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닉~ |
언어영역 뚀 눈두덩 승쨩 <비회원> |
그날, 백현과 함께 작업했던 화보는 한 마디로 대박을 쳤어.
웬만하면 재고를 남기지 않기 위해 최대한 적은 부수로 7000부 정도 찍어낸 잡지가 한 주만에 품절이 되어, 인쇄소에서 다시 찍어 낼 정도로.
그 덕분인지 백현이는 SM에서 공식 사진작가로 캐스팅이 되었어. 겸손한 마음으로 여러 번 거절했지만 민호도 그렇고 종대도, 찬열도 이런 좋은 기회를 걷어차는 미친놈이 세상에 어디에 있느냐며 노발대발을 해댔어. 특히나 민호가 말이야. 젊을 때에는 사서 고생한다는데 왜 너는 더 넓은 미래를 보지 못 하고 지금만 보냐며 백현을 크게 혼냈어.
그런 민호의 모습에 백현은 의아해하며 물었어. 나는 형의 회사에 소속된 사진작가인데 왜 형은 나를 다른 회사로 보내고 싶어 하냐. 하며.
“누가 그냥 보내준대? 그쪽 일이 한가할 때에는 당연히 우리 스튜디오 출근해야지.”
“네?”
“네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해봐. 너무 우리 스튜디오에 목메어있지 말고.”
제게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해 볼 수 있는 일들은 다 해보라며 민호는 얘기했어. 그런 민호의 말에 백현은 나름대로의 위안을 느꼈어. 왜냐하면 자신도 SM에서 온 제안을 굳이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제안을 수락하려면 이제껏 저를 도와주고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민호를 버려야 했기에 그 제안을 거절한 백현이었어. 하지만 민호가 이렇게 나온다면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었어. 그런 것을 느끼며 백현은 감사하다고 허리 굽혀 인사했어. 이번 일도 그렇고. 항상 민호는 백현을 친 동생처럼 진심으로 아껴주며 제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올바른 길로 지지해주는 정신적인 지주 같은 존재었어. 그런 민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백현은 민호를 와락 껴안았어
“제가 이 세상에서 제일 후회하던 게 뭔지 아세요?”
“뭔데?”
“김종대랑 친구 먹은 거요.”
장난스럽게 얘기하던 백현이 와락 껴안은 민호에게서 떨어지며 웃었어. 그게 왜 후회할 짓이냐. 하며 민호가 백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어.
“그런데 지금은 제일 잘 한 것 같아요.”
김종대 덕분에 형도 알게 됐잖아요. 그리고.. 갑자기 떠오르는 한 사람에 백현이 웃었어. 그런 백현을 쳐다보던 민호가 웃으며 얘기했어. 백현아. 너는 행복해져야 돼.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민호의 깊은 눈에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어.
백현은 그렇게 SM과 계약을 했어. 그리고 백현이 SM 공식 사진작가로 계약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백현과 SM 소속 아티스트들은 콘서트 일정으로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 그중에는 당연히 엑소도 있었고. 빛의 멤버들도 있었어. 그리고 징어도.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팬들의 카메라를 향해 팬 서비스를 해주던 너징은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바로 재킷 안에 넣어두었던 선글라스를 꺼내어 썼어. 혹시나 팬들이 걱정할까 봐서 일부로 선글라스를 벗기는 했는데 요 며칠 간 잠을 못 자서 그런지 약한 불빛에도 눈이 피로해지는 것을 느낀 너징이야. 비행기 티켓에 적힌 자리를 찾던 너징이 아. 하고는 살짝 미소 띤 얼굴로 자리를 찾았어. 다행히도 너징이 좋아하는 창가 자리야. 제 자리에 편안하게 앉은 너징이 한 쪽에 비치되어있는 항공사에서 준비해둔 담요를 꺼내들었어. 드라마 OST를 녹음하느라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던 너징은 담요를 덮고 비행기가 이륙하기도 전에 잠에 빠져들었어.
제 자리를 찾아온 백현이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할 줄 모르고 머리를 긁적거렸어. 힘들게 찾은 제 자리가 너징의 옆이라니. 기뻐해야 되는데 자꾸만 화보 촬영 때 차갑게 대하며 저를 피하던 너징이 생각나서 차마 기뻐할 수도 없는 백현이야.
“변 작가님,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왜 그러냐며 묻는 스태프의 질문에 백현이가 아니라며 얼른 자리에 앉았어. 한참이나 자리가 불편한지 몸을 뒤척이다가 꼼지락대는 너징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행동을 멈췄어. 잠에 들어서도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 눈썹을 찌푸리고 끙끙대는 너징이야. 그 모습을 보던 백현이가 한숨을 쉬며 이리저리 흐트러진 담요를 다시 꼭 덮어주었어. 무슨 꿈을 꾸길래 그렇게 식은땀까지 흘리는거야. 걱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식은땀이 맺힌 너징의 이마를 쓸어 준 백현이 한숨을 쉬었어.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어. 너무나도 무력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모습에 백현은 그저 너징의 식은땀을 닦아주고, 담요를 제대로 덮어주는 일밖에는 할 수가 없었어.
카메라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낸 백현은 카메라를 점검했어. 아티스트들은 쉬어도 사진작가로 온 백현이는 공항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일의 시작이었으니 말이야.
아티스트들을 찍으러 백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눈을 감고 있던 징어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어. 갔나? 간거 확실한가?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너징이 좌석에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어. 아까 백현이 식은땀을 닦아줄 때 이미 깨어있었지만 어떤 반응을 취해야 될지 몰라서 계속 자는 척하고 있었던 너징이야. 자꾸만 옆에서 후각을 자극하는 백현의 향수냄새와 청각을 자극하는 목소리에 한계에 다다랐던 너징은 백현이 가자마자 후아 하고는 큰 숨을 들이마셔. 심장 터져 죽을뻔했네.
...아니 그러면 안 돼! 멀어지기로 했잖아. 더 좋아지려고 하면 안 돼. 고개를 휘휘 젓고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찰싹찰싹 때리며 너징이 생각했어. 안 돼. 정신 차려, 오징어!
바쁘게 도착한 뉴욕에서의 일정은 리허설부터 공연까지 빠르게 이루어졌어. 그런 순간순간을 캐치해내서 카메라에 담던 백현은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는 아티스트들을 보며 잠시 카메라를 내렸어. 그리고 사진을 찍느라 보지 못 했던 뒤를 한 번 쳐다보았어.
머리카락 색도, 눈동자 색도 모두 다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한 데모여 콘서트를 즐기고, 눈물을 쏟아내는 팬들을 보던 백현이 카메라를 들고 그들을 사진 안에 담아냈어. 그리고 그 사진을 카메라 화면으로 확인하던 백현이 살며시 웃었어.
카메라 안에 담긴 팬들의 모습이 3년 전 자신과 겹쳐보여서일까. 사진을 확인하던 백현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어.
3년 전 내가 저기에 있을 때에는 난 그냥 돌덩어리인 줄 알았었어. 너무 화려한 빛을 뿜어내는 그들의 앞에서 한 없이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나는 빛이라고는 발견할 수 없는 시커먼 돌덩어리인 줄로만 알고있었는데, 눈 앞에 있는 보이는 것에 눈이 멀어 내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것은 모르고 있었어. 그 빛의 크기를 정하는 것은 내 몫이었는데 말이야.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확인하고 다시 고개를 든 백현이 마음 속으로 속삭였어. 당신들도 반짝반짝 빛날 수 있으니 힘내라고. 당신들을 응원하고 있겠다고. 그런 백현이의 마음을 담고 SM뉴욕 콘서트가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어.
*
“건배!”
이틀 간의 뉴욕콘서트가 끝이나고, 스탭들과 아티스트들이 모두 모여 한국 식당에서 회식을 가졌어. 여기저기 퍼져앉은 아티스트와 스탭들사이에서 백현이가 함께 건배!하며 잔을 부딪히고 술을 마셨어. 맞은 편에 앉은 샤이니의 키와 종현도 술을 마시고 백현이에게 인사를 건넸어.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이번 화보도 대박나셨다면서요. 사람좋게 웃으며 다가오는 둘의 모습에 백현이 쑥쓰러운듯 아니라며 손사레를 쳤어.
“에이 아니긴요!”
“뉴욕에서 유학도 다녀오셨더만!”
부럽다~ 하며 안주를 뒤적거리던 키가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어. 혹시 김기범 선생님 아세요? 꽤나 날카롭다고 느꼈던 눈매가 동글해지며 물었어. 백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서 다른 스탭과 이야기하는 종현의 팔뚝을 마구때리며 좋아하는 키야. 제가 그 선생님 너무 좋아하거든요! 완전 팬이예요! 그 선생님 패션쇼 항상 잘 챙겨보고있다고 전해주세요! 하며 발을 동동구르는 키의 모습이 소녀팬같다고 느끼며 백현이 웃었어.
“네. 다음에 소개시켜드릴게요.”
그렇게 회식의 분위기는 무르익어갔어. 어디서 그렇게 술을 많이 받아마셨는지 무릎으로 총총총 걸어온 종대가 백현이의 빈 옆자리에 앉아서 어깨에 머리를 기댔어.
“어디서 그렇게 많이 마셨어”
“려우기형이 줘써어”
술에 취해 어눌해진 발음으로 종대가 얘기했어. 려우기혀엉이.. 술 냄새에 고개를 돌린 백현의 눈이 려욱을 찾았어. 이미 려욱이형도 취했는지 창민의 옆에 기대 참미나..하며 꼬인 발음으로 창민을 찾았어. 한숨을 쉰 백현이 종대의 앞에 물컵을 놓아줬어. 이거 마시고 얼른 술 깨, 임마. 장난스럽게 제 어깨에 기댄 종대의 머리를 손으로 치우자 종대가 아아아 그로지마아아아 왜 그래애애애애! 하고 앙탈을 부렸어
“배쿄나앙.. 나는 니가 잘 돼서 너어무! 너어무너무 조하”
“마른 돼지 먹여살릴 수 있어서?”
“아니야아아아 나한테 왜 그래애애애!”
힝힝하고 올라간 입꼬리를 추욱 내리며 종대가 찡찡댔어. 알았어알았어.하며 백현은 제 어깨에 기대어 누워있는 종대를 토닥거려줬어. 차라리 자라 이 인간아.
“그로케 사진 조아하고 느응력도 있는 놈이.. 첫사랑 하나 몬 이져서 그로~케 쪼차다니구우..”
제 앞에 놓인 물잔을 들어 물을 마시던 백현이 종대의 말에 깜짝 놀라 종대의 입을 막고, 읍읍거리며 자기는 아직도 할 말이 남았다고 제 손을 치는 종대를 진정시켰어. 충분히 알겠는데 여기서는 아니야. 듣는 사람도 많은데.. 게다가 징어까지 여기있단말이야! 징어라는 말에 히끅 하며 딸꾹질을 한 종대가 아아~하며 샐죽 웃었어. 아무래도 호텔로 돌아가야될 것 같아. 히죽이죽 웃는 종대를 보며 백현이가 휴대폰을 챙겼어. 맞은 편에서 크리스탈과 얘기하던 키가 어디가냐고 물어왔어.
“변작가님, 어디가요?”
“종대가 많이 취해서 먼저 들어가봐야겠네요. 재밌게 놀다오세요.”
종대의 상태를 보더니 키가 혀를 두어번 차고는 조심히 들어가라고 말했어. 대충 고개를 끄덕인 백현이가 종대를 부축하고 아직도 시끌벅적한 회식 장소를 나섰어. 차가운 바람이 달아오른 백현이의 얼굴을 감싸왔어. 후 하고 한숨섞인 숨을 내뱉고는 종대를 다시 부축한 백현이 택시를 잡았어. 빼꼼히 고개 내민 택시기사가 어디로가냐고 물어왔어. 멀지않은 곳에 묵고 있는 호텔이름을 말하자 타라고 얘기하며 빼꼼히 내민 고개를 다시 집어넣는 택시기사야. 일단 뒷좌석을 열고 곤히 잠든 종대를 짐짝 던지듯 차 안으로 내팽겨친 백현이가 저도 같이 몸을 싣고 문을 닫았어.
“배쿄나아 내가 너 조아하는거 알지이?”
“그냥 자라, 강냉이 털리기 싫으면..”
웅냐웅냐. 가죽시트에 뺨을 대고 누워있던 종대가 백현이에게 손을 휘휘 내밀며 말하자, 그 손을 잡고 제자리에 놓아주며 얘기했어. 강냉이 털리기 싫으면 자라. 그 말에 낑낑거리며 잠에 드는 종대야. 어후 골 아파. 고개를 젓고는 백현이가 택시비 계산을 위해 재킷 안 주머니에 들어있을 지갑을 찾았어. 뒤적뒤적.
“?”
뒤적뒤적. 바지 주머니에 넣어놨나?
“??”
바지 뒷 주머니. 옆 주머니. 주머니라는 주머니들은 다 뒤져보는데도 지갑이 잡히지않아. 어디서 흘렸나? 아 골치 아프네. 벌써 잠이 든 종대의 재킷 안에서 지갑을 꺼내며 백현이가 중얼거렸어. 지갑을 어디 흘리고 왔지?
어디 흘리기는. 고깃집에 흘렸지. 징어는 마지막으로 회식집에서 나오며 잊어버린 건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을 했어. 만취한 준희언니 재킷이랑, 매니저오빠 차키. 확인을 하고 고깃집을 나가려던 너징의 발에 무언가 밟히는 느낌에 밑을 보자 왠 반지갑 하나가 떨어져있어. 얼마나 정신없었으면 지갑이 떨어지는지도 몰랐을까. 그런 생각을하며 너징이 허리를 굽혀 지갑을 주웠어. 누구 지갑이지? 그런 의문을 품으며 지갑을 연 너징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어.
“변백현”
지갑을 열자 백현의 주민등록증이 보였어. 1992년 5월 6일. 변백현. 머리를 긁적거리며 어떻게 전해줘야되나. 하고 생각하면서 가게를 나섰어. 지갑을 반대쪽을 보고. 두 개의 증명사진이 나란히 꽂혀있기에 닫으려고 했던 너징이 잠시 걸음을 멈췄어.
“왜 내 사진이 있는거지?”
제 지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갑 속에 꽂혀있는 제 사진 때문이었어. 게다가 최근이 아닌 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는 듯 사진 속의 너징이 입고 있는 교복은 너징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어. 그리고 그 혼란을 더욱 가증시켜주는 것은 너징의 증명사진과 나란히 붙어있는.
같은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채 활짝 미소짓고 있는 백현의 증명사진이었어. 너징의 손이 떨렸어.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움직이며 기억속의 퍼즐조각이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어.
징어야, 범인은 백현이야(소근소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