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나님, 그동안 예쁜 표지 너무 잘 사용했습니다. 감사드려요.
甲乙丙丁
完
BGM :: 김준석 & 정세린 - 하늘에 핀 꽃
그들의 행동은 너무나도 빨라,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의 얼굴마저 쳐다볼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즈음엔 이미 모두 결박된 채로 '등을 돌린 누군가'의 뒷모습만 봐야했다. 그리고 종인이의 표정, 아니. 모두의 표정으로 그 사람이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알만한 사람이라는 것도 어렴풋 깨달을 수 있었다.
"반가워,"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던 그 사람이
"내 장난감들."
우리에게 손을 벌렸다.
"미친 새끼야!"
"진정해. 진정."
"미친 정신병자새끼. 진짜 너 이 개새,"
"조용히 해. 시끄러워."
왜? 아, 나는 그제야 정신이 바짝 들었다. 우리를 '장난감'이라 칭하던, 왜인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졌던 저 사람. 도망치던 우리에게 '다시는 보지 말자'고 이야기하며 활짝 웃던 저 남자는. 그래.
"다시는 보지 말자고 했는데. 이렇게 보게 되네."
도경수 라고 했던가.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감시자'라는 타이틀로 가장 가까이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수 많은 시간동안 괴로워하는 우리를 보며 즐거워했던 사람이 저 남자였다. 저 사람은 어떤 존재기에, 어떤 사람이기에. 왜 내게 '익숙해 보이는' 사람이었는지 나는 그 해답을 알 수 없었다. 백현이가 먼저 나서 소리를 지르다 저렇게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물론 온 몸이 알 수 없는 힘으로 묶여있어 꼼짝도 할 수는 없었지만, 입을 열면 목구멍에서 소리는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굳이 소리를 내려 하지는 않았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제 체구보다 훨씬 큰 의자에 몸을 푹신하게 기댄 남자가 손짓을 몇번 한다. 그리고 내가 알던 그 크리스가 모습을 나타냈다. 어두워보이는 표정에서는 아무 상황도 읽을 수가 없었다. 몸이 결박됨과 동시에 주어졌던 능력이 모두 빼앗긴, 아. 생각을 하던 와중에 입을 통해 신음소리가 나왔다. 크리스가 무릎을 꿇는다. 저, 저 크리스가. 내게 자신의 세상을 부탁한다고 했던 저 크리스가 남자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나는 이해를 할 수가,
"다들 지금 이 상황이 궁금해 미치겠지, 응."
주변을 쭉 둘러보던 남자가 결심했다는 듯 손바닥을 탁, 소리나게 쳤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우선 내 소개부터 시작할게, 너희들의 주인. 너희들의 신이야."
-
세상은 나로 인해 시작되었고, 나로 인해 끝이 난다. 이것이 내가 처음 '세계'를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창조설 그런거 다 좆까라고 해.
캄캄한 어둠 속에 나라는 존재도 있지 않았다. 그냥 내 자아만이 존재했을 뿐.
처음에는 그냥 나의 '존재'자체가 다인 줄 알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정신없이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생명이 태어나고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를 이어나갔다. 내가 쥐어준 것은 정말 자그마했는데 내 생각을 뛰어넘는 것들을 만들어냈다. 나는 그들의 '신'임과 동시에 그들 아래에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존재를 숨겼다.
분명히 나의 자아를 통해 만들어진 세상인데 저 세상에 내가 낄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생각하는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지만 하나도 흥미롭지 않았다.
그들은 저들끼리 사랑하고, 미워하고, 슬퍼했다. 나에게 그런 감정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애착이라는 것을 가져보고 싶었다.
이 세계가 없어지면 어떨까 싶어서 많은 생명들을 괴롭혔다. 내게 저 세상을 없앨 수 있을만큼의 용기는 없었다.
나는 날이 갈수록 악독해졌다. 내가 용기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나는 나 자신이 겁쟁이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괴롭혔다.
불을 질러도 보고, 산을 무너트려 보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봤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결국 이겨냈다.
분했다.
그래서 선택했다. 내가 만들어낸 창조물을 내가 이길 수 없다면 나의 편들을 만들자. 그래서 나의 하수인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들에게는 작은 표시따위를 했다.
처음에는 그저 구분을 위한 표시에서 시작했는데 점점 재미있어졌다.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마치 능력이 제것인 것 마냥 날뛰었으니.
체스, 라고 했던가.
나도 게임을 하고 싶었다.
근데 계획이 중간 부터 틀어졌다. 킹과 퀸 대신에 Catastrophe와 Pandenium 을 두었다. 재앙과 대혼란. 나는 모두가 고통받기를 바랬다.
그리고 나름의 이름을 붙여가는 것에 재미를 두며 나는 계속 그 수를 늘려나갔다. 능력자들은 길길이 날뛰었고 나는 그를 보며 재미있어했다. 그러면 되는 줄 알았다.
크리스가 나타나기 이전까지는.
한 가정의 평범한 아들로 태어나, 능력자임을 깨닫고 힘든 시간을 겪었다. 여기까지는 나의 다른 꼭두각시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자기 혼자서 이상한 길을 만들어 나갔다. 제 표시를 스스로 바꾸었다. 그리고 능력자를 하나하나 정리해 나갔다.
저와 같은 사람이 있지 않기를 바란다며 스스로 악역을 자처했다.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그 전에 비하면 현저히 적은 숫자였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만든 세상에 대해 만족하는 듯 보였다.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죽음 문턱에 가까워지더라도 목숨을 걸고 막아냈다.
밟아도 밟아도 쓰러지지 않았다.
나는 또 다시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존재로 절망을 경험하고야 만다.
그래서 억압받던 이들에게 정보를 조금씩 흘렸다. 이렇게 하면 크리스가 막을 수 없는 문제들이 벌어지지 않을까.
계획대로 흘렀다. 반란자들이 생겨났고 서로서로 물어뜯었다. 크리스가 만든 구조에서 이탈하는 이들이 생기고 그는 매일매일 절망했다.
나는 그런데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그는 나의 존재를 알아챘다. 두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했다. 그만둬주세요. 그래서 보란듯 이탈자 하나를 죽였다.
내게는 정말 쉬운 일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즐겁지 않았다.
이탈자들에게 나의 정보를 흘렸고 그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거란 기대감에 나를 찾아오려 했다.
그렇게 원했던 일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도 재미가 없다.
내가 진짜 원했던 재미는 어떤 방식의 재미였기에 이리 충족되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나돌까.
이 세상이, 내가 만든 이 세계가 재미가 없다.
-
모두가 숨을 죽이고 남자의 입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끝내려구. 그는 고개를 젖히며 눈을 감았다. 여전히 꿇어져있는 크리스의 무릎은 변화가 없다. 우리 개개인 모두도 아무 말이 없다. 불쌍하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저 남자를 원망해야할까.
우리를 괴롭게 한 장본인이다. 모든 끔찍한 사건의 원인인 사람이다.
그런데도, 섣불리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저 남자를 괴물로 만든 것은, 그 스스로일까 아니면….
"그만 둘래. 다."
우리는 그를 막을 수도, 막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표정으로 눈을 감은 그가 서서히 사라져 감으로 우리는 그의 존재가 투명해져간다는 것을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죽고싶을 때도 많았다. 다른 능력자들도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억지로라도 존립해야했던 이유는 남자가 그를 막았기 때문이 아닐까. 섣부른 판단을 해본다.
사라져가는 그를 잡은 것은 크리스였다. 그는 그가 만들어낸 존재답게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남자와 함께 사라져가는 크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가 지켜달라던 세상을 지켜냈을까,
그가 지켜달라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갑을병정(甲乙丙丁) 完
모든 환희에는, 모든 쾌락에서와 같이 잔인성이 깃들어있을 것이다.
Oscar Wilde. 소설가.
세계의 창조자 - 도경수, 존재 자체로 '신'
능력자들 - '신'의 장난으로 만들어진 존재들
갑,을,병,정 등의 계급 - KRIS (C) 혼자 많은 능력자를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계급조직.
P (Pandemonium = 대혼란) '나'
T (Telltale = 숨길 수 없는) '타오'
J (Janitor = 문지기) '종인'
K (Knight = 기사) '종대'
V (Victim = 희생자) '레이'
D (Double-crosser = 배신자) '백현'
C (본래 creator 라고 알려져 있었음, 허나. Catastrophe = 재앙) '크리스'
그 외의 인물들은 코드명이 언급되지 않았고.
남은 코드명 또한 현재 사건과 맞닿은 부분이 너무 많아 생략할까 합니다.
*레이의 경우에는 본래 완결편에서 희생당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사정상 삭제했습니다.
코드네임에 대한 질문은 성실히 답하겠습니다.
-▩-
올려야 할까, 말아야 할까. 너무 고민을 많이 했던 갑을병정의 완결입니다.
갑을병정의 최초 시놉이고
사진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오른쪽 상단에 있는 완결의 대략적인 시놉입니다.
전말 공개/백-타공격/레이 죽음/경수 자살/>크리스
= 창조주의 전말 공개, 백현-타오의 공격. 그리고 레이의 죽음 창조주(경수)의 자살, 그리고 그의 영향으로 크리스의 죽음
물론 많은 수정이 있었습니다. 내용을 보시면 알겠지만.
대략적인 시놉을 공개하는 것은 제가 이번 사건을 토대로 결말의 변화를 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물론 충족시킬만한 내용은 아니겠지만요.
g항상 흘러가듯 언급했었던 '갑을병정'을 쓰게 만든 노래
으르렁 과 'BAD MAN' 의 리믹스입니다. 그러나 첨부할 기회를 찾지 못했습니다.
갑을병정의 연재 시작은 2014년 1월. 리믹스를 듣고 시놉을 작성했던 것은 2013년 8월이었습니다.
그리고 'C'역을 설정한 후에 제일 먼저 떠올렸던 인물이 크리스였습니다.
'C'라는 캐릭터에 대한 설정과 그 내용은 위와 같습니다.
현재 상황과 너무 맞닿는 부분이 맞는 내용의 글이라 올리기 전에 수십번 수백번의 고민을 했습니다.
우선은 지난 시간동안 갑을병정을 기다려주신 독자님들에게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시간동안 갑을병정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텍스트 파일은 만들거나 배포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내용상 배포 후 문제될 내용이 많을거라 생각됩니다. 많은 고민 끝에 내렸던 결정입니다.
내용에 대해. 그리고 이번 일에 대해서 한마디 아니 몇 마디만 하고 가고자 합니다.
제가 생각했던 갑을병정의 등장인물로 나오는 엑소는 12명으로 존재했던 엑소였습니다.
그러므로 작중 등장인물인 크리스도 '엑소 멤버로서의 크리스'였지 동떨어진 인물인 '우이판'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시점에서 제가 그를 동떨어진 인물로 보고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제게 소중한 사람이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 쓰기 시작한 글이었고 이 글을 써내려갈 당시에도 그 애정에 변함은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열렬히 그를 포함한 열두명의 별들을 애정했습니다.
앞으로 11명이 될지, 12명이 될지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사건으로 인한 무기한 연재중단'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앞으로 사건의 향후 진행 방향은 제가 전지적 엑소시점의 소유자가 아니라 알 수도, 섣불리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갑을병정을 연재하며 느꼈던 각각에게 느꼈던 애정을 애써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 걸음 물러서서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고, 힘들어 하는 모습이 보이면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정말 정확한 결론이 나기 이전까지는, 저는 이 생각을 다른 작품에서도 그대로 적용시킬 예정입니다.
저는 그를 애정했던 지난 시간을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애정함으로써 행복했기에.
저는 엑소를 응원합니다.
1명도, 11명도, 12명도 그 어떤 수식어도 붙지 않은
제가 좋아하던 그 자체의 '엑소'를 좋아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입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던 모든 이들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건강하고, 사랑하자.
Fear cannot be without hope nor hope without fear.
두려움은 희망 없이 있을 수 없고 희망은 두려움 없이 있을 수 없다.
바뤼흐 스피노자
지금의 두려움이 곧 희망으로 이어지길,
두려움과 희망을 오고가는 혼란스러운 시간속에서 함께 합시다.
마냥 이대로 너희와, 당신과 함께 걸으면
어디든 천국일테니
제이님이 주신 선물 감사히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