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의 꿈.
새해에 들어서면서 카페에 있던 크리스마스 장식들도 모두 내려가고, 길가의 트리들도 조금씩 모습을 감추었으면.
대신 새해라는 이름으로 크리스마스 직후의 묘한 들뜸이 가득한 거리에 윤기가 목도리에 얼굴을 더 묻으며 걸음을 재촉했으면 좋겠다.
아침 일찍 카페에 출근했다가 되돌아오는 길, 남준이가 일이 있어서 자신과 같이 걸음을 맞추지 않은 날.
윤기는 오늘 오전에 출근 해 오후 조금 늦게 퇴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주머니에 부스럭거리는 종이를 꺼내어들었다가, 다시 한 번 읽은 뒤에 주머니에 우겨넣었으면.
머리를 한 번 헝클인 뒤에 윤기는 마저 걸어나갔으면 좋겠다.
와중에 눈을 찌르는 앞머리를 고개를 흔들어 털어내면서, 작게 짜증도 내면서 집으로 걸어나갔으면 좋겠다.
집에 도착해서는 아직 어둑한 집안의 불을 키고, 가방을 내려놓고, 종이 하나를 꺼내 침대 위에 올려놓고는 얼른 욕실 안으로 들어갔으면.
따뜻한 물에 온 몸을 깨끗하게 씻고 나와서는 나른하게 침대 위에 뒹굴고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나처럼 큰 티 한 장. 아래는 그냥 편하게.
두터운 이불 하나를 덮고, 품에는 푹신한 곰인형, 다만 남준이는 사자라고 주장하는, 인형을 품에 안고.
얼마 누워있지도 않아 훈훈한 거실 공기와 맞물리면서 윤기에게 나른함이 몰려왔으면.
윤기는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다가 손을 들어 눈을 부빈 뒤 얕게 잠에 빠져들었으면 좋겠다.
어느새 편하게 내보인 토끼 귀를 침대 시트 위로 축 내려놓은 채로, 티셔츠 끝 밑에는 하얀 토끼 꼬리를 내보인 채로 잠깐의 잠에 빠져들었으면 좋겠다.
철컹이는 소리가 울렸으면.
그 소리에 윤기가 흠칫, 몸을 웅크렸다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에 느릿하게 눈을 떴으면.
너, 손….
아, 미안해요. 차가워서 깼어요?
아냐…. 그거, 기분 좋아.
밖에 나갔다와서 그런지 온 몸에서 겨울내음과 바깥내음을 잔뜩 달고 왔으면서 쓰다듬어주는 손길의 온기는 한없이 따뜻해서,
윤기는 절로 고개를 움직여 남준이의 손에 머리를 조금 더 부빈 뒤에 느릿하게 일어났으면.
남준이가 웃으면서 일어나 외투와 목도리를 벗고는 저녁을 먹자고 했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윤기가 문득 코를 한 번 킁, 하고 크게 냄새를 맡더니 남준이의 두 손목을 꾸욱 잡았으면.
남준이가 왜 그러냐고 묻기도 전에 남준이 손에 얼굴을 푹 묻었으면.
…토끼야?
너 왜 손에서 초코 냄새가 나냐. 그것도 잔뜩. 설마 너, 혼자 먹고 온 거냐?
남준이의 두 손에 얼굴을 푹 파묻고 있던 윤기가 고개를 번쩍 들고, 눈을 날카롭게 빛내면서 남준이를 추궁했으면 좋겠다.
남준이는 이 귀여운 말에 얼마나 진득한 진심이 담겨있는지를 알아 그저 어색하게 웃었으면.
대답이 없고 그저 웃기만 하는 남준이의 행동에 윤기의 눈꼬리가 더 사납게 올라갔으면.
윤기가 손을 뻗어 혼자만 초코를 먹고 오면 기분 좋냐면서 남준이 가슴팍의 옷깃을 꽉 그러쥐었으면 좋겠다.
남준이는 당장이라도 머리를 박거나 토끼가 되어 뒷발로 종아리 혹은 얼굴을 차버릴 것 같은 살기를 뿜어내는 토끼를 보고 오해라면서 손을 내저었으면.
그럼 뭔데, 이 냄새. 겁나 단 냄새 나잖아.
아, 이거는! 이건 오늘 잠깐 일하던 카페에 들렸을 때 일 돕느라 그런거에요.
뭔 일 했는데. 초코 시식?
아니. 아니. 브라우니 자르는거요. 우리 카페는 이만한 브라우니가 한 번에 나와서 좀 식힌 다음에 알바생들이 적당한 크기로 잘라야 하거든요. 지민이가 하도 부탁해서 그거 도왔어요.
급하게 우르르 쏟아지는 말에 윤기의 눈꼬리가 천천히 풀렸으면.
대신에 남준이가 묘사하는 큰 브라우니에 눈을 반짝였으면.
야, 그거 얼마냐?
돈도 직접 벌겠다. 무서울 것이 없는 윤기가 당장에 사러 갈 듯 구니까 남준이가 씁, 하는 소리와 함께 윤기의 손목을 꾹 그러쥐었으면.
안 팔아요.
따로 주문은?
안 받아요.
내 브라우니는.
없어요.
씨발, 단호해.
어허. 또.
안 예쁜 말 쓴다. 남준이의 손에 입술을 찰싹 맞은 윤기가 복수를 하듯 남준이의 뺨에 토끼 귀를 꾹 눌러 문질러대었으면.
윤기의 행동에 남준이는 짧게 웃음을 터뜨린 남준이가 손을 들어 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으면 좋겠다.
이제 진짜 저녁 좀 먹자면서 일어나면서도, 그래서 초코 진짜 하나도 없냐는 윤기의 말에 결국 밥을 다 먹고 편의점에 다녀오기로 약속했으면.
하여튼 초콜릿이 그렇게 좋을까.
한숨을 푹 내쉬며 애냐고 혀를 차도 덤덤한 얼굴로도 신이 나는지 귀를 바짝 세우고 있는 윤기를 보며 결국 또 웃어버리는 남준이가 보고 싶다.
겨울밤 거리는 특유의 서늘함, 건조함이 가득했으면.
눈이 한 번을 내리지 않아 더 건조한 바닥을 밟아내려가면서도, 같은 거리지만 다른 계절의 거리를 나란히 걸어갔으면 좋겠다.
편의점 문이 딸랑거리며 윤기와 남준이를 맞이했으면.
윤기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주머니에 두 손을 푹 꽂아넣은 채로 과자 코너로 향했으면 좋겠다.
남준이는 그런 윤기의 뒤를 따라서 초콜렛과 달큰한 간식, 자신이 먹을 과자 조금, 우유도 하나.
그렇게 담아서 계산은 윤기의 고집으로 윤기가 계산을 했으면.
그 대신 남준이가 봉투를 들고 다시 집으로 향했으면 좋겠다.
가로등이 길거리를 비추고, 찬바람이 훅 불어오면 어깨를 한층 더 움츠리고.
계속 길을 걷다가, 문득 남준이가 먼저 말을 했으면 좋겠다.
그러고보니 형 손에서 요즘 원두 냄새 나는 거 알아요?
원두 냄새? 오자마자 씻는데.
그래도 뭔가 좀 남아있어요. 특유의 그, 씁쓸하면서 고소한 향이.
남준이의 말에 윤기가 주머니에서 두 손을 쏙 빼내어 코에 손 끝을 대고 길게 숨을 내쉬었으면.
그러고나서는 잘 모르겠는지 느릿하게 고개를 기울였으면.
남준이 너는 그 모습을 모두 바라보면서 조용히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아, 맞아. 있잖아, 이거 너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그, 종이가. 어. 집에 있네. 집 가서 말할까?
꼭 종이가 있어야 해요?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윤기가 그제야 뒤늦게 생각이 났는지 머리를 헤집었다가, 다시 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찔러넣었다가, 빼내어서 귀가 있는 근처에 손을 올렸다가 아차 싶어 다시 내렸으면.
남준이는 그 행동들을 그저 가만히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스스로 조금 더 마음의 정리가 될 때까지 기다려줬으면.
이윽고, 윤기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으면 좋겠다.
나, 바리스타 될까봐. 자격증까지 따서, 정식으로.
바리스타?
응. 요즘 카페에서 라떼 아트도 겸사겸사 배우고 있거든. 원두 종류랑, 뭐 그런 것도.
아아.
사장님 부부께서도 손재주가 있으니까 조금만 하면 잘 하실거라고, 자격증 따두면 또, 전문적인 일을 구할 수 있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형은 정말로 그 일을 하고 싶어요?
남준이의 물음에 윤기는 잠시 아무 말도 없었으면 좋겠다.
잠시 뒤에 윤기가 고개를 돌려 남준이와 눈을 마주했으면.
무언가 단단해진 눈으로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으면 좋겠다.
응. 재밌어, 이거.
원두 종류가 조금 많고, 용어가 헷갈리는 게 있어서 짜증은 나지만. 작게 투덜거리는 목소리에 남준이가 손을 뻗어 윤기의 손을 꼭 그러쥐었으면 좋겠다.
응원할게요, 윤기 형.
남준이의 말에 윤기는 고개를 또 한 번 끄덕였으면 좋겠다.
길거리를 걸어가는 두 사람의 손은 어느새 깍지를 낀 채로, 둘의 걸음걸이 사이는 한층 더 가까워진 채로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나란히 걸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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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귀여운 민트토끼 윤기 그림 감사합니다. ♥
초콜릿 좋아하는 귀여운 민트토끼 윤기 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귀엽고 아기자기한 글귀 감사합니다. ♥
귀여운 윤기 그림 정말 감사합니다. ♥
예쁜 부농부농한 윤기 그림 선물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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