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21.
약봉지를 가져오는 그 순간부터 아기의 표정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이불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집에 오면 아기가 바뀔 수 있단 의사선생님말이 백퍼센트 정답이었다.
"아가, 일어나봐요. 이거 먹어야되. 아까 의사선생님이 안 먹으면 큰일난데"
"우우웅. 갱차나여. 비니 이제 앙아파! 징차에여! 비니 앙 머글래여!"
"아가. 일어나봐. 응? 아가 아직 기침도 하고 머리도 아야하잖아. 응?"
이불에 폭 파묻힌 아기는 날 보지도 않고 먹기 싫다며 이불속에서 말을했다. 이불을 살살 흔들며 말을 걸어보지만 이제는 안에서 미동조차 없었다.
"아가. 아가 이거 먹으면 코코아랑 초콜릿이랑 사탕이랑 다 줄게요. 응?"
"..흐잉.그래도 시른데에.."
간식의 유혹에 이불을 살짝 끌어내려 날 보긴했지만 톡 건들이면 엉엉 울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먹기싫다고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후우...아가 진짜 안 먹을꺼야?"
"흐으.. 웅.. 앙 머거요.. 앙 먹고 시퍼.."
그 뒤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간식공세와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아기는 한결같이 고개를 저었고, 이제 한계임을 감지한 나는 한숨을 쉬며 아기를 한번 더 바라봤다.
아기는 고개를 푹 숙이며 고개를 저었다.
"알았어. 먹지마. 아가 그럼 그렇게 계속 아파요"
"우웅..?"
"아가 안 먹겠다며. 그럼 계속 그렇게 아파야되. 아가 계속 아프고 싶어?"
"흐응.. 아니여, 비니 앙 아프고 시퍼여.."
"그럼 이거 먹어야지. 왜 계속 안 먹는다고 하기만 해. 형도 아가 이거 먹이기 싫은데 안 먹으면 계속 아프다니깐, 먹이려는거잖아.응?"
"흐으..끄읍. 흑. 자..잘모태써여.. 먹으께여.. 비니.. 머글테니까아.. 화내지 마세여"
결국 아기는 내 표정과 말에 겁을 집어먹고 잘못했다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약을 먹이려면 어쩔 수 없이 독해져야 된다고 생각해 아기를 조금 몰아세웠더니 여린 아기는 결국 이렇게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말았다.
이제는 아기의 행동패턴을 조금 더 기억한 것일까..아기가 울 꺼라고 예상을 했던건지도 모르겠다. 들리지 않게 한숨을 푹 쉬며 아기를 끌어안고 일어서서 토닥여줬다.
"아냐..아가가 잘못한거는 아냐.. 울지마.. 아가 울지마요. 뚝"
"흐으... 비니..비니 약 머글께여. 엉아 화내지 마여. 흑. 끄읍. 흑"
"알았어 알았어. 뚝뚝. 쉬이.. 아가 착하지? 뚝"
딸꾹질까지 해대며 화내지말라고 내 팔을 꼭 쥐는 아기에게 또 한번 미안했다.
어쨌든 약은 먹어야 하기에 어쩔수 없이 화 아닌 화를 냈지만 내가 아니었으면 아기는 지금 이렇게 약을 먹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가. 이거 얼른 먹고 코코아도 먹고 초코도 먹고 사탕도 먹자. 아가. 착하지?"
"흐끕. 흡. 네에.."
"착하다. 착하다 우리아가"
침대에 앉아서 아기를 안고 약을 타서 얼른 아기에게 떠넘겨줬다. 아기는 눈물자국이 그대로인채 눈을 꼭 감고는 얼른 약을 삼키고 쓰다며 또 울먹거렸다.
사탕을 하나 입에 넣어주고 얼른 아기를 고쳐안고 토닥였다.
"아가 참 잘했어요. 우리 아가 이렇게 잘먹는데 왜 못먹는다 그랬어. 너무 잘했어."
"흐응..써어..흑"
"얼른 사탕도 먹고 초코도 먹자 알았지?"
"우웅..."
아기는 조금 진정이 된건지 숨을 크게 쉬고 사탕을 먹었다. 오늘 하루는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겠다.
"엉아 엉아. 긍데 우리 어흥이 엉제 보러가?'
"으이구. 아가 이제 진짜 다 나았나보네? 오늘은 안되. 의사선생님이 오늘은 집에 있어야된데요. 나중에 가자"
"흐웅.. 비니 다 나았능데에.."
사탕을 입 속에서 굴리며 아기는 줄줄 새는 발음으로 동물원엔 언제가냐며 물었고, 나는 아기 코를 살짝 쥐었다 놓으며 나중에 가자고 말했다.
"우웅...웅! 엉아! 사랑이! 사랑이 보러가자!"
"응?"
"사랑이이!"
사탕을 계속 먹더니 막대기를 손에쥐고 이제는 사랑이를 보러가자고 졸라댔다.
밖에 데리고 나가면 안된다 그랬는데.. 안된다고 말을 하려고 하자 그 큰눈에 눈물과 함께 날 담으며 울먹거리는 눈빛이란..
계속 바라보다 질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리니 또 쪼르르 고개를 돌린 방향으로 와서는 내 눈을 계속 봤다.
"징짜 앙대여?"
"..아..안되는데 아가.."
"비니 약도 잘 머겄능데.. 망마도 다 먹었능데에..."
"마..맘마는 반 밖에 언먹었으면서?"
"흐웅.. 나중에는 더 잘 머글 쑤 잉능데.. 징짜 안 가꺼에여? 사랑이 보고만 와요.."
"하아..."
"웅? 엉아. 엉아아.. 웅?"
졌다 졌어. 저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어느누가 완강히 거절을 할 수 있겠는가...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가지고 나오자 아기는 방방 뛰며 신나했다.
목티에. 바지에. 패딩을 입히고 목도리도 하고. 모자까지 씌우고서 아기를 바라봤다. 눈사람이 따로없네.. 사랑이 안보러가도 되겠다 아가..
"아가 대신.형이 아가 계속 안고있을꺼야. 아가 내려주세요. 하면 안되?알았지?'
"웅웅! 얼릉 가요 추발추발!"
"휴..알았어알았어."
나도 옷을 입고 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아기는 눈만 동그랗게 내 보이고 내 품에 안긴채 얼른 가자며 재촉해댔다.
아침만해도 바람이 불고 제설작업도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내려가기 전 창으로 본 밖은 어느정도 도로가 깨끗했고,어제 과연 눈이 온 게 맞는날씨인건지 해도 쨍쨍하게 나는게 눈은 금세 녹을것만 같았다.
사랑이도 녹았으면 어쩌나.. 안되는데.. 아가 또 울텐데.. 걱정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놀이터로 향했다.
망했다.. 생각보다 따뜻한 햇살에 눈은 금세 녹아내려버렸고 놀이터는 바닥이 살짝살짝 보일정도로 많이 녹아있음은 물론 아기들이 미끄러질까 염려되어 눈이 치워져 있었다.
미끄럼틀 밑의 사랑이는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고.. 아기를 바라보니 아기는 벌써부터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후응.. 사랑이.. 엉아 사랑이 어디가써여..?사랑이가 업써어.."
"사..사랑이 그러니까...사랑이..쩌어기 위에. 어 쩌어기 위로 올라갔어!"
"웅? 쩌어기 위에?"
떄마침 맑은 하늘에는 사랑이를 닮은 구름 한조각이 지나고 있었고,얼른 사랑이가 위로 올라갔다고 설명해 주었다.
"우리 사랑이 잘가라고 인사할까?'
"웅웅!! 사랑아 잘가! 담에 또 놀러와! 비니랑 가치 놀자아!"
옷은..옷은 어딨지.
옷을 찾아보니 미끄럼틀 밑에 공간이 있었다. 다른 아기들이 놀기도 하는 장소. 그곳에 내 외투와 목도리. 그리고 아기의 작은 장갑까지 개어져 있었다.
이제 옷을 들고 집으로 가려는데 옷에서 쪽지가 하나 떨어졌다. 아기를 안은채로 쪽지를 펴보니, 내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아가. 사랑이가 인사하고 갔네?"
"웅?"
"여기여기. 고맙습니다. 하고 써놨네?"
"고맙승니다?"
"응. 사랑이가 무지무지 따뜻했나봐. 그래서 이렇게 아가한테 고맙습니다. 하고갔어."
아기는 웃으며 그 쪽지를 계속해서 봤고 나는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길에 놀이터 앞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굉장히 포근하게 웃고있었고 나도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네곤 아기와 함께 집으로 올라왔다.
세상은 아직 아가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것 같다.
-Fin-
아ㅠㅠㅠㅠㅠㅠㅠ저런 경비아저씨와 동심을 지켜줄 줄 아는 햇님이ㅠㅠㅠㅠㅠㅠㅠㅠ같은동에 살았으면ㅠㅠㅠㅠㅠㅠ여한이 없겠네요ㅠㅠㅠㅠㅠㅠ
다들 아시겠죠????ㅋㅋㅋㅋㅋ 경비아저씨가 어제 아가랑 햇님과 같이 눈사람 만드는걸 보고 눈사람이 다 녹아서 외투와 목도리. 장갑까지 챙겨놓고 쪽지를 쓰셨다능...
저런 경비아저씨 어디없나요 진짜...ㅠㅠㅠㅠㅠㅠㅠ 오늘도 읽어주신 여러분들 진짜 사랑한다고요!!!!!(박력)ㅋㅋㅋㅋㅋ
암호닉몽쉘통통님. 달돌님. 요니별우니별님. 정모카님.달나무님,작가님워더 님,하마님,천사천재님ㅋㅋㅋㅋ 다들 내가 진짜 사랑하는거 알죠!!!!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