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 N
모두가 떠났다. 각 조직의 메딕팀들을 제외한 모두가 떠난 지금, 그들은 다시한번 마주할 그들의 붉은 노을에 긴장한 표정으로 타들어가는 목을 적신다. 그들도 모르는 사이 시작되어버린 오늘의 전쟁, 이미 출발선을 넘어선지는 오래다. 그들의 피니시라인(Finish Line)이 어디에 펼쳐져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적군의 피가 그 선에 모두 적셔져 붉은색이 되었을 때 끝나지 않을까, 하고 순영은 생각했다.
"민규. 넌 북쪽으로 가라."
".. 예."
"무슨 일 생기면 반드시 연락."
"알겠습니다."
".. 예."
"무슨 일 생기면 반드시 연락."
"알겠습니다."
민규가 이끄는 소수의 부대가 북쪽으로 향했다. 말없이 뒷모습을 바라보며 순영이 제 옷 안에 간직하고 있던 사진 하나를 꺼내본다. 며칠 전, 민규의 제안으로 모두가 함께 그들의 마지막 회의실에서 찍은 단체 사진. 이 사진에도 존재하지 않은 지훈을 떠올린 순영이 입술을 깨문다. 개자식, 죽어있기만 해봐. 가만히 사진을 들여다보던 순영이 떠나고 있는 민규의 뒷모습과 번갈아보며 크게 한숨을 내쉰다. 그의 무사귀환을 바라면서.
- Z, 나야. S.
"예."
- 지금 선발대에 서있는데, 병력이 우리가 좀 모자라.
"..."
- 우선 조슈아를 만나러 갈거야. 시간을 조금만 벌어줘.
"조슈아요?"
- .. 응, 할 이야기가 있어.
".. 알겠습니다. 중간에서 진입하겠습니다."
보스의 연락과 함께 순영은 시간을 벌기 위해 부대를 이끌고 중간지점으로 향한다. 조슈아라, 예전의 순영이 코로나 아스트레일스 초창기를 떠올려본다. 몇 년 전 코로나 아스트레일스가 지어지고 나서, 승철에게 온 하나의 편지. 순영이 건네준 그 편지의 끄트머리엔 작게 J 라고 쓰여있었다. 동시에 찾아온 정적에 순영이 조용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의 표정은 미묘했다. 분노, 슬픔, 후회 등의 감정이 모두 뒤섞여버린 그의 표정에 순영은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었다.
그 날 승철은 밖으로 향했고, 몇 시간 후 다시 본부에 돌아온 그는 한동안 제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않았었다. 그가 틀어박힘과 동시에 CA 또한 모든 것이 정지되었었던 시절. 다시 한번 그를 만나러 가겠다는 승철의 말에 순영은 총을 느리게 고쳐잡는다. 이번엔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순영이 탱크를 타고 적진 중간지점으로 방향을 틀었다. 저멀리 보이는, 오랜만에 보는 코로나 보리얼리스의 모습에 순영이 입꼬리를 당긴다. 너희도, 변한 건 없네. 가만히 흔들리는 탱크 위에서 CB의 모습을 바라보던 순영이 갑자기 찾아온 어지럼증에 휘청거렸다. 후배의 손에 겨우 떨어질 위험을 면한 순영이 민망한지 헛기침을 내뱉는다. 이거, 이지훈이랑 김민규가 봤으면 백년 놀림감인데, 그치? 제 아슬했던 모습을 농담으로 웃고 넘긴 순영이 조용히 이를 앙다물었다. 지금 자신은 상태가 좋지 않다.
4월 1일 이후 순영은 부분적으로 기억을 잃었다. 제가 떠나기 전, 승관은 순영에게 이런 말을 했다.
"Z, 아마 CB에 가면 예전 기억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뭐?"
"당신은 충격으로 인해 기억을 부분적으로 잃었어요. 다시 한번 그 충격이 돌아온다면, 어쩌면 부작용으로 다시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그거 참 깜찍하네."
".. 기억이 돌아오더라도, 절대 흥분하면 안됩니다."
".. 알아."
"상태, 좋은건 아니에요."
"뭐?"
"당신은 충격으로 인해 기억을 부분적으로 잃었어요. 다시 한번 그 충격이 돌아온다면, 어쩌면 부작용으로 다시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그거 참 깜찍하네."
".. 기억이 돌아오더라도, 절대 흥분하면 안됩니다."
".. 알아."
"상태, 좋은건 아니에요."
".. 죽지 마십시오."
"..."
"다시한번, 그때처럼 돌아온다면- 가만두지 않을겁니다."
".. 알았어, 멍청아. 내가 죽겠냐."
"..."
"다시한번, 그때처럼 돌아온다면- 가만두지 않을겁니다."
".. 알았어, 멍청아. 내가 죽겠냐."
어쩌면 순영은, 지금 자신의 기억이 점점 돌아오고 있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피식 웃은 순영이 점점 가까워지는 적진의 형상을 보며 크게 숨을 내쉰다. 기억이 돌아온다면, 혹은 이미 돌아온것이라면. 적어도 지금 기억이 나는-.제 허리에 독을 꽂은 놈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보스, 지금 가시기엔 너무 위험합니다."
"괜찮아. 그가 나를 불렀는 걸."
"괜찮아. 그가 나를 불렀는 걸."
조슈아가 무기 하나 없이 맨 몸으로 임시 본부텐트를 나왔다. 전쟁이 시작되고, 임시텐트에서 전장을 지휘하던 조슈아가 직접 총알과 피가 튀기는 전장에 나온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 가만히 돌아가던 상황을 보고 있던 여주가 조슈아에게 나지막이 묻는다. 그가, 연락한겁니까?
".. 응."
"..."
"다녀올게,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보스, 무기를 가지고 가시는게."
"괜찮아, 그의 손에 죽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
"다녀올게,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보스, 무기를 가지고 가시는게."
"괜찮아, 그의 손에 죽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생글생글 웃어보인 조슈아가 그의 비서와 함께 차를 타고 전쟁의 기운이 닿지 않은 뒷길로 사라졌다. 멀어지는 차의 모습을 보며, 여주는 오늘따라 조슈아의 얼굴이 더 야위어졌다고 생각했다. 아마 지금 조슈아는, 몇년 전 둘도 없는 친구였다던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일 터. 오래 전 흠씬 두들겨 맞고 온 그의 얼굴이 생각 나 여주가 픽 웃어버렸다. 이번에는, 맞고 오지는 말아야 할텐데.
"그는, 아직이야?"
".. 예,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 예,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깊숙한 지하실, 은밀하게 회의가 이루어지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장 안전하고 조용한 지하실에서 승철은 긴장한 표정을 가득 담은 채 의자에 앉아있다. 제 앞에 놓여있는 둥근 테이블이 어찌나 커보이는지, 불안함에 손톱까지 뜯고 있던 승철이 결국은 테이블에 고개를 박았다. 쿵 하는 소리와 동시에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승철은 제 비서가 방을 나갔겠거니, 했지만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의 심장을 멈추게했다.
"오랜만이야."
"..."
"에스쿱스."
"..."
"에스쿱스."
"잘, 지냈어?"
심장이 멈춘듯한 기분에 잠시 숨이 막혔던 승철이 깊은 숨을 내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몇 년만에 다시 마주한 그의 얼굴, 그 날과 변한것이 없다. 그 특유의 눈꼬리로 또 한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 아무 말 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승철이 오랜만에 제 귀에 들려온 또 다른 자신의 이름에 픽 실소를 터트렸다.
"잘, 못지냈어."
"..."
"얼굴이 좋아보이네, 조슈아. 넌 잘 지내고 있었나 봐."
"..."
"어떤 얘기부터 할까."
"..."
"..."
"얼굴이 좋아보이네, 조슈아. 넌 잘 지내고 있었나 봐."
"..."
"어떤 얘기부터 할까."
"..."
"어디서부터 이야기 해야하지? 너와 처음 만났던 날? 아니면…"
"에스쿱스."
"니가 나를 버렸던 날?"
"에스쿱스."
"니가 나를 버렸던 날?"
조슈아의 표정이 엉망이 되었다. 한껏 날이 선 채로 제 앞에 앉아 그 날을 기억하고 있는 에스쿱스의 모습을 보며 조슈아가 주먹을 쥐었다. 어떻게 반응해야될지 몰라 조슈아가 말을 아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기만 하는 조슈아를 보며 승철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던 승철이 텅빈 눈으로 조슈아에게 물었다.
"네가 원한게 이런거였어."
"..."
"나를 버리고, 신뢰도 잃고, 네가 원하는 그 지긋지긋한 새로운 세상."
"..."
"그게 이런거였어."
"..."
"모두가 죽어나가고 있어, 2세계는 이제 우리를 아예 적으로 돌렸고."
"..."
"들어보니 너, 2세계 군인을 네 조직에 넣었다던데."
"..."
"그렇게까지, 이 세상을 바꿔내고 싶었던 이유가 뭐야."
"..."
"나를 버리고, 신뢰도 잃고, 네가 원하는 그 지긋지긋한 새로운 세상."
"..."
"그게 이런거였어."
"..."
"모두가 죽어나가고 있어, 2세계는 이제 우리를 아예 적으로 돌렸고."
"..."
"들어보니 너, 2세계 군인을 네 조직에 넣었다던데."
"..."
"그렇게까지, 이 세상을 바꿔내고 싶었던 이유가 뭐야."
날카롭고,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옛 친구의 말에 조슈아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신이 원했던, 그렇게 바라왔던 새로운 세계.
"너와 함께 가고 싶었어."
"!"
"내가 하고 싶었던 일."
"..."
"그렇게 슬럼가를 싫어하던 너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었어."
"..."
"..."
"그렇게 슬럼가를 싫어하던 너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었어."
"..."
"근데 넌 아니던걸."
"..."
"내가, 너를 버렸어?"
"..."
"아니, 네가 나를 버린거지. 에스쿱스."
- 제 3세계, 슬럼가
내가 처음, 스스로의 발걸음에 이끌려 슬럼가에 찾아왔을 때 나를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식량을 나눠먹게 될 사람이 늘었다며 불평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슬럼가에 발을 들인 나는 그들의 눈엣가시였고, 한동안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그당시 어렸던 내가 견뎌내기에는 너무나도 추웠던 그 겨울 밤. 동사 직전까지 갔을 때에는, 한솔이의 얼굴이 눈 앞에 어른거려 내가 혹시 꿈을 꾸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했다. 보고싶은 수많은 얼굴에 눈물을 흘렸다. 추위에 빨개진 코, 울어서 부어버린 눈. 그 얼굴을 마주한 누군가.
"..."
"내가, 너를 버렸어?"
"..."
"아니, 네가 나를 버린거지. 에스쿱스."
- 제 3세계, 슬럼가
내가 처음, 스스로의 발걸음에 이끌려 슬럼가에 찾아왔을 때 나를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식량을 나눠먹게 될 사람이 늘었다며 불평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슬럼가에 발을 들인 나는 그들의 눈엣가시였고, 한동안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그당시 어렸던 내가 견뎌내기에는 너무나도 추웠던 그 겨울 밤. 동사 직전까지 갔을 때에는, 한솔이의 얼굴이 눈 앞에 어른거려 내가 혹시 꿈을 꾸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했다. 보고싶은 수많은 얼굴에 눈물을 흘렸다. 추위에 빨개진 코, 울어서 부어버린 눈. 그 얼굴을 마주한 누군가.
내 또래 같아보였던 그 아이는 덜덜 떨고 있던 내게 조용히 낡은 담요 하나를 건네주었다.
"너, 못보던 얼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