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기간이라는 건 아주 악독한 겁니다.
제가요, 이번에 시험을 진짜 잘 봐야해서 마음 굳게 먹고 아예 여길 거의 안 들어오고, 그랬는데...
진짜 왜 제대로 오늘도 밤샘을 위해 노트를 펴는 순간 머릿속에서 썰이 떠오르는 걸까요.
아, 근데, 진짜... 글 쓰고 싶어 미치겠다...
아, 물론 잠깐의 쓰차도 있었지만...
하... 글 쓰고 싶다...
라는 마음으로 급하게 휘갈기고 가는 썰. 어미가 뒤죽박죽 섞일겁니다, 마음만 급하게 쓰고 가는거라.
나중에 다시 바짝 수정해야지.
대형견과 토끼는... 제 시험이 끝나면 바로 찾아오겠습니다...
우리 대형견 랩슈는 162편도 있고... 토끼 랩슈는 이제 데이트 좀 많이 해야하는데... 꽁냥 많이 해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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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흔 : 상처를 입은 자리에 남은 흔적.
윤기는 사랑을 해 본적이 없음.
남들은 한 번쯤 두근거려봤다는 연모의 감정 자체를 느낀 적이 없음.
20살이 훌쩍 넘어 대학에서는 나름 고학번이 되어도 첫사랑 비슷한 감정 한 번 느낀 적이 없음.
이유는 여러 개 생각해봤겠지.
자신은 무성애자인가?
근데 그렇다기에는 아주아주 가끔 외로움도 느낄 때도 있고 자신도 성욕이라는게 있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입술을 부벼보고도 싶고,
간질거리는 설렘을 느껴보고도 싶음.
그런 걸로 봐서 무성애자는 아닌 것 같음.
그냥 이성에 대해, 혹은 그 감정 자체에 관심도 없고 절절하게 구애를 하지 않아서 그런건가보다 싶음.
결론은,
그냥 연애나 사랑이나 그런 게 자신에게는 하염없이 막연한 존재인가보다 싶은거지.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어디가서 모쏠이라고 이야기하기도 머쓱하고 이성과 입술은 커녕 손도 안 잡아봤다는 게 괜히 움츠러드는 요소이고 그랬는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럴 수도 있지, 싶음.
애초에 관심자체가 크게 옅어진거임. 한다면 하는거고, 안 한다면 안 하는거겠지. 같은.
그런 윤기의 분위기에 주위에 동조까지 해줘서 윤기는 더더욱 크게 연애와 사랑에 대해 미련이 없어짐.
여기에 약간 곁들여서 윤기는 외모, 혹은 그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다고 치자.
자존감도 없다고 하자.
그러니까, 일적이거나 공부라던가 그런 쪽은 당당하면서, 사람관계에서도 태평하게 잘 이어가면서도
마음 한 켠에 항상 그런 마음이 있는거임.
누가 날 사랑해?
내가 누굴 사랑해?
이런 의심, 생각 등.
그래서 누가 여자를 소개시켜준다, 혹은 아주 가끔 슬쩍 남자를 소개시켜준다.
라는 말을 들어도 시큰둥. 오히려 거리낌까지 느껴지는 정도가 된거지.
그렇게 윤기는 좁고도 깊은 인간관계 안에서만 갇혀있는 채로,
그것에 만족한 채로 윤기는 매일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아감.
그러다가 윤기가 고학번이 되고 처음으로 새내기들과 만나는 자리가 생겼는데 친구 때문에 억지로 가게 됨.
복학생에다가 고학번인 내가 가서 뭘 하겠나 싶어 그냥 대충 자리 지키려다가 몰래 빠져나오려는데
그게 어째 쉽지가 않음.
윤기는 저를 끌고 온 동갑내기 친구를 노려보다가 테이블끼리 사람을 섞고 섞다보니 신입생들 사이에 끼게 되겠지.
진짜 애매하게, 1학년과 2학년 무리 사이에 덩그라니 있는 복학생.
아무 말도 안하고 구석에 앉아있기만 하는데도 후배들이 제 눈치를 보는 게 눈에 보임. 불편해죽겠음, 서로가.
그래서 입으로는 화장실 다녀온다면서 아예 가게 밖으로 나감. 호프집 앞에 서서 그냥 가방 챙겨서 가자고 마음을 먹는 사이에
호프집 문이 열림.
윤기가 옆으로 걸음을 옮겨 지나가라고 길을 내어주는데 나온 상대는 움직이지 않음.
윤기가 의아해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까 술에 잔뜩 취한 새내기 김남준씨가 비틀거리고 있음.
아, 제대로 맛이 갔구나.
그렇게 생각한 윤기는 술 깨러 나왔나보다 싶어서 고개를 돌리는데 욱욱거리는 헛구역질 소리가 들림.
미친, 야! 야! 여기서 하지마!
경악한 윤기가 그대로 남준이 끌고 골목으로 들어감.
이미 누군가 다녀갔는지 거하게 쏟아내진 그 옆으로 남준이가 새 작품을 하나 만듦.
윤기는 비위가 강해서 별 대수롭지 않게 남준이의 등을 미친듯이 두드림.
그리고 저보다 큰 녀석을 다시 질질 끌고 나와서 버스 정류장이 마침 근처라 그 의자에 앉혀놓고 편의점에서 물을 사와서 건네줌.
남준이는 한 번 속을 비워내고 나니까 조금 술이 깨는 것 같아서 윤기가 준 물로 입을 헹구고, 조금 정신도 차림.
근데 문제는 정말 조금 차린거임, 정신을.
윤기가 술 작작 마시고, 준다고 다 마시지 말고. 라고 오랜만에 선배다운 일을 하고 들어가기 직전에 남준이 어깨를 툭 두드렸는데
남준이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또 하나의 작은 작품을 윤기의 상의에 조금, 바지에 좀 많이 새겨놓음.
윤기는 골이 울리는 걸 억지로 참으며 급하게 근처 화장실로 가서 대충 작품을 지워내고
그나마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제 옆자리 애 툭 건들여서 버스 정류장에 애 하나 죽어있으니까 챙겨. 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가방을 들고 집으로 향함.
윤기는 내가 왜 답지 않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이런 꼴을 당했나, 싶어 역시 과행사는 저와 안 맞는다는 생각에 다시 아싸가 되어 학교를 다님.
한편 남준이는 그 다음날에 눈을 번쩍 떴는데 어찌 어찌 집에는 왔나봄. 집에서 눈 뜸.
근데 어머니가 보자마자 등짝을 때리면서 작작 마시라고 한 걸 보면 진짜 취하기는 거나하게 취했었나봄.
근데 남준이 필름 끊기면 재미 없잖아요?
우리의 갓 20살이 된 남준이는 건강한 간을 자랑하면서 하루 만에 숙취 없이 일어나는 쾌거를 이룸과 동시에
전날 밤에 자신이 고학번 선배에게 실수를 한 것도 한꺼번에 기억해냄.
게다가 남준이 성격에 빚지고 절대 못 삼. 그냥 모른 척 하기도 예의를 떠나서 본인이 싫고, 꼭 만나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은데 그 선배의 이름을 모름.
생김새는 알겠는데 가뜩이나 사람이 많기로 유명한 과인데 그 안에서 딱 한 명의 몇 학년인지도 모르는 선배를 어떻게 찾음?
그 뒤로 남준이는 온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수소문을 하는데
도대체 그 선배가 나타나지를 않음.
과 생활을 안 하는지 과행사에 참여해도 머릿속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그 선배는 보이지 않음.
그게 1주가 되고 2주가 되니까 예의를 떠나서 답답하기까지 함. 그래서 반 포기하고 있었는데 1학년 과대를 조교가 부른다는 말에 남준이가 조교실이 있는 건물로 감.
거기서 볼일 보고 나오는데 문득 어떤 사람이 스쳐지나가는 거임.
그냥 그렇구나 하는데 남준이 눈이 돌아감.
그리고 바로 뛰어가서 그 사람의 앞에 서서 길을 막음.
그때 대뜸 길이 막힌 윤기는 의아함에 고개를 돌림.
동시에 얼굴에 표정이 떠올랐으면.
남준이는 드디어 찾았다는 기쁨과 반가움의 표정이,
윤기는 그 날의 기억이 떠올라서 불쾌함과 의아함의 표정이.
그 때부터 민윤기만 졸졸 따라다니는 1학년 과대 남준이가 보고 싶다.
윤기는 저를 왜 따라다니나 싶었다가,
남준이와 썸 비슷한 걸 차면서도 내내 이게 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런 쪽은 아니겠지 부정했다가
나중에 남준이에게 자신이 받고 있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면서,
끝도 없이 남준이의 감정과 제 감정을 의심함.
남준이는 그대로 밀고 들어가다가 그런 윤기에게 상처를 받기도 함.
윤기가 쥐고 있는 것이 손잡이가 없는 칼날이라 베는 윤기도 상처를 입은 건 마찬가지.
서로가 감정이라는 손잡이 없는 칼날을 쥔 채로 자신을 보호하느라, 혹은 밀어내느라, 당기느라, 몇 번이고 상처를 주고 받았으면.
윤기가 남준이를 피하다가 남준이가 찾아오기도 하고,
남들 눈 신경 안 쓰고 싸웠다가 선배한테 대드는 후배라고 남준이 소문이 안 좋게 나서
윤기는 윤기대로, 남준이는 남준이대로 힘들어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서로에 대한 감정을 끝내 놓치 못 하고 그 감정이 제대로 확신이 되어 맞닿은 후에도
윤기는 네가 왜 날 사랑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굴면 남준이는 그 것에 지치기도, 화를 내기도, 웃으며 보듬어 주기도 하겠지.
그냥 그렇게 풋풋하고 서툴면서 한 편으로 힘들고 어려운 사랑을 하는 남준이와 윤기가 보고 싶다.
아주 나중에는 서로에게 새겼던 상처가 상흔이 될 즈음에 그 자욱을 보며
서로에게 안기고, 안아주는 그런 남준이와 윤기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