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 푸르던
w. 후뿌뿌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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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일요일 아침, 손에 과자 꾸러미를 든채로 기숙사로 향했다. (사실 부엌이 기숙사의 바로 옆이라 향했다고 말하기엔 조금 난감하다) 기숙사로 들어가자 마자, 소파에 앉아서 다리를 떨고 있는 뉴트와 내 목도리를 쥐고 한숨을 내쉬고 있는 웬디의 뒷통수가 보였다. 나 왔어- 말하자, 웬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어딜 갔었던 거냐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기 시작했다. 아니, 통금시간이 지나니까 갑자기 기숙사 문이 잠겨버린거 있지.. 눈치를 보며 이런 저런 변명을 하자 웬디가 밥이나 먹자며 기숙사 밖으로 나가버렸다. 웬디가 나간 기숙사 문을 바라보다, 뉴트가 날 응시하는 것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다시는 나한테 목적없는 외출을 말하지마 주디. 알겠어?"
뉴트의 시선이 불안정하게 이리저리 떠돌았다. 알겠어 뉴트. 왠지 모르게 뉴트에게 미안해져 고개를 숙였다. 내가 어제 그렇게 뛰쳐나가고 나서 많이 걱정했겠지, 뉴트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기숙사 밖으로 나가버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듣는 뉴트의 화난 목소리였다. (나를 향한 화 말이다. 뉴트는 그렉 같은 애들한테 화를 많이 냈었다. 물론 그 애들은 뉴트가 자기한테 화를 낸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테지만.) 후플푸프 기숙사의 공동거실 가운데에 덩그러니 혼자남아 크레덴스가 건넨 과자 꾸러미를 만지작거렸다. 또 그 애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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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쟤네가 너 얼마나 찾았는줄 알아? 내 오른편에 앉은 버논이 내 앞에 앉은 웬디와 뉴트의 귓가에 들리지 않게 속닥거렸다. 우리가 속닥거리고 있는 것을 신경도 쓰지 않는건지 웬디는 로제 파스타를 제 포크로 푹푹 찔러댔고 뉴트는 자신의 부엉이 아르테미스가 배달해준 예언자 일보를 읽고있었다. 너도 진짜 나쁜 애야. 슬리데린 애가 널 발견했으면 넌 아마 징계였을걸? 버논이 잔뜩 으스대며 말했다. 내 왼편에 앉아있던 아더가 버논의 말을 듣고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슬리데린 애가 날 발견했는데. 차마 꺼낼 수 없는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동공이 격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어제 밖에서 누구랑 뭘 하고 온건데? 아더가 제 입에 파스타를 넣으며 내게 물었다. 순간, 내 주변에 앉아있는 모든 아이들이 내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웬디와 뉴트 마저도) 뭐라고 둘러대야하지? 그때, 뉴트의 손에 들린 예언자 일보에 대문짝 만하게 쓰여있는 [베어본] 이라는 글씨에 시선을 빼앗겼다. 베어본, 익숙한 이름이었다. 크레덴스, 크레덴스 베어본. 신문을 빠르게 눈으로 훑었지만 그 어디에도 크레덴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크레덴스. 조용히 중얼거리자 뉴트가 포크를 소리나게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걔 슬리데린 맞지? 목에 냅킨을 끼운채로 뉴트가 멀어진다. 저기 잠시만! 웬디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고, 버논이 수저로 테이블을 통통 치며 환호한다. 후플푸프 찌질이가 슬리데린 찌질이랑 싸우러간다! 버논의 뒷통수를 소리나게 갈기고 뉴트를 따라나섰다. 저기 뉴트 잠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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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 잠시만!"
뒷쪽에서 버논의 환호 소리와 웬디의 화난 음성 (아마도 버논을 향한) 이 뒤엉켜 들린다. 방금 전까지 뉴트의 목에 끼워져있었을 냅킨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한발짝, 두발짝 슬리데린 테이블로 향할 수록, 테이블 끝에 혼자 불안정하게 앉아있는 크레덴스와, 뉴트가 점점 가까워진다. 주디..? 크레덴스가 날 보고 활짝 웃는다, 아니야 웃지마 크레덴스. 입모양으로 말하자 크레덴스의 시선이 내 앞에서 쿵쾅거리며 걷고있는 뉴트에게로 향한다. 이 나쁜 자식! 주디랑 밤새 뭘 했어!! 그리고 다음 순간, 뉴트가 크레덴스의 로제 파스타 그릇을 내동댕이쳤다. 왜 이러세요... 크레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꿈뻑거린다. 그리핀도르, 래번클로 할 것 없이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그리고 느꼈다. 난 망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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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됬든 규율을 어겼다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재프리콧 양."
토마스 교수님의 목소리가 웽웽거린다. 그런게 아니라, 들어가려고 초록색 배를 간지럽히려고 하자마자 종이 치면서 문이 잠겼다니까요? 책상을 쾅쾅 치며 교수님에게 아무리 상황을 설명해봐도 교수님의 표정은 단호하기만 하다. 크레덴스가 고개를 떨군다. 꽉 말린 주먹이 무릎 위에서 정갈하다. 크레덴스, 뭐라고 말 좀 해봐! 크레덴스의 팔을 콕콕 찌르며 속삭이지만 크레덴스는 여전히 바닥만 보고 있다.
"재프리콧 양은 그래서 못 들어갔다고 쳐요, 그런데 베어본 군은 왜 기숙사로 돌아가지 않은거죠?"
토마스 교수님이 나를 제 안경 너머로 바라보며 물었다. 크레덴스의 주먹이 더 꽉 말린다. 교수님, 그건 제 잘못이에요. 크레덴스까지 징계 받게 할 순 없어, 눈을 꽉 감고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크레덴스는 기숙사 문이 열릴 때 까지 절 기다려준 것 뿐이에요. 그게 다예요. 벌벌 떨고 있는 크레덴스의 손목을 붙잡고 교수님께 말했다. 크레덴스의 몸이 불안정하게 떨려온다. 그렉에게 맞을 때의 사나운 크레덴스의 눈빛이 아니라, 정말로 두려워보였다. 쟤네 가문에서도 쟤는 사람 취급도 안하니까. 아픈 소식을 전했던 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모님께 이 사실이 알려질까봐 두려운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와 함께 밤을 지새준 크레덴스의 행동이 얼마나 용기있는 행동이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럼 크레덴스는 그만큼 나를, 손목을 꽉 쥔 손 위로 크레덴스의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그러고 나서, 난 교수님께 다 내 잘못이라고 말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부모님한테 혼나는 것과, 후플푸프가 10점 깎이는 것 보다 크레덴스가 부모님께 혼나는 것을 보는 것이, 그리고 날 볼때마다 악몽이 떠올라 미소짓지 못할 크레덴스를 보게 될 것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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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교수님의 집무실에서 나와 아무렇게나 걸었다. 크레덴스가 소매로 제 얼굴을 아무렇게나 닦는다. 내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그런 거겠지. 가슴이 무너져내린다. 에세이 하나 때문에 모든게 틀어져버린 것 같아서, 어쩌면 내가 맞는 크레덴스를 구한 그때부터인 것도 같아서. 내 뒤를 따라오던 크레덴스의 발소리가 멈춘다. 나도 그에 발걸음을 멈추지만 차마 뒤를 돌아볼 자신이 없다. 지금 크레덴스의 얼굴을 보면 나도 울 것 같아서, 그래서 앞을 보고 가만히 서있었다. 크레덴스의 발소리가 다시금 난다. 레몬 라벤더 향이 풍긴다.
"주디"
빨간 눈가의 크레덴스가 애써 웃으며 내게 말을 건다. 젖은 크레덴스의 소매를 보자,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크레덴스의 어깨에 올려진 짐이 너무나도 큰 것 같다. 왜 난 진작에 이 짐들을 덜어주지 못한걸까, 괜히 자책하게 된다. 주디, 나 대신 혼나준거 고마워. 크레덴스의 목소리가 옅게 떨린다. 눈을 꼭 감는다. 모든 사고회로가 멈춘다. 주디, 크레덴스가 내 이름을 한번 더 부른다.
"내 크리스마스 무도회 파트너가 되어줄래?"
쿵, 심장이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