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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징어] 어서오세훈! 종대라떼 판다카이 39
BGM :: 이한철, 박새별 - 바야흐로 사랑의 계절
상황이 정리되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서운함과 더불어 배신감에 휩싸인 경수가 한참을 내 팔을 붙잡고 울음에 가까운 투정을 계속했고
사이에 껴서 어쩔 줄 몰라하던 경수의 선배는 박찬열이 도맡아 얕은 농담을 계속했다.
오세훈만 잔뜩 열이 받아 분노를 참기 위해 얼음만 오독오독 씹어댔고.
나머지는 이 상황을 즐기는 듯 보였다. 특히 루한이.
"누나한테 이 형은 솔직히 과분하지."
"오세훈한테 우리 누나도 과분하지!"
"야 내가 뭐가 어때서!"
차례로 루한, 도경수, 오세훈이고
"오세훈 말 다 했냐."
이거는 나.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은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저물어갔다.
맛있는 음식은 술과 함께! 라는 변백현의 말에 따라 우리는 거실에 다같이 앉아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였다.
민호는-알고보니 나보다 어렸다. 사실 나보다 어리지 않은 애를 찾는게 힘든 일이긴 하지만-정말로 성격이 좋았다.
짓궃은 농담도 유도리 있게 받아치며 자타칭 분위기 메이커가 됐다.
"민호야 나 거기 컵좀."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이름을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다.
물론,
"나 여기 있는데..왜? 나.. 나도 컵 줄 수 있는데.. 왜?"
그걸 달가워하지 않는 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만약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라 약 2년 전의, 그러니까 세훈이가 크리스마스 파티에 서프라이즈로 오기 이전의 나였다면.
세훈이의 기분 아닌 기분을 맞춰주고자 민호를 모르는 척도 하고 그랬을 것이다.
그때는 긴가민가한 마음과 더불어 오랜 기간동안 날 기다려준 세훈이를 향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그래서 동성애자인 멜빈같은 경우에도 잠깐 놀리고 그 오해를 풀어주지 않았던가.
물론 내가 오해를 풀기도 전에 세훈이가 나서서 그 오해를 풀게 만들어주기는 했었다만, 아무튼.
지금의 나는, 그러니까 세훈이를 향한 마음에 대해 확신이 서 있는 상태의 나는
이 상황이 즐겁고 오해를 풀어주고 싶은 생각이 단 1%도 없다.
"민호가 컵이랑 더 가까우니까 그렇지, 왜 자꾸 그래. 분위기 어색해지게."
"아아..맞다. 나랑 민호형이랑 비교해보면. 응. 미안해여. 형."
"아, 아냐. 괜찮아."
다들 민호를 반기는 분위기에서 자기 혼자 날을 세우고 있자니 지도 그건 좀 아닌것 같다 싶었는지 티를 내지는 못한다.
그냥 우리는 이 상황을 즐기면 된다. 저녀석의 얼빠진 표정을 구경하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병이 하나씩 비워져가고, 나를 포함한 모두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져가기 시작할 때 도경수가 게임을 제안했다.
다 큰 어른들이 모여서 무슨 게임이냐고 타박하는 박찬열에게 경수는 일침을 가했다.
여기서 다 큰 어른은 누나랑 형밖에 없다고. 그래. 우리가 너네에 비해 꽤..그래. 나이가 많긴 하지.
그래도 서럽게 그러면 어떡하냐. 박찬열은 꽤나 충격을 받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늘어졌다.
나야 뭐 항상 숙지하고 있던 사실이라 그다지 충격이진 않았지만, 경수가 괘씸해 보이기는 했다. 나쁜자식.
"근데 누나 진짜 그 나이로 안보여요."
"어?"
이렇게 잘생긴 남자에게 '누나' 소리를 들으면서 은연중에 '어려보인다'는 말까지 함께한다면.
듣는 누나 마음이 어떨까. 좋지 당근.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어려보인다는 말을 듣기는 커녕, 약간 노안에 가까운 편이었다.
근데 노안은 더 늙어지지 않고. 커갈수록 동안이 된다고 하지 않나. 내가 그런 타입이었다.
20대 중반을 넘기며 내 또래 여자아이들은 늙어가기 시작했고, 늙은 얼굴을 유지한 나는 평균 얼굴-그리고 동안 페이스 루트를 탔다.
그래도 매우 편협한 인간관계 속에서 동안 소리를 듣기의 난이도는 별따기와 맞먹었다.
누가 나에게 칭찬을 해줄까.
허구한 날 예쁘다고하는 오세훈은 좀 제외다. 얘는 뭔들 예쁘다고 해주니까.
그렇다고 예쁘다고 하는 말에 감흥이 없냐고? 전혀.
표정관리에 능해진 것 뿐이지 그 말이 무감각해질 수는 절대 없다.
모든 여자의 심리가 다 그렇듯.
이전같았으면 김종대가 충분히 예쁘다, 어려보인다며 칭찬을 해줬겠지만
혼자서 단독콘서트를 열어도 2초만에 매진될 정도로 성장해버린 슈퍼스타와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핸드폰도 매번 바뀌어서 내가 걔 번호를 저장하는 것보다
그냥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다 받는것이 개랑 연락하기에 편하단걸 깨달았다.
TV로 잘 살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면 됐다 뭐.
박찬열? 6년쯤 전에 시도 때도 없이 청혼했을 때를 제외하면 그 비슷한 말을 꺼내지도 않았던 사람이다.
그리고 얘한테 들으면 뭔가 안될 것 같다. 그냥.
루한은 욕이라도 안하면 다행이고, 백현이는 나를 놀리는 맛에 사니까.
그러므로 내게 이런 소릴 해줄 사람이 그동안 없었다는 말씀.
그런데 처음보는. 그것도 굉장히 잘생긴. 목소리도 굉장히 좋은 사람이. 그것도 연하가.
"누나 진짜 예쁘잖아요."
이렇게 어택을 하면 내가 입꼬리가 올라가 안 올라가.
으에엑. 백현이의 토하는 소리와 함께 경수의 너털웃음이 이어진다.
경수는 모 TV프로그램의 MC 패널 한 분의 트레이드 마크인 '핥핥'웃음을 지으며 민호를 내쪽으로 밀었다.
그와 동시에 세훈이의 표정은 점점 무아지경에 다가가고 있다. 저 표정 되게 귀엽네.
빈말은 즐이다. 나는 여느때와 다름 없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면역이 없는 대상이라 입꼬리는 차마 숨기지 못했지만 내딴엔 노력을 했는데.
"입꼬리…."
내 사소한 변화도 잽싸게 캐치하는 세훈이는 그 점을 빠르게 간파하고
자기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는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술이 꽤 많이 들어간 상태라 약간 몽롱한 눈빛,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상한 손짓들.
혼자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팔다리를 쓰다듬더니, 갑자기 아. 하고는 깜짝 놀라고.
안돼!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며 머리를 툭툭 쳐대기도 하고.
보는 사람은 참 재미가 좋다.
"근데 그 쪽."
뭐 임마. 나는 왜 얘만 보면 험한 소리가 절로 나올까.
우리도 둘 다 다 컸는데 아직 여전한 입버릇을 가진거 보면 둘 다 좋은 부모가 되지는 못할 것 같다.
"살 쪘네요."
미친, 이러니까 험한 소리가 나오지.
대화의 주제는 바로 나의 얼굴에서 내 살로 이어졌다.
요새 들어서 뱃살이 좀 찌기는 했다.
호텔일을 할 때에 비해 확실히 활동량이 적은 것도 있고 세훈이가 맛있는걸 사다가 대령해주니 안 찌고 배겨.
내 입맛은 어떻게 알고 내가 좋아할만한 것들만 사온다.
S대 근처 골목에 맛집이 많은 것도 있고. 맛집엔 당연히 디저트 카페가 있고.
나는 빵을 좋아하고, 물론 케이크도. 당연히 살이 찔 수밖에 없다.
"보기 좋은데요 뭘. 원래 엄청 말랐었나 봐요."
"형 자꾸 왜 누나 편들어요? 완전 수상해."
"아니, 그냥 진심을 말하는건데.."
"형 진짜 누나한테 반했어요?"
당사자들은 별 생각이 없는데 주변에서 더 난리다.
세훈이의 표정을 살피는데 얘는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술을 마신건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다.
쟤 저러다가 또 사고치는거 아닌지 몰라.
"누나 이거 먹어봐요. 이거 진짜 맛있어요."
근데 얘는 진짜 사람 기분좋게 왜 이렇게 잘생긴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오고 난리래.
"안 먹어요?"
내가 타르트를 거절할리가 있나. 민호 손에 들린 타르트를 집어 들려고 하니, 고개를 살랑살랑 좌우로 젓는다.
이걸 입으로 받아먹으라고? 진심? 내가? 두세번을 되물어도 답은 완고하다.
결국 포기한 나는 입을 벌려 타르트를 베어물려다가.
"아, 잠깐만."
우윽.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위가 꿀렁이는게 느껴짐과 동시에 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애들의 말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구역질을 계속했지만. 나오라는 토는 나오지 않았다.
포기하고 변기 앞에 쪼그려 앉아있는데 뭔가 이상하다.
이거, 설마.
아 미친 설마.
그니까 그 날 내가 안된다고 몇번을.
아 미친.
-
"할 말 있으면 해 봐."
"감개무량합니다."
"죽고싶어 진짜?"
"사랑합니다?"
"아, 후. 진짜."
"죽을만큼 사랑해요."
화장실 문 앞에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남정네들에게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나 임신한 것 같아. 엄청나게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나마저도 입을 열지 않았으니.
그냥 헛구역질일 수도 있다고, 체한것 아니냐고 묻던 박찬열은
1차로 아닐거라는 회유, 2차로 내 생리주기에 대한 간단한 물음. 그리고 3차로 현실부정을 한 뒤.
"오세훈 개같은 새끼야!"
멍하니 눈을 감고 있는 오세훈을 발로 찼다.
모두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처음 보는 커플의 속도위반을 보게된. 중매장이 도경수의 강제중매 피해자인 민호는 당황하지 않고 내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누나의 임신을 옆에서 지켜봤던 경험이 있다고. 몇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생리를 안한지가 너무 오래 됐다. 달큰한 일상에 빠져서 잊고살고 있었는데.
민석이는 계속 차가운 바닥에 앉아있던 나를 일으켜 침대로 옮겨줬다.
이불까지 덮어주고 나서도 입을 떼지 않던 민석이는, 조용히 오세훈을 패고있는 박찬열의 옆에 서서 암묵적으로 부추겼다.
백현이는 나보다 더 충격을 받은 듯 바닥에 주저앉아 맞고있는 세훈이만 쳐다보고 있었고.
루한은 박찬열 무리에 합세했다.
"미친놈아. 나가 뒤져."
ㅇㅇ. 좀 그래야 할듯.
어느정도 맞고 나서야 제정신이 든 세훈이가 얘기를 듣고 침대가 있는 방으로 달려오려 했으나,
금방 제지당하고 소파에 묶였다. 문은 민석이가 잠궈버렸고.
다들,
잘한다.
잘한다. 더 해라.
한참이고 내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던 민석이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결혼식이 예상보다 빨라지겠다. 축하한다 등의 말을 생각했었는데 민석이는.
"많이 컸다."
고 했다.
내가? 나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입을 열지 못하고 그저 멀뚱멀뚱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다음 말이 나오기 직전, "방 안에서 둘이 뭐해! 안 돼! 이제 유부녀야 누나!"
시끄럽게 구는 오세훈때문에 결국 문을 열어줘야 했지만.
날이 밝는대로 응급실로 향했다.
정신 없는 와중, 다들 오세훈을 붙잡고 날밤을 샜다. 나야 푹 편하게 잘 수 있었지만.
만약 진짜 임신이라고 해도. 어제 먹은 술이 너무 걱정되어 빨리 병원에 가고싶은 맘이 굴뚝같았다.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를 즐기는 크리스마스 당일.
"여기 아기집 보이시죠. 5주차인데 꽤 크네요. 그동안 모르셨어요?"
"와.."
"여기, 이 동그란게 난황인데 아이의 영양분 섭취를 도와줘요.
아직 태반을 통해서 영양분이 전달되는게 아니라서 아까 말씀하셨던 주류섭취는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아요."
"아. 감사합니다."
피유.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임신이라는 충격보다 아이가 괜찮다는 것이 먼저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지난 시간 걱정했던 것들을 모조리 지워버림과 동시에 깨달았다.
내가, 엄마가 된다.
죄인은 웃을 자격도 없다고.
모두가 세훈이의 입꼬리를 주시했다.
물론 계획에 없던 아이이긴 해도 축복을 받아야 할 일이라며 아낌없는 축복을 주었다.
대신에 축복 한 번, 세훈이 욕 한 번. 이렇게 균형을 맞춰야 했지만.
검사 결과를 받고, 생전 처음으로 받아본 초음파 사진을 손에 꼭 쥐고 여러 장정들의 호위들을 받고 나오는데
나도 모를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행복? 아니, 그 이상의 벅찬 감정이 내 안에서 터져나오는 느낌이었다.
아침에도 몇번을 소리를 질렀었다. 어떻게 할거냐고.
물론 세훈이의 대답은 놀라운 일관성을 보였다.
결혼해서 예쁘게 키워요. 그래. 예쁘게 키우겠지.
내게도 벅찬 사랑을 주는 세훈인데, 아이에게 벅찬 사랑을 주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 나는 세훈이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이들과 함께 늙어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게 뭐가 그렇게 울 일인지. 나는 틈을 비집고 새어나오는 소리를 애써 꾹 참으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
어제만큼 당황한 장정들은 다시 세훈이의 탓을 묻기 시작했다.
그냥 지금은 세훈이가 좀 많이 맞았으면 좋겠다. 그냥.
"누나. 미안해요."
네가 미안할게 뭐가 있을까.
알면서도 막지 않은 내 잘못도 있다.
아니, 사실은 막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미래를 약속한 사이에, 왜? 라고 생각했고.
우리의 미래가 생겼다.
"누나.."
애처롭게 부르는 목소리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나쁜놈아."
울먹이며 겨우 꺼낸 첫 마디가 자신을 질책하는 말임에도,
"내가 많이 사랑하는거 알죠? 진짜? 응? 내가 진짜 잘할게. 누나 안 힘들게 내가 애도 다 키울게요."
나의 기분만을 걱정하며 이렇게,
"내가 누나 몫만큼 사랑하고 할테니까 누나는. 아 힘들고 아플텐데. 내가 진짜 잘할게요. 진짜 많이 사랑해요."
이렇게도 사랑스러운 말을 하는 세훈이는
이제 아빠가 된다.
"어? 누나 웃었다!"
앞으로의 미래와, 그리고 미래를 함께할 남자와.
"뭘 잘했다고 웃어!"
"넌 진짜 좀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그 미래를 축복해줄 사람들.
참 행복한, 그런 크리스마스.
+
투표로 하루 푹 쉬고, 이제 오늘만 지나면 내일도 푹 쉬니까 조금만 더 힘내기로 해요 우리!
그리고 국토방위를 위해 애써주신 분들의 충절을 추모하는 것, 잊지 않기로 해요!
이제 진짜 완결이 코 앞이다.. (싫음) (싫음)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내사랑들 !
살!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