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루싸이트 토끼 - 꿈에선 놀아줘
(일기장에서 빛님이 추천해주신..♡ 노래 진짜 좋아여 정말루! 감사히 듣겠습니당.)
# 서른 세 번째 이야기. I can't believe it!
☆★☆★☆★
나는 지금.
- 학교 정문 앞이라고?
"응. 얼른 나와. 집에 가서 공부해."
- 나 오늘 도서관…
"나랑 같이 공부해."
- 알았어. 야, 나 오늘은 집에 간다. 어. 내일 봐. 응. 나 지금 나갈게.
사실 바로 정문은 아니고, 그냥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전화 건 건데. 얼른 가야겠다.
나는 분홍색 꽃이 그려진 반스를 더 빨리 재촉했다.
오늘은 그냥, 찬열이랑 카페에 앉아서 공부하고 싶었다.
인종차별에 대한 발표를 해야 하는데, 영 써지지를 않았다.
사실 어떤 문장으로 시작해야 할 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 교수님은 참 깐깐하고 어려운 분이었다. 학점도 짰다. 그래서 나는 거의 울다시피 필사적으로 과제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찬열이네 학교 정문에는 육교가 있었다.
나는 이런저런 책들이 들어있어 무거운 백팩을 한 번 다시 멘 뒤,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어디야?'
'나 지금 정문 앞이야'
'육교 앞에서 기다릴게'
답장해야 되는데. 나는 간신히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육교야. 나 보여?"
찬열이가 실시간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팔을 살짝 저었다. 나 보이나?!
전화는 매정하게 끊기고, 찬열이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왔다.
나는 이제 계단을 내려갈 일만 남았는데,
"어!"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중심을 잃었다.
이대로 넘어지면 나 굴러떨어지지 않을까. 눈을 꾹 감았다.
그런데 내 몸이 누군가에게, 안겼다.
"또 이럴 줄 알았어. 가방 줘."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어서 그래. 내 가방 무거워. 싫어."
"그냥 줘."
"싫어."
"그럼 너가 나한테 업힐래?"
"안 그래도 돼. 진짜 멀쩡해."
찬열이가 재빨리 달려와서 날 안은 것이었다.
그래 다행이다. 나는 일단 한숨을 돌린 다음 찬열이를 더 꼭 껴안았다.
고맙다는 의미로. 물론 금방 놓아버렸지만.
"나 오늘은 꼭 그거 먹어보고 싶어."
"뭐?"
"에클레어. 라즈베리 에클레어."
"그게 뭐야?"
"음… 디저트? 길쭉하게 생긴 빵?"
"그래 그럼. 어디로 갈까?"
버스를 타고 열심히 광화문 쪽으로 향했다.
옛날 고딩연애하던 시절처럼. 두 명이 앉는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아직 해가 채 지지 않아서, 버스 창문 사이로 햇빛이 들어왔다.
아씨, 살 타는데. 나는 어떻게든 햇빛을 막으려 백팩으로 창문을 막았다.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나는 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에 내 몸을 맡기고 그 여유를 만끽했다.' 따위의 낭만은 없었다.
내 팔이 지금 까매지게 생겼는데 그런 여유가 어딨어.
내가 무거운 백팩을 들고 낑낑대자, 찬열이는 잠시 날 쳐다보다가, 슥 몸을 일으켰다.
자리를 바꿔주려는 것이었다.
나는 왜인지 그게 감동이어서, 살짝 숨이 막혔다.
언제나 찬열이는 세심했고, 배려가 많았다.
나는 옆으로 엉덩이를 밀면서 생각했다.
오늘 집에 가는 길에 찬열이한테 뽀뽀해줘야지. 예쁜 내 새끼.
라즈베리 에클레어, 그리고 밀피유를 하나 고르고 따뜻한 허니밀크티와 체리에이드를 시켰다.
당연하지만 체리에이드는 따뜻할 수가 없었으니까, 얼음이 찰랑찰랑 담긴 걸로.
서로 책을 꺼내들고 널찍한 카페 테이블에 넉넉하게 앉았다.
조명도 적당히 밝았고, 바로 위에 작은 스탠드가 켜져 있었기 때문에 꽤 밝았다.
창문 사이로는 바쁘게 지나다니는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보였다.
나는 백팩을 의자에 내려놓고 노트북과 여러가지 문법 설명 책, 그리고 참고가 될까 해서 빌려온 인종차별에 대한 책을 꺼냈다.
찬열이도 노트북이랑, 이상한 근육들이 그려진 책을 꺼냈고.
서로 대각선으로 마주앉아 한 마디 말 없이 이어폰을 꽂고 각자의 할 일에 집중했다.
데드라인은 좀 남아있었지만, 나는 아무래도 데드라인에 촉박하게 다가오면 정신을 못 차리는 타입이라.
가져온 에클레어와 밀피유는 미리 조금 잘라놓고 정말 '당이 떨어진다' 싶을 때 한 조각씩 집어먹었다.
나는 예쁘고 길쭉한 호리병 모양의 컵에 담긴 에이드를 쭉 빨아들이며 등을 잠시 의자에 딱 붙였다.
한참동안 타이핑만 했더니 허리나 팔, 등, 어깨 같은 데가 결렸다.
나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넘기며 맞은 편의 찬열이를 자세히 쳐다봤다.
지금 자기 할 일에 집중한 찬열이는 안경을 끼고 있었다. 두꺼운 뿔테 안경.
쟤 라식해서 안경 필요 없는 거 알고 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공부를 할 때마다 저걸 꼈다.
나는 고개를 틀어 안경을 똑바로 쳐다봤다. 알도 없는데?
그냥 폼인가. '나 공부하고 있어요!'하고 말하려는 용도?
나는 찬열이가 귀여워서 못 버티겠단 표정으로 웃고, 세 번째 에클레어 조각을 집어먹었다.
그리고 다시 목을 두어 번 꺾은 뒤, 미국의 남북전쟁에 대해 다룬 책을 앞머리부터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
찬열이는 아홉 시가 되어서야 고개를 들었다.
그 때 쯤 나는 빡빡해진 렌즈 탓에 반쯤 울면서 다 녹은 에이드를 입에 털어넣고 있었다.
찬열이 먹으라고 남겨놓은 에클레어와 밀피유는 정확하게 한 조각도 빠짐없이 남겨져 있었다.
찬열이는 다 식은 밀피유 두 조각을 포크로 집어 입에 넣으며 물었다.
"공부 많이 했어?"
"응. 이거 에이포로 한 20장 해야 되는데 지금 한 열다섯 장 했어."
"그냥 레포트야?"
"아니. 발표. 이거는 그냥 콘티 짠 거. 이것도 제출용."
"그럼 그걸 다 외워야 돼?"
"아니. 보고 해도 된대. PPT 이런 거 만들어도 되고."
힘들어! 이런 거 안 했으면 좋겠어 돈 내고 대학 다니는데… 찡얼대자 찬열이가 웃었다.
집에 갈까? 묻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또 해야지 뭐. 찬열이가 입에 넣어주는 에클레어를 오물오물 씹었다.
가방에 차곡차곡 노트북부터 책까지 챙기니 온 몸에 힘이 없었다.
"많이 힘들어?"
"졸려… 집에 가서 좀만 더 쓰다 잘래."
"언제 발표야?"
"다음 주 목요일."
"시간 많네. 오늘은 그냥 푹 자."
"나는 일찍 끝내는 게 좋아서, 아무래도. 얼른 하려고."
"그러다 몸 상해."
찬열이가 나란히 걷고 있던 나를 한 팔로 꼭 안았다.
대학생이 되니 이렇게 붙어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뽀뽀 같은 건 아직 많이 눈치가 보였지만, 옛날보다야.
늦은 시각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며칠 전까지는 꼭 가을이 온 듯 춥더니, 요즘은 밤인데도 후덥지근했다.
나는 백팩의 끈을 쥔 손을 꼼질거렸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이 같이 부대꼈다.
약지에 끼워진 반지는, 아직 내게 익숙하지 않았다.
내가 이걸 끼고 있어도 되는 걸까?
내가 정말 이렇게 멋있고 사랑스러운 애인을 가져도 되는 건가?
정말 찬열이를, 내가 감당해낼 수 있을까?
의대생 남자친구를 두었다는 건 사실 참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남자친구는 우선,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보다 학업이 더 중요했다.
나는 찬열이를 다른 커플들만큼 자주 보지 못했다. 그건 나대로 서운한 일이었다.
하지만 찬열이는? 여자친구가 없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몇 시간을 손해보고 있었다.
나는 그게 미안했고, 그래서 보통 데이트를 카페나 집 같은 곳에서 같이 공부를 하는 식으로 보냈다.
그렇지만 찬열이에게는 그런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찬열이는 분명히 '그래도 나는 너한테 기댈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확실한 공부의 동기부여가 되는 거야.'라며 말할 것이었다.
그래. 찬열이는 그럴 거고, 분명히 서로가 서로의 기둥이 되어주며 심리적 안정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정서적 행복을 얻겠지만.
내가 그 애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단 생각은, 이십대 초반의 대학생 커플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다.
두 번째로, 의사가 되는 과정은 너무나도 복잡했다.
다른 남자는 보통, 대학 생활을 하다 군대를 2년 다녀오고 다시 복학, 졸업, 그리고 취업을 했다.
그렇지만 찬열이는? 일단 대학 생활이 6년이었다. 그리고 인턴 생활, 레지던트 생활, 그리고 군의관으로 군대도 3년이나 다녀와야 한다.
정식 의사가 되면 보통 서른 줄에 들어서게 되고, 그러고 나서도 안정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린다.
나는 그에 반해 스물넷에 대학을 졸업하고 미친 듯이 취업을 하고 나면. 나는?
찬열이의 20대는 보통 공부로 바쳐질 것이었다. 애인을 사귀고 결혼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나는 또 어떻게 해야 되는가. 사실 나는 찬열이를 너무너무 좋아하고 사랑했지만, 헌신적인 아내처럼 그 애를 30대 중반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그 때까지 내가 여자로서 사랑받는 삶을 버리고, 찬열이의 성공만을 빌며 어머니처럼 그 애를 순수하게 사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생각들 탓에, 나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한참을 달만 말똥말똥 쳐다보며 밤을 지새워야 했다.
사실 요즘 꿈도 많이 꾸고, 잠도 깊게 자지 못해서 더 피곤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이걸 찬열이가 알게 되면, 괜히 자기 때문에 내가 힘들어한다고 자책하겠지. 그건 또 싫었다.
밤 되니까 또 생각이 많아지네. 나는 눈을 꾹 감았다 뜨며 찬열이의 손을 내렸다.
대신 내 손으로 꼭 잡고, 나랑 같은 디자인의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그래. 지금 내가 의지할 곳은 사실 너밖에 없었다.
그래도 네가 좋은데 어쩌겠어. 나는 머리를 살짝 찬열이한테 기댔다.
그래봤자 어깨까지도 닿지 않았다. 정수리가 겨우 찬열이 어깨에 닿을까 말까였으니.
걸으면서 찬열이 팔에 기대는 게 사실 불편했지만, 어떻게든 닿아 있고 싶었다.
그를 눈치챘는지 찬열이는 내 손을 더 세게, 꽉 잡아주었다.
나는 약간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버스 탈래, 지하철 탈래."
"뭐가 좋아?"
"지하철 타자."
"그럼 여의도에서 내려서 환승하자."
"응."
찬열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른이 되니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에 익숙해졌다. 나도, 찬열이도.
조금만 더 아이 같았으면 좋겠는데. 나는 천천히 내 안에 되뇌이며 고개를 숙였다.
찬열이랑 발을 맞춰 걸으려고 잠시 발을 멈췄다.
오른발, 왼발. 차근차근 짚었다. 찬열이는 나랑 걸을 때 언제나 내 보폭을 맞춰주었다.
그마저 오늘은,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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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이 코 앞.. 'ㅅ' 서른 다섯 편만에 완결입니당.
허니체리베이비는 에피소드 형식인 거 다들 아시져..? ㅎㅎ... 막 별 내용 없는 것 같아도 그게 내용 전개라는 거..
그리고 35편에 완결=체리베이비에는 한 번 불마크=? 언제 씀? 두 편 남았는데?
베브 : ...다음 편?
개학하고 도무지 제정신이 아니어서 ㅋㅋㅋㅋㅋㅋㅋ 늦게와서 미안해요. 내가 그럼 그렇지 뭐...
방학 동안은 으쌰으쌰 잘 했는데 개학하니까 너무너무 힘들고 지쳐요... (꾸물꾸물)
완결이 가까워오니까, 뭘 써야 될 지 훨씬 복잡하고 힘드네여! ㅠㅠㅠ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항상 늦게 오고 글도 형편없는 작가인데도 읽어주셔서 정말 한시도 빠짐없이 감사해요.
늘 말하지만 사랑해!
+) 그리고 찬열아 정말 사랑해 ㅠㅠㅠ...♡
//// 암호닉 ////
소문 / 푸우곰 / 비타민 / 망고 / 준짱맨 / 챠밍 / 홈마 / 눈두덩 / 러팝 / 판다 / 지안 / 이리오세훈 / 길라잡이 / 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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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거의 다 기억하고 있어요! 오랜만에 오셔도 기억해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