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바로 옆에 있는 핸드폰에서 알람이 미친듯이 울렸다. 내 머리에서 번개가 치는 듯 했다. 이런 아침을 맞은지 벌써 2년째. 밤12시 전에 자본기억이 없다.
새벽2시에자고 6시에 기상하는 날들이 앞으로 약 1년정도 더 남았다. 알람을 재빨리 끄고는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채 욕실에 들어가 씻는다.
이를 닦을 동안에도 내 눈꺼풀은 여전히 돌덩이같은 잠에 눌러져있다. 정신을 깨우기위해 얼음장 같이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나면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또 다시 현실에 직시한다. 내 목표는 s대학교. s대학교에 가기 위해 이때까지 한 많은 노력들이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시간이 아까우니 아침밥은 생략.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에도 손에 쥔 작은 수첩 속 까만 영어 철자가 내 눈속으로 파고든다. 버스를 타고 항상 앉는 자리에 앉으면 작은 수첩은 주머니에 넣고 엠피쓰리를 꺼낸다. 엠피쓰리에 저장된 파일은 5개년 영어듣기 기출 음성파일. 약 200개 정도 될까? 그걸 2년전부터 해서 3번은 들었을 태지만 또 듣고 또 듣고 또 듣는다. 반복만이 살길. 버스가 학교앞에서 날 토해내듯 뱉어내면 나는 이어폰을 빼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수첩을 다시 꺼내어 든다. 교문 앞 선생님들의 인사는 들리지 않는다. 발은 자동적으로 교실로 향하고 있고 영어단어들이 눈에 계속 파고든다. 교실에 도착하면 나 보다 더 일찍 온 전교에서 좀 논다고 하는 아이들이 책을 펴고 책 속에 빨려갈듯이 공부를 하고 있다. 원래 등교시간 까지 남은 시간은 약 1시간정도. 그 1시간 동안 나는 수학문제를 푼다. 수학은 나에게 지뢰나 마찬가지이다. 다른 과목을 다 1등급받아도 수학은 2등급. 2라는 숫자가 날 족쇄처럼 따라다닌다. 완벽해져야한다. 하루의 반은 수학과함께 보낸다. 그래도 만년 2등급.
하지만 또 수학을 한다. 반복만이 살길. 아이들이 하나 둘씩 등교하지만 친구들과 이야기 하는 아이는 한명도 없다. 다들 말 할 시간 조차 없다. 자기공부시간이 안그래도 부족한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 다른아이들에게 뒤쳐져서 좋은 대학교를 못가게된다.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은 끝이다. 모든 아이들의 생각이 나와 같다. 하지만 내 왼쪽 옆에 앉아있는 그 아이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반은 다른반 보다 훨씬 성적이 좋고 경쟁도 치열하다. 내 왼쪽에 앉은 아이는 아침에는 일단 잠을 잔다. 그리고 수업시간에는 허공을 처다보거나 창밖을 바라본다. 가끔씩 어떤 공책에 글을 쓴다. 무슨 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아이는 항상 그렇게한다. 시험기간에도 그러하다. 그 아이는 걱정이 없는 것 같다.
야자시간에는 항상 노트북으로 무엇을 보고 듣고 웃고 그리고는 엎드려서 잠에 취한다. 그 아이 빼고 우리반 아이들 전부는 로봇같다. 감정이 없는 것 같다. 항상 시선은 책을 향하고 아무도 보려하지 않고 들으려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고 듣는 건 오직 책과 인터넷강의뿐. 시험 마지막날이었다. 이야기 한번 안하던 그 아이가 나에게 말을 한것은. 그때 모든 아이들이 집에가고 나는 울고 있었다. 가채점결과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좋지 않아서 이런 성적으로 내가 s대학교에 갈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다가 갑자기 울음이 튀어나와서였다. 세상이 떠나갈듯 나는 미친듯이 울었다. 온 몸에 수분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 드니 울 힘이 없어서 울고 싶었지만 더 이상 울지 못했다. 앞문을 드르륵 열더니 그 아이가 들어왔다. 그리고 내 옆자리인 자신의 자리에 앉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 노래는 그 아이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처럼 자유로웠고 편안했고 즐거웠다. 그 아이가 노래를 다 부른후에 나에게 말했다.
"나는 노래부르는게 좋아. 그래서 노래부르는 사람이 될거야. 너는?"
"s대 법학과"
힘 없는 목소리로 나는 대답했다. s대 법학과 그게 내 장래희망이었다. 그 뒷이야기 같은건 모른다. 내가 판사가 되든 변호사가 되든 그런건 상관없다. s대 법학과 그게 내 삶의 유일한 목표였다. 하지만 난 그 아이의 뒤이은 물음에 답 할 수가 없었다.
"들어가고 싶은 대학교 말고 니가 평생하고 싶은거. 네 꿈이 뭐야?"
"..."
"너 많이 지쳐보여. 지금 이렇게 노력해서 거기 들어가도 내생각엔 네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
한 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동안 나는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지금도 힘든데 s대 법학과를 가면 얼마나 더 힘들어야 될까.
정적을 깬건 그 아이였다. 나에게 수업시간에 가끔 들고 있던 공책을 건냈다.
"너 언어1등급이지? 이거 내가 쓴 가사들인데 어떤 지 좀 봐줄래?"
사실 그 아이의 가사들은 별로 특별 한 것이 없었다. 내용은 일상생활 이야기였다. 가사보다는 일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가사속에는 자신의 생각이 뚜렸했고 그 아이만이 느낌이 녹아있었다. 편안하고 즐겁고 항상 밝은. 그 아이가 연필을 잡고 쓴 글자 하나하나가 내 뇌리에 박혔다. 일상적이고 하루하루에 충실하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 이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깨달았다. 그 가사를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 떨어졌다. 내가 이때까지 해 왔던 것들이 다 소용없는 것들이었다. 적어도 나를 위해서는. 남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맞춰 살아온 지난 날들이 거품이 되어 지금 흐른 눈물에 씻겨 내려갔다. 거품이 다 씻겨내려간 자리에는 햇빛이 들어오는 교회안에서 피아노를 만지고 있는 작은 소녀가 보였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 진짜 꿈을.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나는 피아노 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흰색 까만색 건반들이 춤을 추면 나는 더할나위없이 행복했었다. 나는 그 어린시절의 기억을 찾아 교회로 당장 가고싶어졌다. 그래서 말 없이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가는 길에 뒷문 앞에서 잠깐 멈추어서 그 아이에게 말했다.
"고마워. 나는 피아노를 치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