로!"
"그런거 어디서 팔지?"
- 야! 오늘 문학 출장가서 체육쌤이 보강한대! 자습!
"들었어?"
"당근."
"목베개 있는 애는 없어?"
"우리반에는 없던 것 같은데."
"나 있어! 쉬는시간 몇분이나 남았어?"
"2분. 달려갔다 와."
"그동안 너가 좀 받쳐줘. 친구야, 이 의자좀 빌려도 돼? 고마워. 여기 앉아 있어."
"갔다오기나 해. 야 쫌만 앉을게?"
"어어. 아 근데 나 다음교시 뭐더라?"
"그거야 너가 알지."
"에엑. 경제야. 캐망했어. 나 숙제 안했는데. 크."
"웃음이 나오나보다 너는."
"나 엉덩이로 이름쓰기 짱 잘해."
"애 깨니까 시끄럽게 굴지말고 갔다 오기나 해."
"그래. 쉿. 나 다녀올게!"
-
"야자 짼다며."
"그러려고 했지."
"왜 안쨌어."
"너도 야자 안한다며…."
하루종일 들떠서 빙수 노래를 불렀드랬다.
학교 근처에 카페가 하나 있는데 지난주부터 신메뉴라며 녹차빙수를 게시했다.
야자가 끝나고 나서 가면 빙수는 커녕, 카페 문도 못 열테다.
320일 강제 야자인 우리학교에서는 꿈도 못 꿀 빙수란 소리다.
김종대는 특별 야자면제 대상이다 고3이 되면서 그 자격을 박탈당했다.
실음과라도 종대가 가고싶어하는 대학은 어느정도 성적을 본다는 말에 종대의 담임선생님이 결정하신 일이다.
대신 주 3회만 하는 걸로.
내일 가도 될 것을 꼭 오늘 먹어야겠다고. 야자를 째겠다고 했었다.
박찬열은
"절대 안 돼."
극구 사양했다.
늦게 공부를 시작해 하루가 급한 찬열이 때문에 나만 죽어나갔다.
생각보다 여유롭게 1등급을 유지하고 있는 나를 보며 김종대는 타겟을 바꾼 것이다.
"녹차 아이스크림도 올려준다던데. 우유도 주고."
"그렇구나."
"아몬드도 갈아서 뿌려준대."
"쉬는시간 끝나겠다. 반으로 가."
"얼음도 우유 얼음이래…."
그런데 나는 못 먹지. 말꼬리를 길게 늘이면서 책상에 볼을 착 붙인다.
너네 반으로 가서 남은 시간동안 얌전히 야자나 해. 말해야 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어느정도 넘어왔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책상 위에 얌전히 올려둔 내 손 위로 제 손가락을 굴린다.
검지 끝에서 꼼지락대던 김종대의 손가락이 마디를 타고 오르다가 훅, 하고 깍지를 껴왔다.
"에라 모르겠다."
"나 가방! 야!"
"찬열이가 들고 가겠지. 찬여라. 얘는 화장실 간거다?"
마침 정말 타이밍이 좋았다. 교문 앞에는 어떤 선생님도 계시지 않았고 나는 핸드폰만 들고,
김종대는 핸드폰과 지갑을 들고 결국 카페 앞에 당도했다.
"맛 없어..?"
맛있다. 너무너무 맛있었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빙수를 입 한가득 넣고서 내 눈치를 계속 보던 종대가 미안하다면서 숫가락을 테이블에 톡톡 두드린다.
걱정되는 것보다는, 아. 모르겠다.
"담에 한번 더 사."
"그럼 야자 한번 더 째?"
"주말에. 진짜 생각하는거 하고는."
헤헤. 실 없는 웃음을 흘리며 종대가 열심히 숟가락질을 한다. 아 근데 이거 진짜 맛있다.
야자 째고 올만 하구나. 박찬열도 이거 먹어봐야 하는데,
"존나 김종대 니가 하나 더 사."
"박찬열?"
"와! 영웅이다!"
나와 김종대, 그리고 자신의 가방까지 모두 꾸려서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도망쳐왔나보다.
땀을 뻘뻘 흘리던 박찬열이 바닥에 무거운 책가방들을 내려놓으며 김종대에게 소리를 지른다.
공부도 안 하면서 책가방은 왜 이렇게 무거워! 그리고 김종대가 가방에서 의기양양하게 꺼낸 것은 스피커였다.
"움치키 붐치키. 음악의 완성은 사운드지."
"이걸 왜 들고 다녀!"
"넌 소울을 몰라!"
"개 무겁잖아! 니가 이래서 키가 안 크는,"
"둘다 음식 앞에서 침 날릴래?"
빙수 앞에서 뭐하는 짓거리야 진짜.
인심 후하신 카페 아주머니가 학생들이 재미있게 논다며 러스크를 주셨다.
종대가 귀여운 애교를 부리며 화답하자 아주머니는 얘가 끼를 부린다며 종대의 등짝을 때리셨다.
종대는 그래도 공짜 러스크를 먹어서 좋다고 헤헤 웃는다. 진짜 이 조합은 어디서 어떻게.
"야 근데 우리 내일 혼나는거 아니야?"
"야, 이게 뭐야. 진짜."
"왜, 쩔지 않아?"
"반성문에 니 스피커 스펙은 왜 써."
"그거 비싼거."
"돌겠네."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둘을 친구로 두는 것도 다시 생각해야겠다.
그나저나, 오늘 급식은 뭐가 나오더라.
+
원래 예정에 없던 번외인데,
댓글에서 한 독자님이 간절히 신청해주셨고..
자기 전에.. 곰곰히 생각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렇게 완성이 되어있네요...?
셋의 학창시절을 보고싶다고 해주셔서 러브라인 하나도 없는 정말 그대로 학창시절 일상이에여!
그래서 부제도 에블이데이 에블바레 에브레 에브라?
오늘 진짜 원래 올 수 있는 시간보다 빨리 와서 하루종일 틈틈히 메모장에 적은거 복사하고 ㅋㅋㅋ
짤 첨부하니까 시간이 뚝딱!
이 번외의 포인트는
[지들이 하고 싶은 대화를 하면서도 담요며 베개며 구해오는 두 남정네]임니다.
아 훈훈해.. 헤헤.. 노래 짱 좋뎌
다음편은 본편으로 만나여! 완결난거 아니에여 ㅋㅋㅋ 당황하진 말아요..♡
(+맞다 그리고 브금 목록이랑.. 브금 추천 글 올리면 볼거에요?
요새 좋은 노래가 너무 많아서.. 추천하고 싶다..나만 듣기에 너무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