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BGM : 넬 - 멀어지다(성규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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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원은 부대장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300m 근방에는 수풀은 커녕 몸을 숨길 돌담같은 것도 없었다. 도대체 어디있... 어?
그대로 숨이 멎는듯했다. 설마... 커다래진 호원의 눈을 보고 부대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세히 묻지는 않겠네. 자네가 데리고 온 짐인 것 같은데, 어떤가."
여전히 한 지점을 가리키는 부대장의 손가락을 따라 옮긴 시선의 끝에는, 그 자리에 절대 있어서는 안될 한 사람이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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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장님."
떨리는 손을 차마 감추지 못한 호원이 작게 부대장을 불렀다. 부대 내 소에족 살상 전문 간부를 호출하기 위해 무전기를 켜던 부대장이 호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어디 한번 말해보게나. 알고 있었나? 아니, 물론 몰랐겠지."
"......"
"보아하니 꽤 친한 모양이야. 무슨 관계지?"
"...민간인..."
"이라고 생각했겠지. 헌데, 군인 수칙같은건 모르는가? 아군 군사들을 제외한 어느 누구와도 친해지지 말라. 만약 그 누군가가 소에족일 경우, 반역자로 취급한다."
떨리는 두 손을 꽉 쥐었다. 너... 너, 있잖아,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알아?
"...친한 사이, 그런거 아닙니다."
"그걸 어떻게 믿어야하지? 자네가 반역자가 아니라는걸 증명해보게나."
호원은 고개를 숙였다. 순식간에 상황이 뒤집어지고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둔기로 한 대 맞은듯 머리가 멍했다. 방법, 아니 방법이라고 하기도 뭐했다.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제가..."
"......"
"제가, 제 손으로 직접 처리하고 오면 믿어주시겠습니까."
"...처리한다는건, 목숨 정도의 스케일을 얘기한다는거겠지."
"......"
"이병 이호원, 미안한 말인데 말이야. 지금은 전쟁 상황이야. 언제 누가 어떤 짓을 할지 몰라. 여러가지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지."
"......"
"변수 하나만 따져볼까? 저 소에족은 첩자, 넌 그 첩자와 한통속. 만약 의심받을 경우 저 첩자를 죽여도 된다고 허가를 받았다거나, 혹은 이미 정보전달이 끝나 첩자가 필요없는 상황이 되었다던가."
"......"
"아니, 가장 직면적인 문제로 생각해보자고. 자네가 저 새끼를 죽이지 않고 보내준다면? 간부 몇몇을 보내 그 장면을 직접 보게..."
"그럴 필요 없습니다. 확실히 없앨거니까요."
"그래?"
"제 자신도, 저 자에게 배신감을 느낄 뿐더러... 말할수록 비참해지네요. 부가설명은 필요없을 듯 합니다."
"그럼, 어디 한번 믿어보겠네."
"......"
"단, 이 모든게 거짓일 경우, 그 이후 일어나는 일은 책임 못지네."
"...예."
부대장이 차갑게 스쳐지나가고, 한참을 못박힌듯 서있던 호원은 조용히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 사람? 아닌데. 호원은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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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흐으..."
해가 졌다.
"아...흐윽....하..."
거칠거칠한 모래에 발이 쓸려 쓰라릴법도 했건만. 질질 끌리는 발등 위로는 끊임없이 눈물이 떨어졌다.
"으...흐읍...으윽..."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억지로 삼키는 울음은 차가운 땅에 가쁜 숨을 내뱉게 했다. 온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동시에 차갑게 식어갔다. 근처에는 몸을 숨길만한 그 어떤 것도 없었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쓰러져, 동우는 눈을 감았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된걸까. 불과 몇시간 전만 해도, 아니. 이젠 그것마저 몇년 전으로 느껴질 정도구나. 왜, 왜. 어째서.
메마른 사막은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방울을 떨어지는 족족 집어삼켰다. 시야가 눈물로 가득찬채로 하늘을 바라보며, 동우는 조금 전 일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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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호원이가 다른 군인(꽤 높아보이는)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그러다 호원이 이쪽을 돌아보길래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멀리 떨어져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던게 화근이었다. 호원은 동우에게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동우도 호원에게 다가갔다. 아직 잘 보이지 않는 호원은 그 어느때보다 정적인 자세로, 천천히 자신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동우는 무언가 잘못된걸 눈치챘다. 호원아. 왜, 총을 겨누니?
본능적으로 뒤로 돌아 뛰어갔다. 무슨 문제가 있는거...야... 저... 군인과 무슨... 얘기를 한거야... 걷잡을 수 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애써 잡아내리며 동우는 한참을 뛰어갔다. 뒤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호원아, 제발 그거 들고 나 좀 따라오지마. 나... 나... 무섭단 말이야.
다리에 힘이 풀렸다. 뒤에서 일정한 속도로 자신을 쫓아오는 한 사람때문이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쓰러지듯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고개를 푹 숙이고 두려움에 떨던 동우는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 인기척이 아니던가. 사람이 아닌, 차가운 물체의 기척.
동우는 자신을 겨누는 총구에 몸을 떨었다. 동우를 진정 겁에 질리게 만드는 것은 총이 아닌 그것을 들고 있는 사람이었다.
"호...원아?"
떨리는 작은 목소리에 시리도록 무표정했던 호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그러는거야, 도대체?
"호원...아, 왜 그..."
차마 말을 끝내기도 전에 호원이 총을 거세게 내팽개치고는 동우의 멱살을 잡아올렸다.
"왜, 크윽...이래..."
눈물이 가득찬 동우의 두 눈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던 호원이 조소를 흘렸다.
"왜 이러냐고? 몰라서 물어?"
모르겠어, 모르겠어, 호원아. 우리 조금 전까지만 해도 즐겁게 웃었잖아? 우리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바다에서 뒹굴고 놀았잖아...
"호원아...난..."
"닥쳐. 너같은 새끼가 함부로 입에 올릴 이름이 아니야."
"뭐...라고?"
"미친새끼, 그딴 가식적인 말투 집어치워. 우리가 얼마전에 어쨌고, 또 어떤 사이였고, 씨발, 그딴거 하나도 필요없어."
"...왜...그래..."
"씨발, 너 진짜 몰라?"
"......"
"너, 누구야."
"...뭐?"
"아니, 누구가 아니지. 너 뭐야. 씨발, 너 뭐냐고! 미친 새끼야! 너 뭐냐고!"
잡고 있던 멱살을 거세게 내던지는 호원의 힘에 동우가 힘없이 밀려 넘어졌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설마, 이호원, 너...
지끈거리는 머리의 고통도 느끼지 못한채 힘없이 앉아있는 동우를 경멸하듯 쳐다보던 호원이 입을 열었다.
"왜 말안했어?"
"......"
"니 잘난 부모 얘기 지껄이던 입으로 왜 그건 말 안했냐고. 해봐. 어디 한번 들어줄테니 해보라고."
"......"
"씨발, 해보라고! 내가 사회악이다, 말해보라고, 좇같은 소에족 새끼야!"
동우는 애써 뜨고 있던 눈을 감았다. 결국, 너...
"...장동우. 일어나. 눈 떠봐."
"...호원아."
"진짜야?"
"......"
"...너 진짜 소에족이니?"
"...저기..난..."
"변명같은건 집어치워. 소에족맞냐고. 묻잖아."
"......"
"...대답해."
"...응, 맞아...미안해."
고개를 차마 들지 못했다. 여느때처럼, 항상 그랬듯이, 호원이 장난스럽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바보, 맨날 미안하대. 니가 미안해할 일 아니거든... 장난이야, 삐졌냐...
그렇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동우의 기어가듯 조그만 대답을 들은 호원은 순식간에 동우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거센 힘에 간신히 일으켰던 몸이 다시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입 안이 터진것 같았다. 피비린내가 목구멍을 훑고 지나갔다.
"...하...니가 이렇게 내 뒤통수를 때릴줄은 몰랐네."
말하려고 했었어, 근데 말할 수가 없었어. 호원아, 정말 미안해. 얘기 못해줘서 미안해. 그치만,
"개새끼. 잘 들어. 난 소에족을 경멸해. 혐오한다고. 왜 그런지 알려줄까?"
내가 전에 말했다면 네가 무슨 반응을 보였을까. 지금보단 나았을까?
"우리 아버지가 죽은게 소에족 때문이거든. 우리 어머니 다리 다친게 소에족 때문이거든."
아, 내 입으로 말했으면 혹 그 죄가 덜하진 않았을까.
"씨발, 들었어? 니 부모님 죽은 것처럼 내 아버지도 죽었어.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고! 그게 뭐 때문인지 들었냐고!"
호원아. 정말 미안해. 내 죄를 어떻게 하면 용서해줄래? 그런데 말이야. 내 죄가 뭐지?
"너같은, 이 사회에 폐만 끼치는, 사회악새끼들 때문이야! 너같은, 그런 소에족 때문이라고!"
그렇구나. 내 죄는, 태어난것. 내 존재 자체가 나의 죄구나. 그렇지?
"왜 우리 앞에 나타난건데! 왜 우리 가족 앞에 나타나서 이 꼴을 만든거냐고! 이 씨발새끼야! 왜! 내 눈앞에 나타났냐고!"
나름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널 힘들게 한 죄, 상황을 이까지 치닫게 한 죄, 너희 가족을 아프게 한 죄.
"당장, 꺼져. 내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지라고. 내가 혐오하는 너같은 존재, 죽여버리지 않은걸 다행으로 생각해."
내가 평생 살면서 지은 단 한가지 죄, 나의 존재.
"......"
"꺼져, 씨발."
"......"
"......"
"...미안해."
힘겹게 일어나 갈라지는 목소리로 사과를 한 동우가 비틀비틀 멀어져갔다. 눈물 자욱이 잔뜩 남아있는 그 곳엔 아직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호원과 답지않게 차가운 바람만이 남았다. 어두워지는 하늘에, 멍해진 호원이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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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아팠다.
수많은 목소리들이 머릿속에서 제각각 공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름이 뭐에요? 빵 사줬잖아. 알려주면 안되나? 얼른 말해요, 나 빨리 가야돼.」
「너, 누구야. 아니, 누구가 아니지. 너 뭐야. 씨발, 너 뭐냐고! 미친 새끼야! 너 뭐냐고!」
「자, 그럼 인사. 인사하라고. 난 인사했잖아.」
「...너 진짜 소에족이니? 변명같은건 집어치워. 소에족맞냐고. 묻잖아.」
「내가 아주 어렸을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 아빠 얼굴 기억도 잘 안 나는데, 왜 그런거 있잖아. 모자간에는 느낄 수 없는, 아버지와 아들사이의 유대감같은거. 그런거 느껴보고 싶을때면, 항상 여기 왔어.」
「우리 아버지가 죽은게 소에족 때문이거든. 우리 어머니 다리 다친게 소에족 때문이거든. 씨발, 들었어? 니 부모님 죽은 것처럼 내 아버지도 죽었어.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고! 그게 뭐때문인지 들었냐고!」
「그래서 말인데, 동우야. 같이 가자. 못들었어? 같이 부산 내려가자고.」
「당장, 꺼져. 내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지라고. 내가 혐오하는 너같은 존재, 죽여버리지 않은걸 다행으로 생각해.」
자꾸 눈물이 났다.
하늘에 계신 아빠, 오늘 전 너무 큰 죄를 짓고 말았어요. 아빠는 말씀하셨죠, 전 태어날때부터 그저 순하고 착했다고. 제 생각에도 그랬나봐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죄책감같은걸 느낄 일은 하지 못했고, 또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빠, 제가 오늘 한 사람을 너무나 아프게 했나봐요. 아빠, 아빠. 화내지 마세요. 아빠는 못 보셨을거에요. 그 사람도, 울고 있었어요. 눈물 흘린다고 다 우는게 아니잖아요. 사랑해서 그런가? 그 사람의 마음이 눈에 보여요. 마음이 슬프게 울고 있었어요, 아빠. 그 사람이 절 아프게 한게 아니에요. 제가 그 사람을 아프게 한 거에요. 너무너무 많이 미안해요, 그에게. 내 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팠잖아요. 이런 말 들으면 아빠가 화낼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그냥... 태어나지 말걸 그랬나봐요. 만약 그랬다면, 이런 감정. 사랑이란 감정 한번 느껴보지 못했겠지만. 아빠, 용서해주세요. 지금 저에게 가장 중요한건 그 사람이에요.
엄마가 그랬잖아요, 아빠도 그랬고.
「자꾸 생각나고, 생각날 때마다 기분이 좋고, 또 그만큼 복잡해지고. 그래도 그 사람 얼굴을 떠올리면서 미소짓고, 아픈 가슴 잡고도 행복하게 웃는...그런게 사랑이야.」
호원아, 이럼에도 내가 널 미워할 수 없는 까닭은...
내가 널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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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원아, 난 아마 이 날을 평생 후회할 것 같아. 그저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구나. 널 두려워해서 미안해. 너에게 상처를 줘서 미안해. 너무 많은 것들을 숨겨서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왜 한번도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어차피 소용없는 일이었겠지만, 그래도 그랬다면 이만큼 후회하진 않았을것 같아.
달이 떴어. 평소보다 뿌옇네. 너도 혹시 저 달 보고 있니? 가슴이 저리다. 니가 또 마음으로 울고 있나봐. 울지마, 호원아. 아픈 감정은 내가 다 가져갈게. 내가 다 울게. 넌 그냥 이제 나를 잊고 행복하게 살아줬으면 해. 너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안기고 떠난 나를 깨끗이 잊어버려.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그런데 말이야, 호원아.
하나 물어볼게 있어. 내가 잘못 봤던걸까?
너... 아까 나를 향해 걸어올때... 네 눈이, 또 입이,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얘기해줄 수 있어?
호원아.
왜, 나에게. 도망치라고 말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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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야, 도망쳐. 지금 당장 나에게서 도망쳐, 동우야. |