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나님의 예쁜 표지 선물. 감사합니다.♡ (큰절)
甲乙丙丁
"우리가 집중해야 할 사실은 갑의 날뜀에 피해받는 을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을의 횡포에 죽어가는 병과 정이 있다는 것이다."
九
BGM :: 황상준 - 메마른 파도
쓰러졌다.고 했다.
영상을 채 끝까지 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눈꺼풀이 뒤집혀 바닥으로 추락했다고 설명을 듣고서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죽지 않았으리라. 분명히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폭팔하기 직전에 건물에서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려 했는데,
"크리스가 만든 공간이더라."
"개새끼 진짜."
다른 능력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을 동안에
전체 세계를 총괄하고 능력자와 비능력자 사이의 관계를 유지시켜야했던 크리스는 타 능력자에 비해 그 능력이 월등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만든 공간을 마음대로 탈출하거나 그가 발휘하는 능력을 제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이런 이유로 종대가 그 건물에서 도망쳤을 것이라는 가정의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하는 것이 맞았다.
아직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못한 나는 가벼워진 손목을 비틀어보며 떨어지는 조각들을 주워 들었다.
"이건 어떻게 만들어진건데?"
"우리도 몰라."
모른다.
공간을 만드는 법도. 공간에서 남은 능력자들을 빼오는 방법도. 종대가 살아있는지 그 여부도 모른다.
살짝만 힘을 주었을 뿐인데도 조각들은 아주 잘게 부숴져 공기중으로 흩어진다.
레이는 빈 손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던 내게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유지되었던 사회에 대한 '반란'이자 '개혁'이라고.
그리고 그 중심에 서있는 것은 다른 능력자들이 아닌 나. 나 하나라고.
그 차이를 알 수가 없었다. 다들 똑같은 능력자이고 능력을 다룰 줄 모르는 내가 어떻게 이 반란의 중심에 설 수 있을까.
못하겠다고 이야기하려 했었다. 그리고 그 말을 꺼내기 직전, 바로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종인이와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던 세훈이는 종대도 종인이도 이 반란을 위해 애썼다고 말했다.
도망치는 과정에서 연락이 끊긴 종인이는 장시간의 훈련으로 세훈이보다 더 능력을 다루는 데 익숙하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며 나를 달랬다.
만약 정말로 폭팔로 인해 종대가 죽었다면. 종대의 뜻을 뒤이어 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구역 안에서 처참한 몰골을 하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지 못하며 살고 있는 다른 능력자들을 생각해야 했다.
크리스가 보여준 아름다운 세계의 이면에서 희생당해야 했던 사람들을 구해주자고 했다.
종대야, 종인아.
내가 지금 옳은 일을 하고 있는게 맞을까?
"야 일났다. 진짜."
급하게 방 문을 연 백현-말을 놓으라고 수십번을 강요했다-이는 곳곳에 흩어져있던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모아봤자 다섯명. 나를 포함하면 여섯명이었다.
백현. 세훈. 루한. 찬열에 아직까지 입을 한번도 열지 않은 타오라는 남자까지.
그리고 백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 모두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크리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쪽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백현이가 갑자기 보이지 않음을 감지했고.
그가 능력을 사용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백현이 뿐만 아니라 모두의 능력이 발휘되지 않았다.
"어떡해? 거기까지 어떻게 가."
"가. 갈 수 있어."
"어떻게 가게?"
"능력 없어졌다고 바보가 됐나."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고 했다. 우리에게 조언을 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러. 가야한다고 했는데
능력이 없어진 지금 우리가 '그 남자'를 만나러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나라의, 아니. 지구의 모든 시스템은 크리스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각국의 대통령들은 '능력자'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우리의 우두머리라고 생각되는 크리스에게 최대한으로 협력했다.
그에게 반기를 든 우리의 존재는 비능력자들에게 위협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음에. 우리는 일반적인 루트를 이용할 수가 없..
"비행기. 타야지."
타오는 방 한켠의 서랍을 열어 종이뭉치를 꺼내들었다.
"다 안되는 건 아닐 거야. 크리스도 똑같은 능력자니까."
몇번의 준비운동처럼 보이는 움직임 후, 타오는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가 따로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손 두개가 귀 위를 덮어왔다. 그리고.
가려진 귀 너머로 만물이 부셔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가까이에 있던 액자부터 시작해서 물을 마시라며 백현이가 들고왔던 유리잔까지.
집 전체가 흔들흔들. 흔들리고 그 반동으로 몸이 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는 이 상황에서
타오는 누구보다 평온해 보였고 나머지 사람들도 이 상황에 크게 놀라지 않는 듯 했다.
오히려 내가 놀랄 것도 미리 알고 있었는지 후들거리는 나를 잡아주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살짝 미소를 지은 타오는 종이뭉치를 다시 한번 매만졌고 순식간에 종이뭉치는 여권으로 돌변한다.
나를 포함한 여섯명 분량의 여권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소매부분의 단추를 풀어낸 타오는 셔츠자락을 끌어올려 매끈한 팔뚝이 드러나도록 했다.
타오가 흐릿한 회색 자국만이 남아있는 부분을 매만지자, 살아있는 듯한 문자들이 그 정체를 드러낸다.
Telltale.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타러 가자. 비행기."
-
"잘 들어. 두번 설명 안해."
"듣고 있으니까 빨리좀 하자?"
"변백현이랑 대혼란이랑 같이 공항으로 간다. 그리고 찬열이 너가 따로 공항으로 가. 레이형이랑 같이."
"만약 눈치채면?"
"그래서 나랑 세훈이가 주의를 좀 끌게. 만약 눈치를 챈다면. 그런 낌새가 없으면 너네는 그냥 비행기 타고 가면 되고, 우리는 그 다음 비행기로 출발하면 되고."
"말이야 쉽지."
"어디까지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디까지 알려져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야. 어쩌면 일반인들은 모를 수도 있어."
준비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홀홀단신으로 따로 준비할 짐도 없던 나는 오히려 이것이 의심을 살 수도 있다고 옷가지를 챙겨야 했다.
그러고보니 아직 나는 종인이와 함께 샀던 옷 그대로의 차림이다. 종인아, 너는. 잘 있는거 맞지?
내게 맞을 것 같은 남자옷들을 쑤셔넣은 가방은 볼록하게 튀어나왔다. 정말 여행가는 사람의 가방처럼.
살짝 매어보니 진짜 여행을 하기 위해서 나라를 떠나는 사람같은 차림이다.
"오늘 네 파트너인 변백현이야."
살갑게 굴며 오른손을 내민 그도 준비를 끝낸 후였다.
백현이는 큰 배낭을 등에 짊어진데다가 부피를 꽤 차지하는 쇼핑백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질문에 백현이는 자랑스럽게 쇼핑백에 들어있던 먹을거리를 꺼낸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대."
과자봉지를 죽 뜯어내며 그는 보란듯 씩 웃었다.
어디부터 감시를 하고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오빠, 동생 연기를 하는 우리에게 택시 기사분은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중국이요. 여행가요. 담담히 이야기하는 백현이의 이면에 잔뜩 서린 긴장감을 나또한 느낄 수 있었다.
얼핏 보이는 코드가 신경쓰여 소매자락을 끌어올려주고, 보이지도 않는 내 팔뚝부근을 남은 손으로 지긋이 눌러보았다.
종대의 코드는 뭐였을까. K..? 아무리 크리스를 통해 방대한 지식이 들어왔다 하더라도 그를 이해하는 데에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내가 예상한다 한들. 확인할 방법이라도 있을까?
불현듯. 갑자기 이런 생각이 스친다.
크리스가 말하길 능력자 하나가 죽을 때가 다가오면 마치 그 정해진 수를 지키려는 것 처럼 새로운 능력자가 태어난다고 했다.
그게 맞다면. 지구 어딘가에 K로 시작하는 코드가 팔에 새겨진 아이가 태어났을 것이다. 그래서 정해진 수를 지켰겠지.
종대가 있던 건물이 폭팔하기 전날이었음에도 크리스는 다른 능력자가 태어났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아니. 태어났으면서도 굳이 알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어쩌면 종대가 살아있을 수도 있다고.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다시 한번 다짐한다.
기필코 모든 능력자들을 그 구역에서 꺼내고 다시는 그렇게 취급받으며 살게 하지 않겠다고.
"공항 입성!"
"소리지르면 어떡해. 눈에 띄잖아."
공항 내부는 북적거렸다. 레이가 중국에서 큰 축제가 있어 중국 방문객이 많을거라더니. 진짜였다.
아무도 우리를 쳐다보지 않았고, 아무도 우리를 수상히 여기지 않았다.
능력으로 만들어낸 여권인데도 무사히 심사를 통과했다. 항공사 직원은 즐거운 여행이 되라면서 웃어주기까지 한다.
나는 아직도 이 능력이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우리가 타야할 비행기는 통로 끝쪽에 게이트가 위치했다.
여태껏 아무 문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들어 백현이의 가방끈을 꼭 쥐었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닌데 게이트로 향하는 길이 끝이 없는 것 같다.
"야."
나만 그렇게 느꼈던 것이 아니었나보다.
"우리 지금 제자리 걷기 하냐?"
"그런 것 같은데.."
ㅇ
"그리고 저거."
백현이가 턱짓한 곳을 쳐다보니, 익숙한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다 사라진 후였, 아니. 우리가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것 같다.
"나만 보이냐. 못생긴 면상."
루한. 이라고 했던 것 같다.
종인이의 아버지이자 이 반란을 시작했던 사람을 죽였던.
감시자이자, 그동안 억제장치를 전달해왔던 전달자.
"때깔 좋네."
루한.
모든 환희에는, 모든 쾌락에서와 같이 잔인성이 깃들어있을 것이다.
Oscar Wilde. 소설가.
'크리스' 라인 - 甲 (민석) 乙 (준면 루한 경수)
'P' 라인 - 甲 (세훈 레이 백현) 乙 (타오 찬열) 丙 (종인 종대)
갑을병정 세계관 설명
현재 위치 - 대한민국.
CREATOR - 갑자기 생겨난 '능력자들'을 통제하고 처음으로 통제구역을 만들어낸 장본인 = KRIS.
갑 - 코드 보유자 중 크리스의 기준으로 선정한 5인
24시간 한계의 억제장치 착용 (전달자 = 루한을 통해 전달받음)
을 - 통제구역에서 병, 정을 관리하는 감시자. 제한된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음.
병, 정 - 능력자.
♡제이♡님이 주신 선물
-▩-
헐.. 갑을병정을 처음 구상하게 만들어 준.
제게 이런 소재를 도전하게 만들어 준.
그런 브금이 있는데. 다음 화면 그 브금을 첨부할 수 있어요..
다음 화를 위해 갑을병정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렇다고 엄청 좋다던가 하는 브금은 아니고.. 진짜 제가 쓰고싶은 부분이 두 장면 있었는데
다음화가 그 두개의 장면중에 하나가 될 것 같아여ㅠㅠ 감격.
오랜만에 들고왔네요 갑을병정..
집이 아닌 곳에서 써서 올리려니 암호닉 목록 정리가 힘들어서 (놑북 시망!!) 오늘은 본래 암호닉분들은 잠시 쉬어갈게요..♡
1주일 하고도 3일정도 남았네요.. 집에가고시퐜!!
다음편 얼른 쓰고싶당 끙끙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합니다 내 사랑들♡
암호닉은 '갑을병정'과 '어서오세훈! 종대라떼 판다카이' 두 글에서 다 쓰이는 암호닉이세요!
그리고 암호닉은 최대한 '가장 최신편'에서만 신청해주시길 바랄게요!
새 암호닉 신청은 @@ 골뱅이 안에 넣어주세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기존 암호닉 정리는 이번 화만 쉬도록 하겠습니다! 암호닉은 계속 받아요!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