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속 여우비.
늦여름이 더위를 안고 한걸음 뒤로 물러날 즈음에
장마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하늘은 거뭇하게 회색빛을 띄고,
가득 낀 먹색의 구름이 계속 물줄기를 쏟아내는 그런 장마.
날이 덥지 않은 것은 좋지만 습한 것은 별개의 불쾌함이라 윤기가 항상 에어컨의 제습기능을 틀어놓으면서
비가 쳐들어 오지 않는 쪽의 창문을 열어놓았으면 좋겠다.
남준이 너는 두 손으로 창틀을 쥔 채로
툭툭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다가
한방울이 툭, 튀어나와 네 코를 건들일 즈음에
놀라서 귀를 바짝 세웠으면.
윤기는 바짝 세워진 남준이의 귀를 보고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 옆에 같이 자리하고 앉아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보기도 했으면.
습한 날씨는 쉽사리 물러나지 않아 눅눅함을 보이고,
윤기는 윤기대로
남준이는 남준이대로 불쾌함이 쌓이다 못해 예민해지는 지경에 이르렀으면 좋겠다.
특히 남준이가 제일 힘들어 하는 건 산책을 가지 못하는 거였으면.
비가 많이 오니 어딜 나가도 금방 털이 젖어버리고,
사람의 모습으로 가면 바짓단이 다 젖어버리는 축축한 산책은 남준이도 썩 달갑지 않았으면.
비가 그나마 옅게 내리는 날에 윤기가 답답해하는 남준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으면 좋겠다.
남준이부터 나갈 준비를 모두 끝낸 뒤에야 윤기도 옷을 갈아입고 나왔으면.
그러다가 현관 쪽을 한 번 보고는 크게 웃어버렸으면 좋겠다.
180cm는 넘는 장신의 남자가
우비를 입고,
장화를 신은 채로 얼른 오라면서
한 손에는 단색의 우산을,
다른 한 손에는 현관문을 꼭 쥐고 하염없이 저를 부르는 게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웃었으면 좋겠다.
나가기 직전에는 윤기가 남준이 머리를 쓰다듬고,
남준이는 그 손에 머리를 더 부비다가 윤기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으면.
그렇게 오랜만의 빗속의 산책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처음 둘은 우산 끝이 닿지 않도록 평소보다 조금 더 거리를 둔 채로 걸어갔으면.
우산을 토독토독 두드리는 빗방울,
웅덩이를 발견하면 금방 꼬리를 흔들듯이 달려가 꼭 한 번 꾹 밟는 남준이,
그리고 챙겨온 사진기로 그런 남준이를 찍으면서 웃고 있는 윤기.
반쯤 흐렸던 구름이 밀려나고 새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자리한 짙은 색의 하늘.
젖은만큼 짙어진 거리를 걸어가며 남준이가 우산을 든 채로 윤기의 옆에 다시 다가왔을 즈음에는
이미 장화와 우비 끝이 모두 젖어있었으면 좋겠다.
강아지.
응?
재밌어?
응. 재밌어.
보조개가 깊게 파일만큼 크게 웃어보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남준이를 보면서 따라웃는 윤기가 보고 싶다.
공원에 들어서면 방금 전까지 오던 비 때문인지 평소보다 사람이 없었으면.
남준이 너는
물방울을 머금어 반짝거리는 풀잎 앞에 쭈그리고 앉아 꽃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분수대 근처를 기웃거리다가 갑자기 솟아오르는 물줄기에 놀라 이상한 소리를 내기도 하고,
공원 한 가운데에서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다가 오늘은 아이스크림도, 솜사탕도 나오지 않았다며 울상을 짓기도 했으면.
그리고 마지막에는
햇빛이 인사를 건네올 때 질 수 없다는 듯이 같이 강하게 불어 인사를 한 바람에게
그대로 우산이 뒤집혀버려 윤기의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걸어왔으면 좋겠다.
이건 네 잘못은 아니라면서 묵묵히 우산을 다시 뒤집어 건네주던 윤기가
똑같은 일이 3번정도 반복될 즈음이 되면 우산을 들고 있느라 한 손만으로 남준이의 손을 잡고 혼을 냈으면 좋겠다.
결국 우산이 망가졌을 때 윤기가 이만 집에 들어가자고 했으면.
잠깐 굵어지는 물줄기에 남준이가 망가진 우산을 겨우 펴들면 윤기가 그런 남준이 머리 위로 자신의 우산을 반쯤 씌워졌으면.
처음 나왔을 때 두 우산이 둥글둥글 벌려놓았던 거리가,
돌아갈 즈음에는 한 우산 아래로 좁혀졌으면 좋겠다.
남준이가 윤기의 허리를 감싼 채로 배실배실 웃으면서
지금 떠오르는 햇빛이 거리를 어떻게 반짝여줬는지,
바람은 얼마나 시원했는지,
물기를 머금은 거리와 꽃들은 얼마나 싱그러웠는지,
물 웅덩이에 어떤 하늘이 담겨있었는지를
조잘조잘 이야기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면
윤기 너는 그러냐며 짤막하게 답을 해줬으면 좋겠다.
집에 도착할 즈음에
우비부터 조심히 벗으라고 말하는 윤기 네 한 쪽 어깨는
완전하게 젖어있었으면 좋겠다.
장마철 한 때의 여우비가 천천히 멎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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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
예쁜 글씨와 귀여운 그림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하트. |
[암호닉] 확인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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